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길 검사 숭실전문학교 졸업 앨범 속 박찬길. 현재 그의 유일한 사진이다.
유족 제공
그러나 여순사건 직후인 1948년 10월 23일, 경찰 토벌대는 박 검사에게 '인민재판장' 혐의를 씌워 재판 없이 총살했다. 당시 법원 서기 방기환씨 등 20여 명의 민간인과 함께 순천농림학교(현 순천대학교 ) 인근에서 희생됐다.
이 사건은 유족들의 탄원으로 이듬해 광주지방검찰청이 수사에 나서며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박 검사가 인민재판장을 맡았다는 혐의가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내렸다. 당시 수사에서는 일부 경찰이 과거 대한노총 계열 사건 수사 과정에서 박 검사에게 개인적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여순사건의 혼란 속에서 그에게 좌익 혐의를 덧씌운 정황도 드러났다.
또 검찰 수사에서는 경찰 사찰계 인사들이 박 검사의 부친 박인서 씨까지 폭행해 숨지게 한 사실과 허위 자술서를 작성한 정황도 확인됐다. 당시 광주지검은 이를 두고 "하등 근거 없는 조치"라고 밝힌 바 있다.
박 검사의 아들 박경진 목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억울하게 잃고도 당시에는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다"며 "이제라도 국가가 희생자로 인정해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찬길 검사와 함께 즉결처형된 법원 서기 방기환 씨의 희생은 아직 공식 인정되지 않은 상태다. 당시 검찰 수사가 박 검사 사건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방 서기 관련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유족이 희생자 신청 절차를 밟고 있으나, 관련 자료와 가족관계 입증 서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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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누명 쓰고 즉결처형된 박찬길 검사, 78년 만에 희생자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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