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30대 시절. 아빠와 약혼 사진.
정현주
엄마 인생의 '다시보기'를 플레이한다. 엄마의 40대는 늘 바빴다. 봄이면 벚꽃구경, 가을이면 단풍놀이. 동네 사람들을 모아 여행을 주선했고, 인원을 모으는 모객 활동과 준비를 맡은 대신 본인 회비는 늘 무료였다.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사람들을 모으고 식당을 섭외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목소리는 변성기 남학생처럼 걸걸해져 있었다.
50대의 엄마는 골목대장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에 돈 벌러 간 남편을 15년째 기다리는 수진이모, 박카스 아줌마(매일 박카스를 사 오라고 시켰다. 거스름돈은 늘 내 몫이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돼지엄마까지, 웃고 울고 떠들다 다시 웃었다. 우리 집은 언제나 만남의 광장이었다.
활동적인 모습과는 별개로 엄마를 떠올리면 '깔끔'과 '극성'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내가 중학생 때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았는데, 시멘트로 된 마당을 매일 빗자루로 쓸고 물청소를 한 뒤 마른 걸레로 닦았다. 마당을 마루처럼 대접하며 관리하던 사람이었다. 걸레는 무조건 '1일 1삶'이었다.
아침 6시면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청소기를 돌렸다. 한겨울에도 쌩쌩 부는 찬바람 속에서 울리던 청소기 소음은 황금 같은 아침잠을 방해했고,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게 일상이었다.
"어젯밤 이 물컵 쓴 사람?"
"이 파란 컵 쓴 사람 누구야?!"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물컵 하나에도 예민해졌다. 아침마다 범인을 색출하듯 우리를 깨웠고, 설거지를 마쳐야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엄마의 60대였다.
그런데 요즘 내가 그렇다. 물컵 데자뷔를 겪었다. 기지개를 펴며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쌓여 있는 컵들이 눈에 들어온다. 삐뽀삐뽀 경고음이 울리는 것 같다. 이유 모를 짜증이 치민다. 예전에는 그냥 씻으면 될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별것 아닌데 짜증이 나는 밤사이 쌓인 컵들. 엄마가 이해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정현주
엄마의 감정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히스테리도, 갱년기 증상도 아니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나를 설거지 담당자로 당연히 생각하는 것 같아 서운하다. 나도 모르게 컵을 들고 방문을 두드린다. "이거 누가 먹은 거야? 먹었으면 씻어놔야지. 이 집에 설거지하는 사람 따로 있어?!"
뿐만 아니다. 나도 아침마다 환기에 목숨을 건다. 한겨울에도 환기 타임은 거를 수 없다. 청소기는 기본 옵션이다. "엄마 쫌!" 하며 이불을 돌돌 말던 아이들 모습까지 그 모든 게 데자뷔다. 언니 동생하며 지내는 동네 골목대장은 이미 하고 있고, 내가 60대가 되어 관광 모객을 안 한다는 보장은 솔직히 못 할 것 같다. 이쯤되면 엄마의 인생은 '내 인생의 미리보기'였던 것이다.
미리보기가 아닌 '오답 노트'인지도
"엄마, 뭐 먹고 싶어? 맛있는 데로 외식하러 가요."
"일단 집으로 와."
지난 4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엄마를 만나러 갔다. 엄마 집에 도착하니 현관에 못 보던 식구가 나를 맞는다. 휠체어다. 두 달 전만 해도 백화점 뷔페에서 구순 생파를 하던 엄마였다.
"이제는 다리에 힘이 없어서 워커를 밀면서 걷는 것도 힘들어. 어쩔 수 없이 휠체어를 들였는데 이것도 요양사가 퇴근하면 소용이 없어. 밀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전동 휠체어는 엄마 집 현관문보다 덩치가 커서 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좋은 거 하나 사지 대여가 뭐냐고 하니, 나중에 처치 곤란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엄마는 이 휠체어를 사용할 날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집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있는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의 40대, 50대, 60대, 70대 얼굴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주부 수영선수단에서 날리던 왕언니가 수술실로 들어간다. 여행을 즐기던 외향인에서 강제 내향인이 되었고, 친구 많던 파워 E 성격은 어느새 I처럼 외로운 독거노인으로 남았다. 엄마의 모습은 나의 미리보기인데,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 늙어가는 걸까.

▲조금 더 오래 어버이날 올해도 엄마에게. 지금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
정현주
생각해 보니, 엄마는 나의 미래이면서 동시에 그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지도' 같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미리보기가 아닌 '오답 노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닮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같은 길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을 배웠던 것 같다. 엄마 의 낙상 이후 나는 의자 위에서 과도할 만큼 조심하는 법을 배웠다.
엄마는 인생을 뒤따라가는 딸에게 오답을 미리보기로 알려주는 '스포일러'였던 것이다. 단지 내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놓쳤을 뿐. 엄마의 인생은 내가 피할 수 없는 미래가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었다. 엄마는 나의 끝이 아니라, 나의 시작이었다.
"엄마, 이제는 엄마의 스포를 놓치지 않을게요. 조금만 더,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주세요."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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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공중파 방송작가, 카피라이터, 광고홍보 프로덕션 운영.
(현)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 2025 국민이 함께하는 저작권 글 공모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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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여, 어떻게 나이 들지 궁금하면 이 사람을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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