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 오작교 보며 떠올린 춘향제의 다양한 해석

단순한 사랑 이야기 재현 넘어... 축제 현장에서 '평등'의 의미를 떠올리다

등록 2026.05.07 10:11수정 2026.05.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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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광한루원
남원 광한루원 이완우

5월 초, 신록은 연두빛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남원 광한루원에서 제96회 춘향제(4.30~5.5)가 열렸다. 춘향제를 둘러싼 여러 해석 가운데는 인권과 평등, 신분 질서를 넘어서는 상징성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광한루원을 춘향제가 한창인 날에 다시 찾았다.

춘향제의 중심 무대인 광한루원의 중심 누각인 광한루는 달 속의 궁전인 '광한청허부(광한전)'을 본떠 조선 초기에 지은 관아의 누정이었다. 이곳은 남원 고을 수령의 집무 공간이기도 했으며, 관아의 연회를 베풀거나 사대부들이 모여 교류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다만 칠월 칠석이나 단오 같은 명절에는 백성들의 출입이 허용되어, 백성들은 오작교를 거닐며 축제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광한루 공간을 배경으로 18세기에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서사가 판소리 춘향가와 고전 소설 춘향전으로 형상화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남원 권번의 기녀들이 현재 춘향제의 기원으로 평가되는 1931년 행사를 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작교를 건너며

오작교를 건넜다. 많은 관광객이 오작교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광한루원 오작교는 길이 약 57~58m, 폭 2.4m~2.8m의 돌다리로 4개의 홍예형 수문을 갖춘 무지개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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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원 오작교 ⓒ 이완우


이곳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은하수의 오작교 설화를 연상시킨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을 맹세하고 훗날 다시 만나는 배경이 되어, 변치 않는 사랑과 절개를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 잡아 왔다.

광한루 오작교는 동학 창시자인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가 1861년 12월 경상도 관아의 탄압을 피해 경주를 떠나 남원에 도착한 이후 머물렀던 지역과도 인접해 있다. 그는 광한루 인근에서 머물며 광한루 일대를 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일대에서 머무는 동안 사색의 시간을 보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수운이 광한루원 오작교에서 활동 여부는 구체적 사료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는 1861년 12월 말에 교룡산 선국사의 은적암으로 거처를 옮겨 약 8개월 은둔하며 수도 및 저술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근 남원 향토사학자는 말했다.


"수운 선생은 1861년 10월 경에 경주 용담정을 떠났습니다. 약 두 달 동안 울산, 고성, 여수와 구례를 거친 유랑 끝에 12월 15일 무렵에 남원에 도착했지요.

그는 경주에서 가져온 약재를 팔기 위해 광한루 인근 남원 읍내장의 한약방(주인 서형칠)을 방문했다고 전해져요. 1970년대, 광한루원 확장 공사로 남원 읍내장터(천거동 187번지 일대)는 광한루원 부지로 편입되었어요."

광한루원 오작교 서쪽의 너른 잔디밭 위치에 있었을 옛 한약방 터를 찾아서 '수운 최제우가 머물렀던 곳'의 표식을 세우고 역사적 공간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광한루는 달 속에 있다는 전설상의 궁전을 지상에 재현한 건물이다.

광한루원과 오작교를 배경으로 춘향의 사랑이 신분과 억압을 뛰어넘는 서사로 전해져 왔듯, 수운 역시 당시 혼란한 시대 속에서 민중의 삶과 현실을 깊이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사상 형성과 춘향제의 직접적 연관성은 문헌으로 확인된 바 없으며, 지역적·상징적 맥락에서의 해석에 가깝다.


신분 해방과 민족의식을 향한 연대

광한루원 춘향사당을 찾았다. 이 사당은 판소리와 고전 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인 춘향의 절개와 정신을 기리며 최초의 춘향제를 열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춘향제에서 이 사당이 지니는 의미 또한 적지 않다.

 남원 광한루원 춘향사당
남원 광한루원 춘향사당 이완우

 남원 광한루원 춘향사당
남원 광한루원 춘향사당 이완우

춘향사당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남원의 지역 유지들과 남원 권번의 기생들이 주축이 되어 모금 활동을 통해 건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를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움직임이자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흐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논문 <진주의 민속과 예술>(안영숙, 2023)에 따르면, 1931년 시작된 남원 춘향제는 단순한 신분 초월적 사랑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남원 권번의 기녀들과 관련 인물들이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정한 문제 의식을 공유했을 가능성도 언급된다.

또한 <남원역사연구회 학술 자료 및 세미나 발표 자료>(강경식, 김양오, 2023~2024)에 따르면 제1회 춘향제는 천도교와 신간회 남원지회, 그리고 진주의 형평사 운동 세력과의 연관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춘향제는 단순한 전통 축제가 아니라 동학에서 형평운동으로 이어지는 평등 사상의 지역적 표현으로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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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원 오작교 아래 호수를 헤엄치는 잉어 ⓒ 이완우


<형평운동과 천도교의 연계성에 관한 연구>(김중재, 2018)에 의하면, 1923년 진주에서 결성된 형평운동은 인간 평등 사상을 강조하며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천도교와의 관련성이 논의되기도 하며, 동학 사상과 연관 가능성 역시 제기된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움직임과 성찰

4년 뒤 제100주년 춘향제를 앞두고 있다. 남원 지역사회에서는 춘향제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논의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춘향제는 문학과 공연, 지역 공동체 문화가 결합된 축제로 발전해 왔다. 동시에 그 역사적 의미와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춘향사당에 봉안된 영정을 둘러싸고 지역사회 내에서 여러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 춘향제 100주년 앞두고 다시 불붙은 '최초 춘향 영정' 논쟁). 춘향제 기간 중, 축제의 활기는 담장 밖에 머물고 춘향사당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축제의 외형뿐 아니라 그 의미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야생화 (위) 금난초 (아래) 광대수염. 교룡산 은적암지 인근 숲속의 야생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민초들의 생명력을 떠올리게 한다.
야생화 (위) 금난초 (아래) 광대수염. 교룡산 은적암지 인근 숲속의 야생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민초들의 생명력을 떠올리게 한다. 이완우

이처럼 춘향제의 역사적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축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라는 기준을 고려할 때,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춘향제 #광한루원오작교 #수운최제우 #춘향사당 #오작교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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