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실 성수산 황룡바위, 왕건 기도터 일화 전승 장소
이완우
이곳 개태사가 폐허가 된 이후에도 이곳 절터는 몇 점의 유물만 남은 개태사지(開泰寺址)로 긴 세월 풍파를 견디었다. 1934년에 개태사지의 중심지에 다시 개태사를 세웠다.
하지만 현재의 개태사는 과거 고려 시대의 웅장했던 도량 규모에 비하면 훨씬 작은 수준이다. 여전히 현재의 사찰 주변 농경지와 마을 지하에는 고려 시대 개태사의 옛 부지가 잠들어 있어 깊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논산 개태사를 둘러보면서 인간 세상의 성쇠를 절감할 수 있었다. 이곳 개태사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450여 년 동안 왕실의 사찰로 번성하였다. 조선 시대에 억불숭유 정책으로 거의 폐허에 이르렀다가, 그 폐사지에 다시 개태사를 복원하였다.
이처럼 사람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은 흥망성쇠의 역사를 겪지만, 자연은 묵묵히 그 시간을 품는다. 천 년 전, 왕건이 17살 때 도선국사의 추천으로 임실 성수산에서 기도하였다는 일화가 1895년에 임실군수였던 박시순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천 년 전 왕건의 기도 전설이 전하는 임실 성수산 황룡바위는 지금도 자연 속에서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폐허와 복원을 거쳐 온 개태사의 역사와 대비되며, 인간의 문명과 자연의 시간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하였다(관련기사:
연둣빛 봄의 숲속, 왕건과 이성계의 기도터 황룡바위).
개태사를 방문하고 도량을 나가려는데, 햇빛에 바래어 희미해진 입간판이 하나 보였다. 이 사찰 부지에서 출토되어 반출된 금동대탑 반환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1960년대 초 개태사 절터에서 반출된 국보 금동대탑은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 중이다. 2011년 법원은 소유권 불명 등을 이유로 사찰 측의 반환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개태사 금동대탑의 보존은 단순한 소유권 분쟁을 넘어, 훼손된 지역의 역사적 자긍심을 되찾고 올바른 역사를 바로 세우는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태사를 방문하고 가람의 정문인 신종루를 나섰다. 작은 연지가 분홍빛 철쭉과 연두색 나무들이 연못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천 년 개태사의 흥망성쇠도 물결처럼 마음에 조용한 여운으로 오래 번져 갔다.

▲ 논산 개태사 연지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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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일어날 듯한 왕건 청동상, 이런 뜻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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