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 여정의 숨은 심장부, 우한을 아시나요?

[화중 한인회와 함께하는 임정로드: 상하이와 충칭 사이] 1부 우한

등록 2026.05.07 14:12수정 2026.05.1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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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우한 중앙군사정치학교) 옛터 표지석 중국은 이곳을 이미 전국 중요문물보호단위(문화재)로 지정해 놨습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은 명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우한 중앙군사정치학교) 옛터 표지석 중국은 이곳을 이미 전국 중요문물보호단위(문화재)로 지정해 놨습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은 명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덕기(후베이성 한인회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27년 여정 중 가장 치열했던 이동기, 그 중심에는 중국 '화중(華中)'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임시정부가 수립된 상하이(上海)와, 치열한 투쟁 끝에 해방을 맞이한 충칭(重慶)은 비교적 익숙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를 잇는 우한(武漢), 창사(長沙), 난창(南昌)에 새겨진 핏자국과 땀방울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습니다.

상하이에서 시작된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향하는 길목, 우한은 단순한 기착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관념적인 항일을 넘어 실질적인 군사력을 키우고, 피 흘려 싸울 준비를 갖춘 무장 투쟁의 심장부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한이 어떻게 대한민국 항일 무장력의 산실이 되었는지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우한·창사·난창, 화중 지역 3개 한인회는 현장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강점을 살려 앞으로 3부에 걸쳐 그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 대한 청년들, 정예 장교로 거듭나다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우한 중앙군사정치학교) 옛터 입구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 옛터 입구입니다. 이곳에서 수많은 대한의 젊은이들이 피땀을 흘리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와 관련한 표지석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우한 중앙군사정치학교) 옛터 입구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 옛터 입구입니다. 이곳에서 수많은 대한의 젊은이들이 피땀을 흘리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와 관련한 표지석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덕기(후베이성 한인회장)

1920년대 후반 우한은 혁명의 열기로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1927년 설립된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는 조국의 해방을 꿈꾸며 만리를 달려온 대한 청년들에게 가장 뜨거운 군사적 요람이었습니다. 당시 개별적 암살과 파괴 활동 중심이었던 의열단은 그 한계를 절감하고, 조직적이고 정규화된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하기 위해 군사 간부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추천과 의열단 지도부의 인솔 아래, 수많은 대한의 청년들이 이곳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에 입교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약 200여 명에 달하는 한인 청년들이 이곳에서 체계적인 전술 교육과 정치 사상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는 중국 내 여러 황포군관학교 분교 중에서도 단일 규모로는 최대에 달하는 인원이었습니다. 황포군관학교 4기 출신이자 의열단 핵심 멤버였던 권준 지사 등이 직접 교관으로 나서 한인 생도들을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념의 혼란과 국공합작의 파탄 등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청년이 희생당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황포군관학교 우한분교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길러낸 이 실천적 힘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때 배출된 정예 장교들은 훗날 광복군과 여러 무장 투쟁 단체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며 1930년대와 40년대 항일 투쟁을 이끄는 든든한 밑거름이 됩니다.

조선의용대의 창설: 이념을 넘어선 항일 무장 부대의 탄생


조선 의용대 성립 기념 사진 조선 의용대가 우한 한커우에서 성립(창립)되었다는 기록은 많지만 이 사진이 촬영된 장소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지 당안관(기록물 보관소)의 협조를 받아야 하나 민간인인 우리 한인 회장단은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조선 의용대 성립 기념 사진 조선 의용대가 우한 한커우에서 성립(창립)되었다는 기록은 많지만 이 사진이 촬영된 장소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지 당안관(기록물 보관소)의 협조를 받아야 하나 민간인인 우리 한인 회장단은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독립기념관

우한분교에서 축적된 군사적 역량과 노력은 10여 년 뒤 극적인 결실을 보게 됩니다. 바로 1938년 10월 10일, 우한(당시 한커우 漢口) 중심부의 중화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창설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입니다.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인 조선의용대의 창설식은 수많은 한중 연대 인사들의 뜨거운 함성 속에 거행되었습니다. 의열단장 김원봉을 비롯하여, 의열단의 핵심 참모이자 임정의 주요 요인인 류자명 선생 등 주요 독립운동가들이 핵심 지도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는 우한이라는 공간이 사상과 이념의 벽을 허물고 오직 '항일을 통한 한민족 주권 회복'에 대한 하나의 목표 아래 군사적 기틀을 다진 통합의 장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조선의용대는 창설 직후부터 전장에 투입되어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우한에서 타오른 이 무장 투쟁의 불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인 광복군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즉, 우한에서 탄생한 조선의용대는 임시정부의 군사적 뼈대를 완성한 거대한 뿌리였습니다.

잊혀진 구치소의 흔적을 찾아서: 재중 한인회 주도 역사 복원의 첫걸음

일본 영사관 구치소 옛터를 찾고 있는 후베이성 한인회장 최덕기 현 우한 일본 영사관은 과거 일본 영사관 자리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 영사관 터에는 수많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투옥했던 구치소가 있었습니다.
▲일본 영사관 구치소 옛터를 찾고 있는 후베이성 한인회장 최덕기 현 우한 일본 영사관은 과거 일본 영사관 자리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 영사관 터에는 수많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투옥했던 구치소가 있었습니다. 최덕기

이처럼 찬란한 무장 투쟁의 역사 이면에는 일제의 탄압 속에 고통받았던 이름 없는 투사들의 희생이 서려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의해 혹은 여러 복잡한 정치적 이유로 투옥되어 참혹한 고초를 겪었던 우한 내 구치소들, 특히 '한커우(漢口) 일본 영사관 산하 구치소' 등의 위치와 수감 기록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화중 지역 3개 한인회는 이러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우리 화중 한인들은 독립운동 역사가 꿈틀대는 현장, 삶의 터전에서 직접 발로 뛰며 조국의 연구자, 기관들과 합심하여 숨겨진 사료를 찾는 최전선에서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현장들에 대한 새로운 조사와 연구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합니다. 우리와 뜻을 함께할 정부기관과 학계의 관심을 촉구합니다. 이는 누군가가 단편적인 지식을 도용하여 가벼운 행사로 소비해 버릴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 문헌 교차 검증과 현장 답사가 수반되어야 하는 엄중한 '역사 복원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여정, 창사(長沙)를 향하여

우한에서 정예 장교를 육성하고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를 창설하며 총칼을 벼렸던 임정로드는 이제 후난성 창사(長沙)로 향합니다. 다음 2부에서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렀던 창사에서의 가장 행복했던 일상과 남목청(楠木廳)의 총격으로 벌어진 비극을 다룹니다. 아울러 1921년 최초의 한중 합작 항일 단체 '한중호조사'가 성립된 과정을 살펴보고, 1985년 임정 요인 류자명 선생이 중국에서 마지막까지 한국 국적자로 살다 돌아가신 후난 창사에 새겨진 이야기를 통해 화중 독립운동사의 또 다른 이면을 파헤칩니다. 잃어버린 화중 한민족의 역사를 찾는 우리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기사 원문 및 사진 제공 : 중국 후베이성 한인회장 최덕기
기사 교정 편집 : 중국 후난성 한인회장 이상훈
덧붙이는 글 모든 독립 운동 유적이 하나하나 의미가 있고 중요합니다. 우리 중국 화중 지역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많은 관심을 갖아주시길 부탁합니다.
#임시정부 #중국화중지역 #중국한인회 #우한한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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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난에 거주하면서 한국과 관련된 역사 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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