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6년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40년 넘게 우편가방 맨 어머니... 그 삶을 기록한 사진책

등록 2026.05.11 10:00수정 2026.05.11 10:00
0
원고료로 응원
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 혹은 편집자도 시민기자로 가입만 하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중에서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중에서 변성진 편집

섬과 섬을 잇는 여객선 '섬사랑호'에서 내린 어머니는 우편 가방을 메고 바쁜 걸음으로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전남 완도에서도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 횡간도는 어머니의 고향이자 어머니가 우편물을 배달하던 마을이다. 어머니는 골목을 지나 집집마다 편지와 고지서를 전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 한 권의 사진책으로 묶였다. 사진책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는 40년 넘게 섬마을을 오가며 우편을 배달한 어머니의 노동과 삶을 기록한 사진 작업이다.


1983년, 집배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네 아들과 시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아버지가 걷던 우편배달의 길을 이어 걸었다. 임시직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길은 40년 동안 어머니의 삶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어머니는 우편배달부였고,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이어지는 작은 통로였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75세까지는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정년을 지난 뒤에도 10년은 더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 말에는 오래 해온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에게 우편배달은 생계를 위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중에서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중에서 변성진 편집

섬마을에서 우편배달은 우편물만 전하는 일이 아니었다. 육지에 나가기 쉽지 않은 마을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배달길은 생활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아침이면 마을 사람들의 전화가 걸려 왔고, 어머니는 편지와 고지서를 전하는 사이 누군가의 부탁을 챙기고 안부를 확인했다. 때로는 심부름을 하고, 때로는 마을 사람들의 기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 들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섬마을 사람들의 우편배달부이자 벗으로 살아왔다.

2019년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찍고 싶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처음부터 사진책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정년을 앞둔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지금 남겨두지 않으면 다시는 기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자주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해마다 한두 번씩 고향에 내려갈 때면 어머니의 배달길을 따라 걸으며 사진을 남겼다. 어머니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하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골목을 오가는 발걸음,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 손, 바람을 맞으며 산길을 넘어가는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중에서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중에서 변성진 편집

2025년은 어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지 6년째 되는 해였다. 더 늦어지기 전에 사진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겼다.


수천 장의 사진 가운데 책에 넣을 사진은 80여 컷으로 줄였다. 많이 찍은 만큼 많이 덜어내야 했다. 어머니의 집안일과 밭일, 취미, 섬의 풍경까지 함께 담고 싶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대부분을 덜어냈다. 결국 사진책은 어머니의 우편배달 노동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그렇게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는 사진과 짧은 글을 함께 엮은 70쪽 안팎의 독립출판 사진책으로 완성됐다. 책에는 배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는 어머니, 우편물을 정리하는 손, 우편함 앞에 멈춰 선 모습, 산길을 넘어가는 발걸음이 담겼다. 한 권의 책에는 오랜 시간 섬마을을 오간 어머니의 노동과 그 길을 뒤따라 걸었던 아들의 시간이 함께 담겼다.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는 한 가족의 사적인 기록이면서도, 사라져가는 섬마을의 풍경과 한 여성 노동자의 시간을 담은 기록이다. 어머니의 우편가방 안에는 편지와 고지서만 들어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마을 사람들의 안부와 기다림, 그리고 한 시대의 생활이 함께 담겨 있었다.

책은 5월 4일, 어머니의 생일에 발간되었다. 오는 5월 16일에는 서울 강남의 갤러리카페 '룩인사이드'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작은 출판기념회를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는 주인공으로 살아본 적이 별로 없다.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고, 누군가의 안부를 챙기며, 늘 필요한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왔다. 그래서 이번 자리는 어머니의 노동과 시간을 함께 바라보는 자리이자, 그동안 뒤편에 서 있던 어머니를 이야기의 중심에 모시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나는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지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노동을 자주 지나친다. 너무 가까워서 안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끝내 알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는 그 뒤늦은 알아봄의 기록이다. 아들이 어머니를 찍은 사진책이지만, 결국 이 책은 우리 곁에서 묵묵히 이어져 온 노동과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출판 기념회 초대장
어머니는 섬마을 우편배달부 출판 기념회 초대장 변성진 편집

#사진책 #김군욱 #출판기념회 #어머니는섬마을우편배달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무빈소로 할까요?" 이 질문이 던진 파장 "무빈소로 할까요?" 이 질문이 던진 파장
  2. 2 "조인성은 왜 안 죽냐고?" 무술감독이 웃으면서 한 말 "조인성은 왜 안 죽냐고?" 무술감독이 웃으면서 한 말
  3. 3 택시기사 고공농성장 첫 방문 노동부 장관 "위에서 내려오셔야" 택시기사 고공농성장 첫 방문 노동부 장관 "위에서 내려오셔야"
  4. 4 봉하마을에서 생수 한 병, 김밥으로 채운 온기 봉하마을에서 생수 한 병, 김밥으로 채운 온기
  5. 5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반박한 '오마이뉴스' 기고, 논쟁 발생 이유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반박한 '오마이뉴스' 기고, 논쟁 발생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