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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금지하는 초등학교? 여기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시골 초등학교의 신체능력검사 오래달리기 기록 높이기 연습... 맹훈련이 가져온 결과

등록 2026.05.10 11:10수정 2026.05.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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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누가 잘 달리나, 초등학생의 달리기는 즐겁다.
누가 누가 잘 달리나, 초등학생의 달리기는 즐겁다. 이준수

"선생님도 너희랑 같이 오래 달리기 할까? 누가 더 오래 달리는지?"
"네, 해요! 해요!"

월요일 체육 시간, 나는 운동화 끈을 풀어 단단히 다시 묶었다. 다음 주 목요일에 있을 신체능력검사를 앞두고 미리 연습하는 날이었다. 우리 학교는 4개 종목을 확인한다. 왕복오래달리기, 유연성, 악력, 제자리멀리뛰기. 모두가 중요한 신체 지표를 측정하지만 초미의 관심사는 왕복오래달리기다. 왜냐하면 악력 같은 경우 측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결괏값에 큰 차이가 없다. 반면, 달리기는 실시간으로 탈락자가 나오므로 실력이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게다가 신나는 음악까지 나오니 흥분할 수밖에.

"페이스메이커라고 들어봤어? 선생님이 옆에서 페이스메이커 할게. 그럼 너희가 더 오래 뛸 거야."
"런던에서 마라톤 세계 신기록 깨진 것 봤어요. 저도 작년 기록 깰 거예요."
"실전까지 일주일 남았으니까 지금이라도 연습하면 돼."

페이스메이커가 있어야 선수가 더 잘 뛰는 법. 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십수 년 간 체력능력검사를 진행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잘 뛰는 아이가 한 명도 없는 그룹은 전체적으로 기록이 저조하다. 반면 잘 뛰는 아이가 섞여 있으면 주변 친구도 자극받아 기록이 올라간다. 모두가 빨리 포기하는 분위기에서는, 더 뛸 수 있는데도 발걸음을 멈추고 만다.

"양발 모두 선을 넘어야 해. 한 발만 걸치는 건 실격이야."
"아, 힘들어."
"두 번만 더 뛰어 보자고. 지금 잘하고 있어."

땀방울이 체육관 마루에 똑똑

경쾌한 템포의 음악이 나오는 가운데 아이들은 체육관을 힘차게 왕복했다. 초등학교 5학년 기준 왕복오래달리기 1등급(아주 높음) 기준은 100회 이상이다. 여덟 명 정원의 우리 반은 전원이 남학생. 남자아이들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결코 질 수 없다는 승부욕이 발걸음에서 느껴졌다. 50회 이상만 뛰어도 3등급(보통)이다. 50회까지는 속도가 느려서 웬만큼 노력하면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걸, 30회가 되기 직전 첫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4등급이었다.


친구의 탈락에 놀란 아이들은 숨을 골랐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다부진 눈빛이었다. 3등급의 기준은 50회에서 72회 사이. 그러나 60회를 넘어서자 슬슬 지치는 선수가 나왔다. 달리기 횟수로 인정받으려면 기준선을 양 발 모두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점점 기준선에서 멀어지는 발끝. 체력의 한계가 드러났다. 삑, 삑 차례로 실격 신호가 울렸다. 여덟 명 중 100회까지 살아남은 아이는 단 두 명. 페이스메이커인 내 땀방울도 체육관 마루에 똑똑 떨어졌다. 우리는 110회까지 뛴 다음 멈췄다. 그 이상은 기준에 없었으므로.

"학교에서 오래 달리기 같이 한 선생님은 처음이에요. 선생님 잘 뛰시네요."
"선생님 딸도 5학년이어서 요새 같이 연습하고 있거든."


최후의 2인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체육관을 나섰다. 다른 아이들은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표정. 그러나 입 밖으로 불평을 쏟지는 않았다. 기록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은 건 본인의 체력 문제였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정식 평가까지는 일주일이 남아있었다. 아쉬움을 만회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선생님 잘 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불량식품 대신 밥 골고루 잘 먹고 푹 자야 해. 매일 조금씩 달리기를 하면 근육이 붙을 거야."
"왕창 달릴 거예요."

작은 태양같은 땀을 흘리고 난 아이들의 표정

 우리 반 아이들은 비만 오지 않으면 매일 밖에서 뛰어 논다.
우리 반 아이들은 비만 오지 않으면 매일 밖에서 뛰어 논다. 이준수

축구를 금지하는 도시 초등학교가 등장하는 요즘이지만, 여기 사정은 좀 다르다. 양양 바닷가의 시골 학교에서는 파릇파릇한 잔디가 운동장에 고개를 내민다. 지역 어르신들이 정성껏 가꾸는 천연 운동장은 비어 있는 날이 없다. 작은 미니 골대를 두고 축구공이 여기저기 튀어 다닌다. 종이비행기와 플라스틱 글라이더를 하늘을 날고, 대형 화분에서는 수박이 자란다.

이제 여기에 달리기 연습을 하는 아이들이 추가되었다. 다만, 간단한 지침은 필요했다. 아이들의 대표적인 오해는 '빠르게만 달리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 하지만 올림픽 육상 종목에 왜 100m와 마라톤이 따로 있겠는가. 우락부락 근육질의 단거리 스프린터와 날렵하고 탄탄한 장거리 주자는 훈련법도 다르다.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왕복오래달리기'는 천천히 오래 달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뛰었다. 축구를 하기도 하고,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 발에는 용수철이 달린 것처럼 통통 튀어 다닌다. 아이들에게는 훈련이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담한 시골 학교 운동장 둘레는 300m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쉬지 않고 목 뒤가 까매질 때까지 뛰면 누적 거리가 제법 쌓인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달리기를 좋아하게끔 태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뛴다. 어린이에게는 역시 걷기보다 뛰기가 어울린다.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는 5월은 더운 계절. 그렇지만 개운하게 땀을 흘리고 난 아이들의 표정은 어찌나 밝은지 작은 태양 같았다.

달리기의 순기능은 신체검사에서 좋은 등급을 받는 것 이상이다. 달리기 연습을 한 날에는 기적처럼 아이들이 거의 싸우지 않는다. 별로 화가 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할까. 까칠한 날에는 작은 갈등에도 불꽃이 튄다. 그렇지만 땅과 하늘에 에너지를 쏟고 오면 아이들은 바람처럼 순해진다. 도시에서는 자연결핍장애라는 말도 떠돌지 않는가. 숲과 바다와 강이 풍부한 곳에 있으면 자연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트랙을 달리는 것과 잔디밭을 달리는 감각은 다르다.

드디어 대망의 왕복오래달리기 실전의 날. 맹훈련의 결과는 어땠을까. 여덟 명 중에서 무려 다섯 명이 1등급(100회 이상!)을 받았다. 은메달에서 금메달을 따게 된 올림픽 국가대표처럼 광대뼈가 올라가 있었다. 젖먹던 힘까지 쏟아낸 아이들은 달리기가 끝나자마자 체육관 마루에 드러누웠다. 공중으로 쏘아 올리는 거친 숨. 그러나 얼굴은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도 성취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일이면 종아리에 알이 배겨서 아프다고 떼구루루 구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또 공을 차러 나갔다. 정말이지 초등학생은 대단하다.

 달리기가 끝났어도 축구는 계속된다. 아이들의 체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달리기가 끝났어도 축구는 계속된다. 아이들의 체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이준수


#오래달리기 #신체능력검사 #초등학생 #러닝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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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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