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사관 구치소 옛터를 찾고 있는 후베이성 한인회장 최덕기 현 우한 일본 영사관은 과거 일본 영사관 자리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 영사관 터에는 수많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투옥했던 구치소가 있었습니다.
최덕기
이처럼 찬란한 무장 투쟁의 역사 이면에는 일제의 탄압 속에 고통받았던 이름 없는 투사들의 희생이 서려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의해 혹은 여러 복잡한 정치적 이유로 투옥되어 참혹한 고초를 겪었던 우한 내 구치소들, 특히 '한커우(漢口) 일본 영사관 산하 구치소' 등의 위치와 수감 기록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화중 지역 3개 한인회는 이러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우리 화중 한인들은 독립운동 역사가 꿈틀대는 현장, 삶의 터전에서 직접 발로 뛰며 조국의 연구자, 기관들과 합심하여 숨겨진 사료를 찾는 최전선에서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현장들에 대한 새로운 조사와 연구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합니다. 우리와 뜻을 함께할 정부기관과 학계의 관심을 촉구합니다. 이는 누군가가 단편적인 지식을 도용하여 가벼운 행사로 소비해 버릴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 문헌 교차 검증과 현장 답사가 수반되어야 하는 엄중한 '역사 복원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여정, 창사(長沙)를 향하여
우한에서 정예 장교를 육성하고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를 창설하며 총칼을 벼렸던 임정로드는 이제 후난성 창사(長沙)로 향합니다. 다음 2부에서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렀던 창사에서의 가장 행복했던 일상과 남목청(楠木廳)의 총격으로 벌어진 비극을 다룹니다. 아울러 1921년 최초의 한중 합작 항일 단체 '한중호조사'가 성립된 과정을 살펴보고, 1985년 임정 요인 류자명 선생이 중국에서 마지막까지 한국 국적자로 살다 돌아가신 후난 창사에 새겨진 이야기를 통해 화중 독립운동사의 또 다른 이면을 파헤칩니다. 잃어버린 화중 한민족의 역사를 찾는 우리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기사 원문 및 사진 제공 : 중국 후베이성 한인회장 최덕기
기사 교정 편집 : 중국 후난성 한인회장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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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난에 거주하면서 한국과 관련된 역사 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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