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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이 숨진 그 장소에서 '박종철시민학교' 열린다

6월 16일 개교… 1987년 국가폭력의 현장을 2026년 시민들의 질문으로 채운다

등록 2026.05.11 14:20수정 2026.05.1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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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종철시민학교 1기는 이곳에서 열린다.
▲민주화운동기념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종철시민학교 1기는 이곳에서 열린다. 강석령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에는 아직 욕조가 남아 있다.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물고문 끝에 숨진 바로 그 공간이다. 벽도, 창문도, 욕조도 그날 그대로다. 건물의 이름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지만, 그 방이 품은 시간은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

2026년 6월, 이 공간에서 시민들이 모여 질문을 붙이기 시작한다.

"퇴근길을 돌렸습니다, 남태령으로"

2024년 동짓날인 12월 21일 밤, 비정규직 노동자 윤운희(50대)씨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을 돌렸다. "현재 경찰이 많고 시민분들이 적다"는 지인의 SNS 글을 보고서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트랙터 상경 행렬이 남태령 고갯길에서 경찰 차벽에 막혀 있었고, 시민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남태령에는 응원봉을 든 청년들이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노래하고 춤추며 경찰차를 몸으로 막고, 새벽 찬바람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이른 바 '키세스 전사단'. 농민들의 트랙터 연단에 함께 올라 한마음이 된 청년들의 모습도 그곳에 있었다. 윤씨는 그 모습에서 미안함과 뿌듯함,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했다. 시민들이 보내준 난방버스에 감동했고, 밥차 앞에서는 눈물이 났다. 동트기 직전 귀가했지만 며칠을 독한 감기로 앓아야 했다.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치러야 할 일이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의 밤, 국회 앞으로 향한 시민들도 그랬다. 계엄은 몇 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동짓날 남태령 아스팔트까지. 두 장면은 1987년의 질문을 다시 꺼냈다. 사람들은 언제 시민이 되는가. 부당한 권력이 작동할 때, 평범한 사람은 어디서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가.

고문실에서 교실로, 공간이 뒤집힌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조사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숨진 조사실로, 욕조와 침대가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조사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숨진 조사실로, 욕조와 침대가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박종철기념사업회

남영동 대공분실은 국가권력이 시민의 몸과 입을 어떻게 통제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다. 동시에 박종철의 죽음이 알려지고 시민들의 분노가 이어지면서 1987년 6월 항쟁으로 나아간 출발점이기도 하다.

박종철기념사업회가 준비 중인 '박종철시민학교'는 오는 6월 16일, 바로 이 공간에서 문을 연다. 국가가 시민의 말을 틀어막던 그 건물에서, 이번엔 시민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벽에 붙인다.


강연이 끝나면 5~7명씩 소그룹으로 모여 토론하고, 각 그룹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일 예정이다. 이른바 '질문의 벽'이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참여해 그중 3~4개를 고르면 강연자는 그 질문을 더 깊이 확장한다. 슬로건은 "성급한 결론보다 날카롭게 벼려진 질문". 정답을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자기 삶 속에서 민주주의의 의미를 스스로 다시 묻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박종철시민학교 1기는 6월 16일부터 7월 14일까지 매주 화요일 다섯 차례 열린다.

- 1강 (6월 16일) 그날, 남태령 — 우리는 언제 시민이 되는가 / 남태령아스팔트동지회
-2강 (6월 23일) 민주주의와 노래의 힘 /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3강 (6월 30일) AI 시대의 민주주의. / 박태웅 녹색포럼 의장
-4강 (7월 7일) 무엇이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가 / 박래군 (인권운동가)
-5강 (7월 14일)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남북한관계의 미래 / 김범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추모의 장소에서 질문의 장소로

박종철은 스물두 살에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다. 그는 자기 길을 선택해서 꿋꿋이 걸었다. 국가폭력이 그 길을 끊었고, 그 죽음을 은폐하려 했다. 그러나 진실은 새어나왔고, 그의 죽음은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됐다. 그의 죽음에 응답한 수많은 또래들이 스스로 거리로 나섰기 때문이다. 2024년의 응원봉도, 남태령의 아스팔트도, 그 응답의 연장선 위에 있다.

박종철시민학교가 시도하는 것도 그 지점이다. 박종철을 추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늘의 시민들이 자신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다시 묻도록 하는 일, 1987년 국가폭력의 현장을 2026년 시민들의 질문으로 채우는 일이다.

"나는 언제 시민이 되는가."
"부당한 명령 앞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 나는 무엇을 지킬 수 있는가."
"광장에서 느낀 감정은, 일상으로 돌아온 뒤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남영동의 벽에 붙는다면, 한때 시민의 입을 닫게 하려 했던 공간이, 다시 시민의 질문으로 채워지는 장면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박종철시민학교는 2026년 6월 16일~7월 14일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민주화운동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진행됩니다. 문의할 사항이 있으면 박종철기념사업회 jcpark610@gmail.com 070-7755-8701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박종철 #박종철시민학교 #남영동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관 #남태령아스팔트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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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역사와 문학, 장소의 기억을 연결하며 ‘인문 역사 기행’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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