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우기라는 '물건'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5월 19일 발명의 날, 문종·장영실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전국적 강우 관측·보고 체계였다

등록 2026.05.11 16:23수정 2026.05.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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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발명의 날이 다가오면 측우기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지곤 한다. '측우기의 진짜 발명자는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었다'는 요지의 기사까지 나오기도 한다. 근거는 세종실록 세종 23년 4월 29일 기록이다.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 궁중에 두어 빗물이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다."

실제로 이 기록을 보면 세자였던 문종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존 방식으로는 비의 양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문제를 제기하고 실험을 이끈 인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곧바로 "측우기 발명자=문종"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는 누가 설계했고 누가 제작했는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부와 과학계는 같은 실록 기록을 근거로 장영실을 조선 과학기술의 상징으로 기념해왔다. 서울 강남의 과총회관과 경기 성남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앞에는 지금도 장영실과 측우기를 형상화한 동상이 서 있다.

물론 이러한 상징과 기억이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오랫동안 형성된 역사적 해석을 수정하려면 그에 걸맞은 수준의 증거가 필요하다. 현재 공개된 세종실록 기록만으로는 측우기의 설계·제작 주체를 특정 인물로 단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는 왜 '측우기'보다 '측우제도'에 주목하나

세계는 왜 조선의 측우제도에 주목하기 시작했나 2025년 영국 학술매체 The Conversation에 게재된 ‘What the world can learn from Korea’s 15th-century rain gauge’ 기사 화면. 사진에는 세종대왕 동상과 측우기 모형이 함께 보인다. 해외 독자들은 ‘세계 최초 측우기’ 주장에는 일부 반론을 제기했지만, 조선이 전국적으로 시행한 측우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뚜렷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이를 기후위기 시대의 공공 데이터 관리와 기후 적응 시스템의 역사적 사례로 다시 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https://theconversation.com/what-the-world-can-learn-from-koreas-15th-century-rain-gauge-261530
▲세계는 왜 조선의 측우제도에 주목하기 시작했나 2025년 영국 학술매체 The Conversation에 게재된 ‘What the world can learn from Korea’s 15th-century rain gauge’ 기사 화면. 사진에는 세종대왕 동상과 측우기 모형이 함께 보인다. 해외 독자들은 ‘세계 최초 측우기’ 주장에는 일부 반론을 제기했지만, 조선이 전국적으로 시행한 측우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뚜렷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이를 기후위기 시대의 공공 데이터 관리와 기후 적응 시스템의 역사적 사례로 다시 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https://theconversation.com/what-the-world-can-learn-from-koreas-15th-century-rain-gauge-261530 한무영

2025년 8월 필자는 영국 학술매체 The Conversation에 측우기와 빗물에 관한 글을 기고했고, 해외 독자들과 흥미로운 토론을 경험했다. 일부 독자들은 중국 수학자 Qin Jiushao가 1247년 <수서구장>에서 이미 강수량 계산 방법을 설명했다는 점을 들어 "세계 최초 측우기"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 반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비를 관찰하고 계산하려는 시도는 여러 문명에서 존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해외 토론자들은 "세계 최초 측우기" 주장에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조선의 전국적 측우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뚜렷한 반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일까. 세종 23년 음력 8월 18일, 조선은 더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동일 규격의 측우기를 제작해 중앙과 지방에 설치하고, 각 고을 수령이 직접 강우량을 측정해 중앙정부에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즉 비를 단순히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가 측정하고 기록하며 관리하는 체계를 만든 사건이었다. 이날은 양력으로 환산하면 일반적으로 9월 3일 전후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조선이 세계사적으로 더 주목받아야 할 부분인지 모른다. 측우기는 유형의 기구다. 그러나 측우제도는 무형의 시스템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세계에 더 널리 알려야 할 것도 바로 후자다.


UNESCO에 올려야 할 것은 쇠그릇이 아니라 시스템

우리는 오랫동안 측우기라는 '물건' 자체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세계가 더 놀라는 것은 오히려 다른 부분일 수 있다. 국가가 비를 측정했고, 지방 관료에게 직접 책임을 물었으며, 그 데이터를 중앙정부가 관리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순한 과학기술이 아니었다. 가뭄과 농업, 세금과 백성을 연결한 행정 시스템이자 기후 데이터 관리 체계였다.

어쩌면 우리가 UNESCO에 등재해야 할 것은 논쟁이 이어지는 측우기 자체가 아니라, 측우제도인지도 모른다. 측우기는 발명품이지만, 측우제도는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후위기에 대응했던 조선의 측우제도를 단순한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류의 기후 적응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며, UNESCO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재조명하자는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오히려 15세기 조선의 측우제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다시 읽는 세종의 질문

오늘날 세계는 기후위기를 이야기한다.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고, 비는 재난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비를 "많다, 적다" 정도로만 말하고 있다. 하지만 15세기 조선은 이미 달랐다. 비를 수치로 기록했고, 공공 데이터로 관리했으며, 그 책임을 지방 관료에게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과학기술이 아니라, 비를 백성과 연결한 행정 철학이었다.

한글 반포 때 세종은 "백성을 가엾이 여겨…"라고 말했다. 측우제도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모른다. 가뭄이 오면 세금을 줄이고, 농사를 살피기 위해 비를 기록했다. 즉 측우기는 단순한 기구가 아니라 백성을 위한 데이터였던 셈이다.

발명의 날을 맞아,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할 때다.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왜 비를 기록했고 무엇을 위해 그것을 관리했는가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발명의 날(5월 19일)을 계기로 측우기와 측우제도를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 작성했습니다. 필자는 2025년 8월 영국 학술매체 The Conversation에 측우기와 빗물 관련 글을 기고한 바 있으며, 이후 해외 독자들과의 토론 과정에서 “세계 최초 측우기” 주장보다 조선의 전국적 측우제도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 글은 문종이나 장영실 가운데 누구를 단정적으로 옹호하거나 부정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다만 역사적 해석을 바꾸고 새로운 발명자를 제시하려면 그에 걸맞은 수준의 사료와 기술사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충분한 검토 없이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 세우는 것은 오히려 그 인물의 역사적 가치와 품격을 가볍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조선의 측우제도를 기후 적응과 공공 데이터 관리의 역사적 사례로 바라보며 UNESCO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재조명하자는 논의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비를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함께 기록하고 관리해야 할 공공 자원으로 다시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세종실록 1441년 8월 18일 기록을 근거로 양력 9월 3일 전후를 ‘세계 비의 날(UN Rain Day)’로 기념하자는 제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측우기발명 #측우제도 #UNESCO세계무형문화유산 #세계비의날 #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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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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