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등록 2026.05.07 17:42수정 2026.05.07 17:42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요즘, 밤 11시가 넘은 시간 침대에 누워 엄지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하염 없이 내리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생성됐는지도 모를 유튜브 알고리즘에 재미있는 영상 하나 없는지 계속해서 살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영상. 한 할아버지가 만드는 과일 크레이프 영상이었다. 둥근 팬 위에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굽고 그 위에 초코잼과 딸기와 바나나, 시리얼 등을 올렸다. 그리고 크레이프를 삼각형 모양으로 접어 손님에게 건네는 2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영상. 처음에는 그저 크레이프가 맛있어 보여서 봤는데 영상을 한 번 더 재생하는 순간 불현듯 어렸을 적 먹었던 음식 하나가 생각났다.
엄마가 구워주던 밀가루떡
어렸을 적 맛있게 먹었던 간식이 뭐가 있나 생각해보면 곧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엄마가 구워주던 밀가루떡.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이 단어가 나오면 반응은 늘 비슷했다.
"밀가루떡? 그게 뭐예요?"
"떡볶이 밀떡 말하는 거야?"
하지만 내가 말하는 밀가루떡은 떡볶이의 밀떡도, 유튜브 쇼츠 영상에서 나오는 달콤한 크레페도 아니다. 밀가루와 물, 설탕 단 3가지 재료로만 만드는 간식이었다.

▲ 반죽을 만드는데는 밀가루, 물만 있으면 충분하다.
손보미 (Chat GPT 생성)
엄마는 스테인리스 볼에 밀가루와 물을 넣어 반죽을 만들었다. 밀가루 몇 그램(g), 물 몇 밀리(ml)는 정해진 게 없었고 늘 엄마의 눈 대중, 손 대중이었다. 반죽이 되면 두꺼워서 맛이 없고 너무 묽으면 뒤집을 때 찢어지는 바람에 농도를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살짝 묽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펼쳐 노릇노릇하게 구워냈다. 조리 방법만 보면 밀가루 '전'에 가깝지만 왠지 우리 가족은 늘 밀가루 '떡'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구워낸 밀가루떡 위에 황설탕을 솔솔 뿌리고 다시 밀가루떡 한 장을 덮으면 끝. 밀가루떡 사이에 뿌린 설탕이 열기에 녹아 마치 시럽처럼 변했다. 젓가락으로 밀가루떡을 주욱 찢어서 들면 녹은 설탕이 또르르 흘러내리곤 했다. 그 맛이 얼마나 쫄깃하고 달콤하던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밀가루떡을 해 달라고 졸랐던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얼마 전 본가 거실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밀가루떡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어렸을 때 밀가루떡 진짜 많이 먹었잖아. 원래 있는 음식인가?"
"아이고, 그걸 아직도 기억하나? 그때는 매번 과자는 사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 그렇다고 간식을 안 먹일 수는 없으니까 집에 있는 걸로 만들어준 거야."
"진짜? 밀가루떡 진짜 맛있었는데. 그래서 지금도 가끔 기억나."
마냥 맛있는 간식으로 기억하고 있던 밀가루떡의 탄생 비화를 그 시절 엄마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돈 없어서 만들어 먹은 간식이면 어때. 맛만 있는 걸! 우리의 추억이 오롯이 담겨있으니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
여러분의 인생 음식은 무엇인가요?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인생 음식' 하나쯤 있을 것이다. 수년,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맛! 꼭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값비싼 음식이 인생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만들어준 식혜일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친구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먹었던 포장마차 우동 한 그릇이 그러할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각자의 사연이 있듯 음식에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것이 비록 누군가에게는 시시해 보이는 음식일지라도 그 의미만으로 삶을 버티게 하는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때때로 짧은 글을 쓰며 생각을 전하는 보통 사람
공유하기
달콤하기만 했던 밀가루떡, 이런 탄생 비화가 있었다니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