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레모사" 표지 작가,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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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다리가 나에게 말한다.
"그것 봐. 이제 나를 잘 봐.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아."
그림자는 결코 실체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 피해자들은 엄연한 재난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사회는 자초했든 하지 않았든 벌어졌던 거대한 비극을 뒤로 하고 앞을 향해 다시 바쁘게 나아간다. 회복은 미덕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상처가 나아도 흉터는 남는 법이다.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폐허가 되고 그곳에 피해자는 남아있는다. 사회는 이들을 구조해야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때론 그들은 남는 것을 택한다, 아니, 남을 수밖에 없다.
<므레모사>(2021년 12월 출간)는 김초엽 작가가 쓴 재난에 관한 중편 소설이다. 기존의 한국에서 생소했던 SF 장르로 <오늘의 작가상>,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SF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라는 주제를 주로 담는다. <므레모사> 역시 이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부가 몰래 개발하다가 유출된 생화학 무기로 망가진 삶의 터전, '므레모사'를 찾아온 여행객들이 겪는 일을 다룬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관계는 재난 현장의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다. '이르슐'이라는 가공의 독재국가를 빌려 사회가 자초한 재해의 여파를 고스란히 입은 국민들과 이들에게 호기심과 걱정을 가진 외부자들의 간극이 이 작품의 주 테마다.
삶의 터전에 비극이 닥친 후에도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을 지키길 택한 '므레모사' 원주민들은 그들을 밖으로 꺼내려는 국제 사회의 손길을 거부한다. 외부인들은 그 선택에 걱정, 그보다 더 큰 호기심을 가진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러 비극에 대한 슬픔은 흐려졌고 피해자들에 대한 동정이나 온정도 식었다. 치유와 극복을 당연시하는 사회는 '므레모사'의 주민들에게 이제 그만 나와야 할 시간이 아니냐고 물으며 설득한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그런 소리는 와닿지 않는다. 외부의 시간은 재난 이후로 빠르게 흘렀지만 그들의 시간은 그때 당시에 멈춰있다. 재해의 상처를 그대로 품고 살아가길 택한 사람들의 삶은 '므레모사'라는 마을로 표현된다.
외부 집단은 이들을 이들을 불쌍한 존재로 보고 과거 재해의 현장에 구호단체를 보내거나 호기심에 여행하러 찾아온다. 그들의 시선은 자기중심적이다. '므레모사'는 폐허도 아니고 완전히 회복하여 활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마을도 아니다. 그저 재난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삶의 형태가 질서를 이룬 공간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유안,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모두 착한 마음을 가지고 도우러 온 사람들이었는데, 선의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었는데."
외부인은 피해를 목격만 했을 뿐,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작중 '므레모사'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은 모두 비극의 현장을 자기만의 목적을 위해 찾아왔다. 자신이 겪었던 굴곡진 삶이 실패가 아니었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대학교 과제 조사 자료를 위해, 특종을 위해, 유튜브 구독자수나 '좋아요'를 위해. 위하는 대상은 '므레모사'와 그 주민이 아닌 본인 자신들을 위해서다. 주민들을 돕기 위해 찾아갔던 구호단체는 이타적이라곤 할 순 있으나 결국 그들도 그들만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고향에 자리하길 바라는 피해자들을 치료하여 밖으로 꺼내려는 모습이 그들의 주민들에 대한 이해 결핍을 보여준다. 여기서 내부자와 외부자 간의 간극이 드러난다. '므레모사' 투어의 일원들과 구호단체,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있는 외부의 시간을 따라 그곳의 재난을 과거로 치부하는 존재다. 여기서 외부인들이 타 지역의 재난을 대할 때 보이는 '타자화'가 드러난다. 그들과 타인의 고통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어 진정한 이해는 불가능했다.
"모두가 므레모사에 그러려고 왔죠. 도움을 베풀러 왔고, 구경하러 왔고, 비극을 목격하러 왔고, 또 회복을 목격하러 왔어요. 그래서 실컷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행복한 결말 아닌가요?"
주인공인 '유안'은 이 지점에서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위치에 있다. 그는 왼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착용해 무대 위에서 서는 무용수다. 춤을 추는 직업에 있어서 치명적인 장애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는 대중과 그의 연인, '한나'를 감동시킨다. 한나는 유안의 재활을 도왔던 재활 치료사다. 그의 잃어버린 다리를 대신할 의족을 주고 계속 걷고 움직일 수 있도록 격려하던 한나는 움직이는 건 살아있다는 뜻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은 유안에게 무거운 족쇄를 의족에 달게 한다. 그는 의족을 사용해 동작할 때마다 잘린 단면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피를 흘렸고 걸핏하면 묻어나는 혈흔을 닦아내야 했다. 항상 진통제를 먹으며 몽롱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삶을 감내해야 했던 유안은 자신이 움직이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찬사하는 사람들과 연인에게서 압박감을 느껴왔다.
"내가 더는 아름답지도 강인하지도 않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유안의 자문은 피해자가 제 과거를 잊고 활발히 살길 바라는 사회의 기대와 시선에 짓눌려 제 고통을 표현할 수 없는 피해자들을 대변한다. 사람들은 유안의 잘려나간 다리를 이미 사라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지만 그에게 그 다리는 물리적 실체만 잃었을 뿐, 언제나 끈덕지게 붙어있었다.
그림자로 남아버린 과거의 상흔은 결코 떠나지 않았고 벗어날 수 없는 무게를 신체적인 고통으로서 유안에게 제 존재를 각인시켰다. 움직이는 건 그에게 버겁기만 한 일이었으나 멈추는 건 용납받을 수 없었다. 한나와 마찬가지로 사회는 '부동(不動)'를 '죽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유안은 한번도 자살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잠에 들며 움직이지 않는 몸에 평온을 느꼈지만 영원히 잠에 빠져들고 싶어하진 않았다. 그런 그에게 '므레모사'라는 공간은 사고 이후 평생 찾아 헤맸던 안식처였다.
재해의 여파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그 자리에 붙박혀 살게 된 '므레모사'의 주민들의 모습은 유안이 선망하는 삶이었다. '멈춤'이 또다른 '삶'으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질서를 마주하고 '므레모사'에 남기로 한 그의 마지막 선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당신들처럼 되고 싶어요. 부디 나를 받아주세요."
<므레모사>의 전개는 재난의 상처 안에 멈춘 피해자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인들의 간극을 다뤘다. 거대한 비극을 볼거리로 여기는 대중들의 만족을 위해 멈추지 못하고 나아가야하는 피해자들이 안식을 찾을 곳은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소설에선 '므레모사'가 있다. 비록 복선을 완전히 회수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전개되는 구간이 있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문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담은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손상되지 않고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비극의 피해는 당사자에겐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서술된다. 그림자로 남은 상처에 남몰래 피흘리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므레모사
김초엽 (지은이),
현대문학,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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