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붉은 꽃이 주렁주렁, 아카시아 나무였다니

지리산둘레길 '방광~오미' 구간 12.3km 5시간 30분을 걷다

등록 2026.05.06 15:44수정 2026.05.06 15:4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갖는 의문이다. 먼저, 교통수단으로서 길과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서, 그리고 사회 규범으로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리산 둘레길은 통행 목적의 역할이 우선일 게다. 나아가 길을 걸으며 어려운 일에 빠졌을 때,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도 가진다. 또 법과 도덕을 지켜가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다. 길이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삶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지난 2일, 지리산둘레길 여덟 번째 '방광~오미 구간' 걸음에 나섰다. 이 구간은 약 12.3km로 난이도는 '쉬움'에 해당한다. 이 여정에는 전통마을의 흔적이 남아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오미마을에서는 운조루와 곡선재, 상사마을에서는 쌍산재 등 고택의 정취를 느낀다. 화엄사 아래 지리산탐방안내소에서는 지리산의 역사와 자원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도 갖는다. 종복원센터에서는 반달곰도 만날 수 있다. 숲길과 농로를 번갈아 걸으며 넓게 펼쳐진 구례분지에서 넉넉함과 풍요로움에 빠져보기도 한다.


방광마을 방광마을 벽에 그려진 벽화가 정겹다.
▲방광마을 방광마을 벽에 그려진 벽화가 정겹다. 정도길

넉넉한 구례 들녘을 바라보며

출발은 방광마을이다. 전설에 의하면 소가 똥을 쌌는데, 똥에서 밝은 빛이 났고, 그 빛이 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방광이다. 마을에는 수령 약 500년 된 세 그루 느티나무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왼새끼를 꼬아 만든 금줄을 쳐 당산제를 올린다.

움막 몽골 게르모양의 움막은 다용도로 쓰여졌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움막 몽골 게르모양의 움막은 다용도로 쓰여졌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도길

인근 용전마을에는 볏짚을 엮어 만든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 모양의 집 한 채가 눈길을 끈다. 용도는 다목적으로 썼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어지는 수한마을을 지나 숲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하늘은 울어도 지리산은 울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천둥번개가 치는 하늘이어도, 지리산은 이에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태도로 견지한다는 표현일까.

작은 쉼터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내려다보는 구례들녘이 넉넉하고 풍요롭다. 숲길에서 나오니, 환경부가 구례군과 함께 2025년 9월 30일 문을 연, 사육 곰 평생의 쉼터 '구례 사육 곰 보호시설'이 나타난다. 정부는 올해 1월 1일부터 농가에서 곰을 사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사육하는 곰도 이곳으로 옮겨질 것이란다. 몇 해 전 인근 문수사에 들렀을 때, 좁은 철창에 갇혀 사는 곰 세 마리를 본 적이 있다. 그 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확인해 보니, 지난 1일 이곳으로 이송돼 안전하게 보호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구례 곰 사육 보호시설 구례 곰 사육 보호시설은 구례들녘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구례 곰 사육 보호시설 구례 곰 사육 보호시설은 구례들녘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도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지리산


1시간 10여 분을 걸어 화엄사 아래에 자리한 지리산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거리와 시간을 고려하여 이른 점심을 먹었다. 긴 휴식 시간으로 탐방안내소에 들러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다. 지리산국립공원은 1967년 12월 29일 지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태고의 신비와 찬란한 민족 문화를 간직한 지리산은 3개도(경상남도, 전라남북도), 5개시군(남원, 하동, 산청, 함양, 구례), 15개 읍면행정구역에 걸쳐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며, 노고단(1507m)에서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915m)까지 주능선 거리만 해도 25.5km에 달한다. 지리산의 둘레는 약 320km 정도로, 둘레길로 조성된 약 290km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이다.


지리산탐방안내소 구례군 화엄사 아래에 자리한 지리산탐방안내소.
▲지리산탐방안내소 구례군 화엄사 아래에 자리한 지리산탐방안내소. 정도길

마산천을 따라 걷다 나무에서 피는 꽃을 만났다. 연초록빛이 섞인 노랑 꽃잎을 단 백합나무 꽃이다. 서양에서는 'Tulip Tree'라고 부르는데, 꼭 튤립을 닮은 예쁜 꽃이다. 잎은 캐나다 단풍나무처럼 별 모양으로, 가을에는 노란색 단풍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백합나무 꽃말은 '조용'이란다. 봄에는 은은한 향기 나는 꽃으로, 가을에는 예쁘게 물든 단풍으로, 정원에 한 그루 있으면 행복을 느낄 것만 같다.

바로 옆에는 긴 꽃차례에서 10여 개 이상의 꽃을 단 때죽나무 꽃이 봐 달라 애원한다. 두 꽃 모두 그윽한 향을 풍기는 게 매력이다. 지난주엔 머리를 땅에 대야만 자기 얼굴을 보여주겠다는 야생화가, 이번 주엔 고개를 젖혀야만 향기를 맡게 해주겠다는 나무 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백합나무꽃 은은한 향이 나는 백합나무꽃 꽃말은 '조용'
▲백합나무꽃 은은한 향이 나는 백합나무꽃 꽃말은 '조용' 정도길

숲길이 끝나면 들길이 나오고, 들길에서는 농로와 강변길도 만난다. 강변길을 지나니 아스팔트 포장길로 오르막이다.

저수지 둑에는 초록색에 파묻힌 억새가 하늘거리는 멋진 풍경이다. 넓게 펼쳐진 구례분지를 보며 걷는 오솔길이 편안하다. 수확을 앞둔 주렁주렁 열린 매실 밭과 경사진 녹차 밭이 한 폭의 그림이다. 작은 계곡을 건너고 시리대 숲을 지난다. 꽃씨를 감은 하얀 솜털은 단 민들레가 묘소를 지키고 있다.

봄가을 지난해 핀 억새는 올 봄 초록에 묻혀 춤추는 모습이다.
▲봄가을 지난해 핀 억새는 올 봄 초록에 묻혀 춤추는 모습이다. 정도길

숲길에서 나와 차량이 다니는 2차로 당몰샘로를 따라 걸으니 상사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쌍산재가 있다. 운조루, 곡전재와 함께 구례 3대 전통 가옥으로, 전남 민간정원 5호로 지정돼 있다. 일정 상 다음 기회로 관람을 미뤘다. 무성한 잎을 단 고목이 두 개의 정자를 품고 있는 하사마을에서 잠시 쉬어간다.

하사저수지 앞에서 일행이 멈췄다. 붉은 꽃을 단 아카시아 나무를 보면서다. 정식 명칭은 '꽃아까시'로, 처음 보는 꽃이다. 일행이 멈춰 서지 않았으면 모른 채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은은한 향이 풍기는 꽃아까시는 가시가 없거나 적어 관상용으로도 적합한 식물이다.

꽃아까시 처음 보는 붉은 꽃을 단 꽃아까시나무가 은은한 향을 풍긴다.
▲꽃아까시 처음 보는 붉은 꽃을 단 꽃아까시나무가 은은한 향을 풍긴다. 정도길

'타인능해'... 운조루에서 배우는 나눔의 의미

용두갈림길 교차로에서 서북 방향은 구례로, 남동 방향은 하동으로 연결되는 19호선 국도를 따라 걷는다. 작은 저수지 용두제는 나뭇가지가 잠길 정도로 물이 가득 차다. 고요함 속에 초록색 나무 잎이 물에 비친 모습이 절경이다.

둑에 잠시 앉아 지나온 길을 더듬으며 상념에 잠긴다. 힘들었던 구간도, 쉬웠던 길도 걸었다. 내 삶 역시 오늘 걸어 온 길과 다를 바가 없다. 힘든 순간도, 좋았던 때도 있었다. 건강을 위해 걷는 길이기도 하면서, 문제를 푸는 해법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걷는 내내 어떤 여생이 아름다울지 고민하는 시간의 길이기도 하다.

용두제 용두제 둑에 앉아 지나온 삶의 여정을 더듬어 보았다.
▲용두제 용두제 둑에 앉아 지나온 삶의 여정을 더듬어 보았다. 정도길

지리산둘레길 방광~오미 구간 12.3km를 4시간 30분을 걸어 종착지인 오미 마을에 도착했다. 오미정에 있는 스탬프를 찍으니 빈 칸이었던 두 장이 꽉 채워졌다. 뿌듯하고 배가 부른 느낌이다. 동행한 회원들과 헤어지고 바로 옆 운조루유물전시관에 들렀다.

이곳은 운조루에서 대대로 소장해 오는 많은 유물을 기탁 받아 전시하는 공간이다. 운조루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미정 오미마을 오미정에는 지리산둘레길 스탬프가 있다.
▲오미정 오미마을 오미정에는 지리산둘레길 스탬프가 있다. 정도길

전시관에서 약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1776년(영조 52년) 류이주가 낙안군수 때 지은 99칸 규모 운조루가 있다.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라는 운조루는 국가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돼 있다.

을대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긴 행랑채가 이어진다. 이 행랑채는 일하던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서쪽 7칸 동쪽 11칸 규모다. 입구에는 통나무로 깎아 만든 높이 114cm, 지름 66cm 크기 뒤주가 있다. 겉면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누구나 능히 열수 있는 나눔 쌀 둑'이라는 의미로, 굶주린 이웃 누구나 쌀을 가져갈 있도록 배려한 나눔의 상징이다.

타인능해 운조루 입구 뒤주에는 '타인능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타인능해 운조루 입구 뒤주에는 '타인능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정도길

한국전쟁 당시에도 피해를 겪지 않은 운조루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다. 집안에 죽은 사람을 임시로 모셔 두던 가빈터도 옛 모습 그대로고,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흔적도 원형으로 남아있다.

이날도 학생들 단체관람이 이어졌다. 운조루 고택에서 전통문화를 알게 되었고, 진정한 나눔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지리산둘레길은 단순히 길만 걷는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소중한 시간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 주요 경유지 및 시간 : 약 12.3km, 5시간 30분

방광마을(09:55) ~ 수한마을(10:10, 1.4km) ~ 지리산탐방안내소(11:10, 3.2km) ~ [점심시간(11:10~13:00)] ~ 상사마을(14:40, 5.0km) ~ 용두갈림길(15:10, 1.6km) ~ 오미마을(15:25, 운조루 1.1km)/ 약 12.3km

● 걷기 방향 : 검정화살표(반시계 방향)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여행, 인생여정>에도 실립니다.
#지리산둘레길 #지리산탐방안내소 #운조루 #구례사육곰보호시설 #타인능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행, 인생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도식 날 노무현 모욕 떼창? 이게 힙합인가 추도식 날 노무현 모욕 떼창? 이게 힙합인가
  2. 2 국립수산과학원 기간제 연구원 숨진 채 발견... 유서에 '손찌검 당했다' 적어 국립수산과학원 기간제 연구원 숨진 채 발견... 유서에 '손찌검 당했다' 적어
  3. 3 아버지가 건넨 까만 비디오테이프... 보고 난 뒤 다른 사람이 됐다 아버지가 건넨 까만 비디오테이프... 보고 난 뒤 다른 사람이 됐다
  4. 4 "계엄군이 먼저 쏘지 않았다"는 아이들 말에, 학교에 518m 길을 냈다 "계엄군이 먼저 쏘지 않았다"는 아이들 말에, 학교에 518m 길을 냈다
  5. 5 삼성가 두 재벌 총수의 서로 다른 사과가 남긴 것 삼성가 두 재벌 총수의 서로 다른 사과가 남긴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