큰사진보기 ▲여원치 남원에서 운봉으로 넘어 가는 유일한 길목인 여원치. 1894년 당시 박봉양이 민보군을 구성 이 길목을 막았다. 이영천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가 전봉준의 활동 근거지인 전주나 김개남의 정예군이 있는 남원이 아닌 삼례를 택한 것은 교통의 요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전주부 바로 외곽에 위치한 데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했던 교통의 요충지가 바로 삼례였다. 삼례는 또한 당시 1백여 호밖에 없었지만 주막이 많고 평야지대를 끼고 있어 많은 수가 숙식을 해결하는 데 용이했다. 이 밖에 삼례는 1892년 대선사 신원운동을 위한 취회가 열렸던 동학의 교세 기반이 탄탄했던 곳으로 동학농민군 중요거점의 하나였다는 점도 작용했다. 삼례에서 재봉기를 선언하고 격문을 띄우자 며칠 만에 27개 집강소에서 11만 4천5백 명의 농민군이 호응하여 삼례로 집결하였다. 이즈음 농민군은 호남지방 뿐만 아니라 충청도·경상도·경기도·강원도·황해도 등 북쪽 지방에까지 이르는 조선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났다. 일본군이 왕궁을 침범하고 청일전쟁을 도발한 사태는 조선의 전민중에게 심각한 위기의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으며 이에 따라 조선 전역에서 항쟁의 횃불이 타올랐던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군이 제2차 기포에까지 이르렀으나 여러 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각 포와 접주들이 거느린 군사를 모은, 지휘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일종의 연합군적인 성격인데다 보급이나 무기·수송 등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동학농민혁명에 반대하는 내부세력의 도발이었다. 유생들은 초기에는 동학농민군의 위력에 눌려 침묵하거나 좌고우면하다가 정부가 청군을 불러들이면서부터 자체 민보군(民保軍)을 조직하는 등 동학농민군에 대항하고 나섰다. 동학농민군의 삼례 재기포 과정은 1차 기포 때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각 고을 단위로 동학농민군의 과감한 개혁활동에 두려움을 느낀 보수세력들이 농민군에 대항하기 위한 민보군을 조직한 경우가 있었다. 이에 따라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설득에 나서 농민군과 민보군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광주·나주·장흥·강진·순천 등 반농민군의 활동이 거센 지역에는 유력한 농민군 지도자가 파견되어 반농민군 세력을 진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손화중·최경선은 광주·나주에, 김개남은 전라좌도를 관할하는 남원에, 김방서는 장흥·강진에, 김인배는 순천·광양에 머물며 반농민군 세력을 진압했다. 그 결과 9월 기포에 합류한 동학농민군은 정읍·고창·전주·김제·부안·익산·삼례 등 전라우도 일부지방이 중심이 되었고, 그 밖의 전라좌도를 비롯한 상당수 전라도 농민군들은 바로 합류하지 못했다. (김은정, <동학농민혁명 100년 혁명의 등불, 그 반항 투쟁의 역사찾기>) 김개남이 삼례의 2차봉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먼저 관내 보수 세력의 민보군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 때문이었을 것 같다. 김개남 뿐만 아니라 전라우도 동학농민군의 병력이 합세하지 못함으로써 동학농민군의 재기포는 역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대신 북접의 호응을 받게 되었다. 김개남은 후방에서 틈을 노리는 지방토호세력과 이들의 사주를 받은 민보군을 진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그렇다보니 추수철에 접어들게 되고 북진이 늦어진 것이다. 그에게는 천시(天時)와 지리(地理)가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덧붙이는 글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횃불 #촛불 #응원봉 #동학농민혁명 추천3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삼웅 (solwar) 내방 구독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계간 '여성운동과 문학' 창간사 구독하기 연재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다음글 66화 청주성에서 일본군에 패배 현재글 65화 어용부대 '민보군' 진압하느라 북상 늦어 이전글 64화 동학군 2차 봉기의 배경 추천 연재 일상예술가의 시선 대문 열자마자 감동 받은 집, 가구 보고 놀란 이유 배우 차유진 에세이 "고3 조카가 툭 던진 다섯 글자, 책 제목이 될 줄은 몰랐죠"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커피가 얼마나 잔인한 음료인 줄 아나?" 유학생 각성시킨 미국 교수 성공담이 아닌 시작담 10년째 세계여행 중인 서른다섯, 안 불안하냐 묻는다면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대구에 보내는 김부겸의 작별 인사 "제 개인의 패배, 대구 시민 패배 아냐" [영상] 조현욱 위원장 "투표용지 부족 사태, 참정권 침해한 헌정질서 위기 사안" "아부지 도와주이소!" 결국 울어버린 김부겸, 작년 떠난 선친 향한 '사부곡'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배우 활동의 마음 3% 정도... 무당으로서 우선 잘하고 싶어" 2 47년 동안 아내로부터 들은 가장 아픈 말 3 대문 열자마자 감동 받은 집, 가구 보고 놀란 이유 4 뱀이 스르륵, 고라니가 껑충… 여기 신도시 맞아? 5 "사퇴 없다"는 국민의힘 지도부... 김용태 "장동혁, 부정선거 믿나"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어용부대 '민보군' 진압하느라 북상 늦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67화근대식 무기인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66화청주성에서 일본군에 패배 65화 어용부대 '민보군' 진압하느라 북상 늦어 64화동학군 2차 봉기의 배경 63화제2차봉기, 항일구국투쟁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구독PICK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톡톡60초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전체기사 연재 포토 스포츠 방송·연예 영화 음악 공연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소개 후원하기 10만인기자 10만인편지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