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문짝 떼고 공중에서 찍은 사진인데 어떻게 이럴까

홍주영 작가의 사진전 '대지, 스스로 회화가 되다', 인사1010에서 11일까지

등록 2026.05.11 11:08수정 2026.05.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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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Earth, Becoming Painting)' #2617 Archival Pigment Print 60×90cm 2026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Earth, Becoming Painting)' #2617 Archival Pigment Print 60×90cm 2026 김형순

홍주영 작가의 사진전 '대지, 스스로 회화가 되다(The Earth Becomes a Painting)'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인사1010'에서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열린다. 그는 머나먼 지구촌 원정과 탐사를 통해 현장을 구현하는 사진작가다. 이번에도 3년 전에 이어 미국 워싱턴주 '팔루스(Palouse)' 지역을 소형 비행기로 타고 촬영한 작품 47점을 선보인다.

홍주영은 피사체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자연이 지닌 조형성과 사진 매체의 시각적 가능성을 결합해 사진전의 한 전형을 보여주려 한다. 광활한 대지를 단순한 풍경 기록이 아닌, 거대한 추상회화의 장으로 전환하려는 자세를 이번 사진전에서 역력히 읽을 수 있다.


미시적 꽃에서 거시적 통찰로

 '얼음꽃(Flozen Flowers) #0719' C-프린트 100×150cm 2007
'얼음꽃(Flozen Flowers) #0719' C-프린트 100×150cm 2007 김형순

이번 전시는 홍주영의 초기 대표작 '얼음꽃(Frozen Flowers)' 시리즈와는 대조된다. 초기작에서는 꽃과 얼음의 만남으로 기포가 생길 때 그 순간을 냉각시키고 그걸 접사 렌즈로 포착한 작업이었다. 그는 찰나적 순간에 빚어내는 미세한 장면을 잡아냈다. 이는 맨눈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찰나의 절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번 '팔루스' 연작은 이와는 정반대다. 그는 미세한 대상에 파고들기보다는, 공중 위에서 조망하는 날카로운 응시 방식으로 자연의 피부를 읽어낸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소재 전환이 아니라, 작가의 예술적 세계관의 변환을 뜻한다. 얼음꽃 사진이 자연 내부의 순간적 속성을 발견했다면, 팔루스 연작은 거시적 통찰로 사진의 영역을 확장한 셈이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 해체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Earth, Becoming Painting)' #2619 Archival Pigment Print 50×75cm 2026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Earth, Becoming Painting)' #2619 Archival Pigment Print 50×75cm 2026 김형순

사진은 현실을 재생하는 매체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각을 생성하는 예술인가? 대부분 사진작가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그는 '사진이면서 회화이고, 기록이면서 생성'이 되는 사진을 내놓고 싶었다. 그 결과로 그의 사진은 대자연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렌즈라는 붓을 통해 회화적 경지에 어느 정도 도달한 셈이다.


<작가노트>를 보면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다.

"나는 대지를 재현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내가 마주한 지표는 물리적 영토가 아닌 거대한 조형구조이자 그 자체로 완성된 회화적 공간이다. 내 작업은 비행기의 문을 제거한 상태에서 상공으로 나아가는 순간 카메라는 붓이 되고 광활한 지구의 표면은 거대한 캔버스로 전환한다."

그는 카메라를 기록하는 장치보다는 다양한 위치에서 효과적으로 관찰하면서 대상의 곡선과 색채의 효과를 부각하려고 한다. 사진과 회화, 기록과 창조, 기술과 감각의 경계를 넘어. 사진이 평면임에도 추상적 색면의 리듬과 3차원의 입체감까지 살리려 했다.


'팔루스', 과감한 몸의 투신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Earth, Becoming Painting)' #2608 Archival Pigment Print 50×75cm 2026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Earth, Becoming Painting)' #2608 Archival Pigment Print 50×75cm 2026 김형순

팔루스 지역은 미국 워싱턴주 남동부 약 260km에 펼쳐지는 독특한 곳이다. 오랜 세월 바람이 황토를 퇴적시켜 형성한 유려한 곡선의 구릉 지대로 유명하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밀밭과 콩밭의 강력한 색채와 거대한 농경지는 마치 대규모의 파노라마 같다.

홍주영은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광활한 팔루스를 몇 년 전부터 탐방해 왔다. 봄의 초록과 가을의 황금빛은 물론, 광활한 농경지가 사계절에 따라 변주하는 색채와 패턴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데이터처럼 축적했다. 작가의 노트에서 보듯 그는 이곳에 겹치는 도로와 지표는 지우고 조형적인 요소만 빼내어 '색면추상' 효과를 내는 데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Earth, Becoming Painting)' #2642 Archival Pigment Print 60×90cm 2026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Earth, Becoming Painting)' #2642 Archival Pigment Print 60×90cm 2026 김형순

이번 작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그의 과감한 촬영 방식이다. 비행기를 타고 촬영하는 것도 그렇지만 더 생생한 시야 확보를 위해 비행기 문까지 제거한 채 촬영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대지의 평면을 추상적 이미지로 끌어올려 회화적 조형성을 성취하려 한 것이다.

바람, 현기증, 고도의 위험을 감수한 '물리적 투신'이자 '예술적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은 공중 촬영임에도 작가가 원하는 확실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기에 또한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아우라가 나오는 것도 사진의 안정된 균형감이 엿보이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독수리의 눈'으로 찍은 사진 자화상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 시리즈 Archival Pigment Print 2026 / 작품을 설명 중인 홍주영 작가
홍주영 I '대지, 회화가 된다' 시리즈 Archival Pigment Print 2026 / 작품을 설명 중인 홍주영 작가 김형순

이번 전시 서문을 쓴 이붕열 평론가는 "작가가 세상을 '독수리의 눈(Eagle's Eye)'으로 바라보며 사진의 범주를 넘어선 장엄함을 연출하고자 했다"라고 평했다. 이는 평론가가 그만의 독자성을 확보하려는 강한 의지를 평한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높이 살만 점은 작가가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를 이루기 위해서 돈과 시간,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자했다는 점이다.

이 평론가의 지적처럼, 홍 작가는 사진이라는 장르 밖에 있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중 퍼포먼스 요소를 결합한 '사진예술'의 묘한 전위성을 살렸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현대사진의 지평을 넓히려는 예술적인 도전이자 비유이지만 그가 실현해보려는 사진의 자화상의 한 면모가 아닌가 싶다.

[작가소개] 중앙대 대학원 영상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다양한 사진을 실험해왔다. 2009년 UN본부 초대전을 비롯해 개인전을 15회 열었다. 뉴욕세계미술대전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 경력을 쌓았다. 현재 그의 작품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삼성의료원 등에 소장 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갤러리 '인사1010'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전화 010)33938780
갤러리 지하전시실에서는 초기작 <얼음꽃(Frozen Flowers)' 시리즈> 코너가 따로 있다
#홍주영 #팔루스 #뉴욕세계미술대전 #갤러리인사1010 #얼음꽃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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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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