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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물러가라" 고3 학생들의 분노... 신흥고를 아시나요?

[하성태의 사이드뷰]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

등록 2026.05.06 16:38수정 2026.05.0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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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고3 학생들이 분노했다. 언론들이 '광주 사태'라고, '빨갱이들 소행'이라고 떠들어댔다. 맞다. 때는 1980년 5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막바지였다. 이들이 '비상계엄 철폐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 하지만 공간은 광주가 아니었다. 광주도, 전남도 아닌 전북 신흥고였다.

'더이상 제2의 독재자 박정희가 생기는 걸 참을 수 없으며 도저히 묵과 할 수 없음을 여기에 천명한다. 광주의 고등학생들의 피의 외침이 우리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학우여! 민족과 조국 앞에 또한 한민족의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인간이 되고 싶은가! 역사가 증언하고 하늘이 보지 않는가! 아아 광주 학우의 피의 외침이 들린다. 학우여! 나가자! 나가서 우리의 피, 피를 쏟자!'

'1980년 5월 27일 전주 신흥고 학생 일동' 명의였던 호소문의 일부다. 인근 광주에서 전두환 계엄군이 자행한 학살에 분개한 전주 학생들이 주축이 됐다고 했다. 비장하고 성숙했으며 진지했다. 이들은 "(전두환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케 만들었으며 오로지 독제체재 구축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꼬집었다.

또 신흥고 학생들은 "(전두환 신군부가)매스컴을 장악하여 사실을 왜곡 보도하는 등 국민을 농락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신군부의 언론 장악마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목숨을 건 행위였다. 시위 당일, 전주 지역 계엄군은 총칼로 무장한 채 신흥고를 둘러쌌고 주동자 색출에 나섰다.

사실 고3 학생들만 시위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완성까지 8년을 매진한 김종관 감독이 강조하듯, 신흥고 1·3학년 1500여 명이 운동장에 쏟아져 나왔다. 시위 당일이 담긴 흑백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이 학생들을 자발적으로 이끌었는지 궁금증과 함께 존경 어린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날 신흥고 시위에 영향을, 감동을 받았다는 전주 지역 후배들 인터뷰에 눈길이 가는 것도 그래서다.

새벽녘 전남도청이 진압군의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혔던 바로 그날. 고등학생들이 정문 밖을 나섰다면 계엄군의 발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1980년 5월, 서울의 봄을 막기 위한 신군부의 탄압이 전주를, 신흥고를 덮치지 않았으리란 가정, 즉 전주를 제2의 광주로 만들지 못했으리란 부정 또한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초청작인 장편 다큐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이하 <졸업앨범>)는 바로 이 묻혀있던 1980년 5월의 신흥고 사건을 다룬다. 더 나아가 사건 조명과 피해자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 성숙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리하여 46년 만에 전주로부터 당도한 영상 편지가 묻고 있다. '5.18 아는 당신, 5.27 전주 신흥고 민주화 운동을 아시나요?'라고(전주국제영화제는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린다).

전주를 배경으로 한 5.18 다큐 <졸업앨범>


 다큐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 포스터.
다큐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 포스터. 제작사 오월

피 끓는 고등학생들이 이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다. 그럼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했다. 5월이 되면 어김없이 마음이 아파 온다고 했다. 신흥고 시위 직후 경찰에게 맞은 국가폭력이 남긴 상흔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4.19 혁명이 남긴 교훈을 떠올렸을까. 더 이상 역사가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 분연한 책임과 의무를 통감했다. 몇몇 학생들이 주도했고 여러 학우들이 뒤따랐다. 5월 27일에 맞춰 전날 호소문을 작성했다. 학교 당국이 3학년 전 학급 임원들을 불러 모아 시위 자제를 당부했지만 소용 없었다.


5월 27일 3학년 1반 학생들부터 차례로 운동장에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운 채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역사적 진풍경이 연출됐다. 실제 호소문을 작성한 학생은 이미 학교 밖으로 피한 상태였다.

선생님들이 막아섰다. 이미 계엄군이 학교 밖을 점령한 채 대기한 상태였다. 학생들을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앞서 광주가 준 교훈이었고 그만큼 엄혹한 시절이었다. 교감 선생이 학교 앞산으로 불려갔다. 전주 계엄군 대장과 경찰서장이 겁박을 하고 책임을 추궁했다. 학생들 보호가 우선이었던 선생님들도 군인들의 총칼 앞에선 힘없는 일개 시민일 뿐이었다. 생계를 신경 써야 할 직장인이요, 생활인들이었다.

학생들은 분개했고, 선생님들은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둘 다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물리적은 피해를 입었다. 적잖은 학생들이 경찰서에 끌려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때 당한 폭력이 오랜 기간 상흔을 남겼다. 또 주모자로 찍힌 학생들 여럿이 정학을 받아야 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 측의 징계에 부당함과 부정직을 호소하며 자퇴를 감행했다. 선생님들에 대한 원망 또한 묻어갈 수밖에 없었다.

46년이란 시간이 그렇다. 이를 갈무리하고 재해석하기도 쉬울 리 만무하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당사자들과 피해자들의 기억은 또렷하다. 5.18 관련 다큐는 많았지만 신선하고 새로운 소재가 틀림없다. 신흥고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은 일부 지역 언론의 조명이나 짧은 KBS 영상 기록을 제외하곤 대중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소중하단 표현은 그래서 더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역사에 가정이 있습니까?"

 4일 오후 CGV전주고사에서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 관객과의 대화(GV)가 열렸다.
4일 오후 CGV전주고사에서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 관객과의 대화(GV)가 열렸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어찌 보면 후일담으로 끝날 수 있는 서사였다. 3부 구성 중 1부와 2부는 직접적인 사건 조명과 학생들의 현재 인터뷰와 사건 후 행적을 쫓는다. 납득이 가는 서사다. 당시를 담은 영상 자료와 애니메이션 등이 풍성하고 짜임새 있다. 작품을 어떻게 마칠지 예상 가능하면서도 예상이 쉽지 않게 흘러가던 영화가 관객들을 돌려세우는 것은 3부다.

구순을 넘긴 선생님과 환갑이 된 제자들이 재회한다. 오랫동안 묵은 오해와 상처가 다 풀릴 순 없다. 하지만 이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분명히 갈리는 것도 아니다. 자괴감을 안고서라도 말릴 수밖에 없는 선생들과 그런 선생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학생들 모두 80년 오월과 전두환 신군부 및 계엄이 낳은 피해자들이었다.

<졸업앨범>이 단순한 후일담으로 남지 않으려는 노력도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어색하지만 꼭 한 번 마주해야겠다는 노력은 쉽사리 용서와 화해로 방점이 찍히지도 않는다. 그걸 담은 '신흥중 출신' 김종관 감독의 카메라 또한 쉬운 결론을 택하거나 감정적인 강요를 요구하지 않는다. <졸업앨범>은 그런 태도로 인해 열린 텍스트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성취해낸다.

5.18을 경유한 운동권 세대의 존재 증명이나 영웅 서사, 후일담이라 예상했다면 오해에 가까울 거란 예방주사부터 놓는 것이 좋을 법 하다. 오히려 <졸업앨범>은 실제 계엄이 남기는 상처를 조명받지 못했던 사건을 통해 다각도로 증명하는 거시적인 동시에 미시적인 증언록에 가깝다.

무엇보다 당시 고등학생들이었던 운동 주역들의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오간다. 이 자체로 일반적인 세대론을 뛰어넘는 고유한 정의와 가치를 남다르게 설파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유의미하고 둔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 있습니까?"

지난 4일 전주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한 신흥고 졸업생이 말했다. 그럼에도 <졸업앨범>은 기어코 고등학생들이 전두환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됐다면 87년 민주화는 앞당겨 졌을까, 또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에서만 벌어졌을까, 그렇다면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질문케 할 수밖에 없는 힘을 지닌 작품이 맞다.

그리고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 5일 <졸업앨범>에 특별부문 'J비전상'을 안겼다. 열흘 좀 더 있으면 46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다. 부디 내년 기념일엔 <졸업앨범>을 멀티플렉스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졸업앨범 #전주국제영화제 #김종관 #광주 #518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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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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