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 509호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사망한 장소
김은진
5층에는 15개의 조사실(건축 당시 총 18개의 조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긴 복도를 따라 서로 마주 보지 않게 지그재그로 조사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벽이 두껍고 조사실마다 폭 30cm의 수직창이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창틀의 너비를 빼면 실제 빛이 들어오는 폭은 약 20c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창의 폭을 좁게 한 이유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의자와 책상은 모두 바닥에 고정되어 있고, 전등은 철망으로 막아 자해할 수 없게 했다. 벽에는 흡음판을 설치되어 고문으로 인한 소리가 건물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썼고 대신 옆 피해자들에게는 고통받는 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509호 앞에 섰다. 바로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욕조는 다른 곳에 비해 길이가 짧고 깊이가 깊어 고문을 위한 욕조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에 이불과 베개가 놓인 침대가 있었는데 고문으로 눕지도 잠도 잘 수 없는데 그렇게 침대를 놓아둠으로 결의를 접고 빠르게 굴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악으로 똘똘 뭉친 공간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다. 박종철 군은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운 군의 소재를 추궁받던 중이었다. 경찰 대공수사관들은 결박당한 두 다리를 들어 올려 물고문을 가했다.
사망 후에도 조사관들은 고문에 의한 사망이 아닌 의료 사고 등으로 조작하려 했다. 전두환 정권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변명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이 사건으로 직선제 개헌과 정권 타도를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고 6월 항쟁 기폭제가 되었다.
다음 전시실에서 박종철 열사 추모행렬 있는 사진을 보았다. 들불처럼 일어난 사람들, 1987년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타오르는 마음이 서울 도심에 가득했다.
"종철아 잘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말이 없대이."
박종철 열사의 운구차에 매달았던 문구가 보였다. 일행 중 신영배 6.15경기중부 평화연대 집행위원장이 먹먹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박종철 열사의 죽음 전국적으로 고문추방 운동이 일어났고 직선제 개헌과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김은진
함께 간 일행 중에는 80~90년대 학생으로 노동자로 시민으로 거리 투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붉어진 눈시울을 누르고 울렁이는 마음을 추슬렀다.
그날이 오면
1층으로 다시 내려와 '기억의 통로'라는 작품을 마주했다. 사람이 엎드린 형상의 얇은 스테인리스 조각품이 나란히 열을 이루고 있었다. 박종철 열사를 비롯하여 고문 피해자 400여 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억의 통로 사람이 엎드린 형상의 얇은 스테인리스 조각품이 나란히 열을 이루고 있었다. 박종철 열사를 비롯하여 고문 피해자 400여 명을 상징하는 것
김은진
희생자를 기리는 통로를 지나며 그들의 넋을 어루만지듯 작품을 쓰다듬었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짧은 풍경 소리처럼 들렸다.
M1관에서 서재순 해설사가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 중에 떠오르는 곡이 있는지 물었다.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던 노래다. 이렇게 대공분실이 민주화 기념관으로 바뀐 걸 보면 그날이 온 걸까.
시민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있기에 계속 노력하고 있고 혹여 민주주의가 위협 받는다면 또다시 일어설 것이다. 12.3계엄 때 그랬듯이. 전시관에서 아픈 역사 지나오느라 한낮의 봄볕에도 서늘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밖으로 나와 6·15경기중부평화연대 일행과 인왕산으로 향했다. 푸른 5월의 산하에는 열사들의 못다 한 청춘을 대신하듯 아카시아꽃이 만발해 있었다.
※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 안내
기념관은 새로 지은 M1과 기존 대공분실인 M2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M2 건물 입장을 위해선 사전 예약이나 현장 접수를 해야 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관람시간: 화요일 ~ 일요일 10:00 ~ 18:00 (입장 마감: 17:00)
· 휴관일 :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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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아름답고 재미난 이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오고가며 마주치는 풍경을 사진과 글로 담는 작가이자 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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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이 다른 욕조와 침대... 악으로 똘똘 뭉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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