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일 <뉴스타파>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소를 동시에 늘릴 경우, 원전 출력을 무려 80%까지 줄일 수 있어야 한다는 기후에너지환경부 내부 조사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뉴스타파
한국수력원자력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주관 국회 토론회에서 원전 출력을 최대 50%까지 낮추는 감발운전 기술을 2032년까지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연간 100회, 시간당 10%포인트 수준의 출력 변동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 내부에서조차 이 목표가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뉴스타파>가 지난 4월 보도한 기후에너지환경부 내부 문건 '원자력 탄력운전 주요 이슈 정리'(2025년 1월 27일 작성)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문건은 현행 감발운전 목표치가 향후 경부하 시간대(전력 수요가 낮은 봄·가을철 낮 시간대) 태양광 발전 피크와의 충돌 빈도와 규모를 감안할 때 불충분하며, 최소 기준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비중이 50%를 넘거나 특정 계절·시간대에 70~80%까지 상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원전 비중이 30%만 유지되더라도 경부하 시간대 충돌이 상시화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원전 출력을 최대 80%까지 낮추는, 즉 20% 수준으로만 유지하는 운전이 가능해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도 제시했다. 이는 연간 200회, 시간당 25%포인트의 속도로 출력을 변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원전은 본래 24시간 최대 출력으로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기저전원'으로 설계된 설비다. 그러나 연간 200회에 걸쳐 출력의 80%를 줄여야 한다면, 더 이상 기저전원으로 기능할 수 없다. 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비효율적인 부분 출력 상태로 운전해야 함을 의미하며, 동시에 전력 시스템이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출력의 80%를 감발하는 운전이 전제된다면, 원전은 추가 건설의 타당성을 상실한 전원이라고 볼 수 있다.
감발운전의 문제는 단순히 효율이 떨어진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안전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뒤따른다. 첫째, 핵반응 미세조정에 따른 제논 축적 문제다. 원전 출력을 줄이려면 제어봉 삽입이나 붕산 주입으로 원자로 내 핵분열 반응 자체를 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분열 생성물인 제논(Xe-135)이 빠르게 축적된다.
제논은 강력한 중성자 흡수체로, 이것이 쌓이면 노심의 반응도가 급격히 감소하고 중성자 제어가 어려워진다. 출력을 다시 올리려 할 때 예측하기 어려운 출력 급변이나 폭주로 이어질 수 있다. 2019년 한빛 1호기의 저출력 제어봉 조작 오류 및 출력 급증 사고, 그리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 모두 이 제논 문제가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원전 출력조절이 '일상적 운전'이 되는 순간 이 위험의 반복 가능성은 높아진다.
둘째, 핵연료 손상과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이다. 출력 변동이 반복되면 핵연료에 피로 하중이 누적된다. 열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면서 핵연료 피복관에 미세 균열이 생기고, 이것이 파손으로 이어지면 계통 전체의 방사능 준위가 상승한다. 2014년 한빛 3호기 증기발생기 방사능 누출 사고에서 방사선 감시기가 오작동했던 사례는 이 경로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셋째, 대용량 단위의 원전이 계통 안정성에 미치는 위험이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APR1400 원전 한 기의 용량은 1400MW다. 이 발전기 하나가 불시에 멈추면 1400MW가 순간적으로 계통에서 이탈한다. 운전 중인 발전기 숫자가 적은 경부하 시간대일수록 이 충격은 더 크다.
현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론화해야

▲ 4월 22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개막한 '2026 부산국제원자력산업전'에서 관람객들이 APR 1000(유럽 기준을 충족하는 1000MW급 최신 맞춤형 원자로)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것이 단순한 이론적 우려가 아님은 프랑스 사례에서 확인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유럽 계통에서 프랑스 원전은 이미 수십 년간 감발운전을 수행해 왔다. 그 과정에서 2022년에는 잦은 출력 조절에 기인한 응력부식균열 문제로 원전 절반이 동시에 정지하면서 유럽 전역의 전기요금이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경험은 감발운전이 결코 '기술적으로 검증된 일상운전'이 아님을 보여준다.
최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전력공사(EDF)는 출력 조절에 따른 터빈 마모를 보상하기 위한 교체 비용으로만 수조 원 규모가 필요하다고 밝혔으며, 2024년의 원전 탄력운전 규모는 2023년 대비 두 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프랑스보다 조건이 더 불리하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 전력망과 연계되어 있어 남는 전기를 수출하거나 부족한 전기를 수입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주변국과 전력을 주고받을 수 없는 고립 계통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을 서너 기만 추가로 건설해도, 한국은 프랑스와 유사한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경부하 시간대의 공급 과잉이 심화되면서 재생에너지 출력 제한이 일상화되고, 결국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가 제약받는 구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내부 문건이 충격적인 것은 그 내용만이 아니다. 문건 작성 시점은 김성환 장관이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을 공식 발표한 다음 날이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신규 원전 건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진행하면서도, 재생에너지와의 충돌을 피하려면 원전 출력을 80%까지 줄여야 한다는 사실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원전의 존재 이유 자체를 뒤흔드는 정보가 내부에 있었는데도 공론장에서는 완전히 가려진 것이다.
감발운전 기술 개발에는 이미 500억 원 넘는 연구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32년 기술 개발이 완료되더라도 그것이 50% 감발에 그친다면 정부 내부 문건이 요구하는 80% 감발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더욱이 기술 개발이 완료된다 해도 그 기술이 안전하다는 검증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100% 출력으로 운전하는 것으로 안전성이 확인된 설비이며, 저출력 영역은 아직까지 안전성 평가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영역이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상업 원전에 적용하면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국민에게 말할 수 있는가.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상호 보완적인 전원이 아니다. 같은 전력망에서 물리적으로 공존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을 본질로 하고, 원전은 경직성을 본질로 한다. 이 둘이 동시에 확대되면 전력망은 출력제어, 감발운전, 계통 불안정의 악순환에 빠진다. 방법은 하나다. 유연한 전원을 대규모로 확보하거나, 두 경직성 전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 구축, 수요 반응 체계 강화는 옳은 방향이지만 그것만으로 이 구조적 충돌을 해소할 수는 없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동시에 늘리면서 유연성만으로 균형을 잡겠다는 것은, 달리는 차에서 브레이크와 액셀을 동시에 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방향을 보다 명확히 설정하고,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전은 기존 설비의 안전한 관리와 단계적 폐쇄 경로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원전 출력의 80%까지 감발이 필요하다는 정부 내부의 진단은 원전이 더 이상 기존 방식의 기저전원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이 현실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위험한 공존의 환상에 머무르기보다, 명확하고 책임 있는 전환의 경로를 제시하는 것이 지금 정부에 요구되는 과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