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장함을 자랑하는 부다페스트 세체니 온천 전경
김종섭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노천 온천장으로 향했다. 노천탕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사이 중앙 수영장은 보수 공사로 운영하지 않았다. 실내에는 온도별 온천탕과 건식 사우나, 그리고 수증기가 가득한 증기 사우나(Steam Bath)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우나에 들어서는 순간 유황 냄새가 목 안까지 파고들어 숨쉬기가 다소 불편했다. 결국 사우나 문을 열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다시 야외로 나와 버렸다.
노천 온천장에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단체 여행을 온 젊은이들부터 신혼부부, 우리처럼 가족 단위의 여행객까지 온천뿐 아니라 관광지 곳곳에서 마주했다. 온천욕을 즐긴 지 2시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소나기성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속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차가운 비를 맞는 노천욕은 색다른 묘미였다. 당초 두 시간 정도를 예상했으나 비가 멈출 시간을 기다리면서 한 시간 정도를 더 온천욕을 하고, 이내 비가 멈추지 않아 온천욕을 마무리하고 우버를 이용해 숙소 근처 맛집에 도착했다. 12시 이전이라 조식 메뉴만 가능하다기에 비를 피하며 커피와 음료, 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대신했다.
잠시 후, 하루 종일 올 것 같았던 비가 멈추고 햇살이 비추었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 젖은 수영복과 밀린 빨랫감들을 세탁기에 돌려 정리를 마치고 다시 시내 투어에 나섰다. 첫 목적지는 현지인의 삶이 녹아 있는 재래시장인 '그레이트 마켓 홀'이었다. 시장 안은 온갖 물건들로 즐비했는데, 특히 헝가리의 상징인 파프리카 가루를 정성껏 포장해 파는 상점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느끼는 '덤'과 같은 따뜻한 인심을 기대하며 시장 곳곳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구매할 것은 없었지만 눈으로 풍경을 가득 담은 뒤, 미리 검색해 둔 맛집으로 이동했다.

▲ 헝가리 특산품인 파프리카 가루와 다양한 식재료가 가득한 재래시장 내부
김종섭
아들이 여행 내내 신중하게 고른 평점 좋은 맛집으로 향했다. 식당 근처에 다다랐을 때 또다시 천둥번개와 함께 거센 비가 내렸으나, 다행히 금세 잦아들었다. 이른 저녁이라 식당 안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운 좋게 '해피아워' 시간과 겹쳐 15% 할인을 받을 수 있었고, 직원들도 매우 친절했다.
헝가리 대표 음식인 굴라시(Gulyás)와 닭고기로 만든 슈니첼(Schnitzel), 그리고 부드러운 소스가 곁들여진 파스타까지 총 세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직원이 굴라시를 호박 모양의 빵 그릇에 담아줄지 물었으나, 우리는 따뜻한 국물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익숙한 냄비 그릇을 선택했다. 대신 서비스로 빵을 가져다주었는데, 한국의 육개장처럼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국물에 푹 찍어 먹으니 색다른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부다페스트의 음식 가격은 프라하보다 다소 비싼 느낌이었다. 오늘 식사 비용으로 약 12만 원 정도를 지불했는데, 예상보다 헝가리 물가는 높았다. 다만 여행지에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제대로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식사였다.

▲ 주문한 음식들 ,한국의 육개장과 비슷한 맛의 굴라시와 바삭한 슈니첼
김종섭
식사를 마치고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국회의사당 야경 투어를 위해 이동했다. 야경이 시작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의사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다뉴브강가의 신발들(Shoes on the Danube Bank)' 추모비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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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뉴브강가에 홀로 남겨진, 누군가의 마지막 발자취를 추모하는 신발들 ⓒ 김종섭
강변을 따라 걷다 마주한 수많은 금속 신발 앞에서 우리 가족은 잠시 숙연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이곳에서 상황은 다르지만 '물 위의 희생'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세월호가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우리는 이곳의 묵직한 분위기와 역사적 의미를 영상으로 정성껏 담았다.
추모비를 뒤로하고 국회의사당 야경을 보기 위해 마르기트 다리(Margaret Bridge, 마가렛 다리)를 건너갔다. 이 다리는 국회의사당의 웅장한 정면 뷰를 한눈에 담기에 가장 좋은 야경 명당으로 통한다. 어둠이 내리기 전인데도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고, 야경을 보기 위한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주차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상당수였다.
서서히 어둠이 깊어지면서 국회의사당의 조명이 하나둘 켜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흔히 세계 3대 야경을 말하곤 하지만,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형언할 수 없는 우아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오늘은 낮부터 밤을 공유하면서 국회의사당의 변화하는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으며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의 야경 전경[
김종섭
일정을 마치고 숙소까지 약 45분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한강 다리를 건너듯 세체니 다리(Chain Bridge)를 건너며 바라본 부다페스트의 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세체니 다리는 도나우강의 부다와 페슈트 지역을 잇는 최초의 다리로, 입구의 사자 조각상이 상징적인 곳이다.
밤이면 수많은 조명이 진주 목걸이처럼 빛나 도시의 품격을 더해준다. 멀리 보이는 부다성과 어부의 요새 야경 또한 의사당 못지않게 멋진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늘 하루 부다페스트 곳곳에 우리 가족의 수많은 발자취를 남긴 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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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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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온천부터 야경까지, 부다페스트에서 보낸 알찬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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