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살이, 수동 잔디깎이의 경쾌한 리듬.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잔디를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마당에 울려 퍼지는 서걱거리는 잔디 깎는 소리는 이곳 생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
김봉석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과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뒤섞여 내는 자연의 화음은 말 그대로 '날것'의 힐링이다. 마당 벤치에 앉아 갓 우려낸 차 한 잔을 들고 이 모든 호사를 누릴 때면, 우리가 선택한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된다.
부족함을 낭만으로 채우는 삶
물론 이 모든 호사 뒤에는 시골 생활 특유의 '불편함'도 존재한다. 평생을 도시의 아파트와 편리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시골 구옥은 매 순간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틈만 나면 출몰하는 다양한 종류의 벌레들 그리고 별도의 공간에서 묵묵히 돌아가는 기름보일러의 눈금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 일들은 예전엔 겪어보지 못한 생소한 수고로움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부족함을 '낭만'이라는 단어로 채워가며 행복의 농도를 높이고 있다. 편리함이 당연했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이 조금 불편해지니 비로소 소중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양평 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은 '장바구니 경제'를 파악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난 두 달간 양평읍의 대형 마트와 로컬 마트들을 샅샅이 훑으며, 어느 곳의 채소가 싱싱한지, 언제 타임 세일을 하는지 완벽하게 파악했다.
유럽에서 뚜벅이 생활을 하며 장보기에 고생했던 기억 때문일까. 차를 타고 조금 거리가 있는 마트까지 자유롭게 이동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양평 5일장, '기절호떡'과 파전 냄새에 취하다
양평 생활의 백미는 역시 양평읍에서 열리는 '5일장'이다. 3일과 8일마다 찾아오는 이 축제는 조용하던 마을을 활기로 가득 채운다. 갈산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10분 정도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시장 초입의 북적이는 인파와 마주하게 된다. 시장에서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단연 '기절호떡' 집이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맛, 양평 5일장의 명물 '기절호떡'. 3일과 8일마다 열리는 양평 5일장의 최고 인기 코너, 기절호떡집 앞의 풍경. 전국 각지에서 온 방문객들이 호떡 하나를 맛보기 위해 기꺼이 30분 이상의 기다림을 자처한다.
김봉석
수많은 연예인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는 모습에서 이곳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30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마주한 호떡은 그 기다림이 전혀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7천 원에 두 개라는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바삭한 겉면 속에 아낌없이 들어간 씨앗과 꿀의 조화는 상인들의 넉넉한 인심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아작아작 씹히는 씨앗의 식감은 유럽에서 먹었던 그 어떤 디저트보다도 정겨웠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 인심, 씨앗 가득한 꿀호떡이 자태. 30분의 기다림 끝에 마주한 기절호떡. 겉바속촉의 정석을 보여주며, 아작아작 씹히는 씨앗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어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김봉석
시장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골목을 따라 흐르는 노릇노릇한 파전 냄새와 막걸리의 향기는 발길을 멈추게 하고, 양평 시장의 명물인 닭강정과 갓 쪄낸 만두는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삶의 활력과 맛의 힐링이 가득한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다.
갈산공원의 벚꽃길과 쉬자파크의 뜻밖의 인연
건강을 위해 시작한 러닝은 우리를 '갈산공원'이라는 보석 같은 장소로 안내했다. 공원 옆으로 시원하게 뻗은 자전거길은 남한강의 윤슬을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최상의 루트를 제공한다.

▲강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치유의 길, 갈산공원 자전거 길. 남한강의 수려한 경관을 옆에 끼고 달릴 수 있는 갈산공원 자전거길. 우거진 나무 터널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달리는 이 길은 양평 생활에서 가장 사랑하는 러닝 코스다.
김봉석
특히 4월의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따라 달렸던 기억은 우리 부부의 양평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4월의 선물, 연분홍 벚꽃이 흩날리는 갈산공원의 봄. 매년 4월이면 갈산공원 산책로는 화려한 벚꽃 터널로 변신한다. 벚꽃 잎이 비처럼 내리는 길을 걷는 것은 축복과도 같다.
김봉석
최근 발견한 우리의 최애 장소는 '쉬자파크'다. 현재 시설 정비 공사로 인해 오는 7월까지 입장료와 주차료가 무료라는 뜻밖의 횡재를 얻은 곳이기도 하다. 정교하게 조성된 데크길을 따라 숲의 숨소리를 들으며 걷는 산책은 일상에 찌든 마음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주 특별한 스타를 만났다. 쉬자파크 내에 위치한 '8CORGI'라는 카페에서 구독자 44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인기스타 웰시코기들을 만난 것이다. 운 좋게도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방문한 덕분에 사장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코기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유럽 여행 중 만난 그 어떤 명소보다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숲 속 카페에서 만난 스타, '8코기네'의 주인공들. 양평 쉬자파크 내 위치한 애완견 카페에서 유튜브 인기스타인 웰시코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코기들의 애교 덕분에 산책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김봉석
남은 두 달, 더 느리고 깊게 담아낼 시간
양평 구옥에서의 두 달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남은 두 달은 조금 더 느린 호흡으로 살아가려 한다. 아직 가보지 못한 숲길을 걷고, 계절이 바뀌며 달라지는 마당의 꽃들을 관찰하며, 이곳만의 정취를 온전히 눈에 담고 싶다.
은퇴 후의 삶이 이토록 풍요로울 수 있음을, 양평의 낡은 서까래와 시끌벅적한 5일장은 몸소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소중한 일상을 감사하며 지금의 기록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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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부부가 함께 은퇴 후 시작한 새로운 여정. 안정된 삶 대신 꿈을 선택한 40대 파이어족의 좌충우돌 '은퇴 후 삶'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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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살이 두 달, 40대 은퇴 부부는 이렇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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