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정녕 우리 밭에서 나왔단 말인가... '이게 진짜 농사짓는 맛'

귀농 2년차, 초보농사꾼 부부의 첫 수확

등록 2026.05.14 15:09수정 2026.05.14 15:0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밭에 정식한 토마토와 감자 이제 작물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시기다.
▲밭에 정식한 토마토와 감자 이제 작물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시기다. 김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마트나 시장에 가 채소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진열된 채소에 붙은 가격을 보고 '비싸다'라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씨앗에서 모종으로, 모종에서 수확되기까지 작물에 들인 농부의 정성과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마트에 나오는 싱싱한 채소들을 보면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제철이 아닌데도 저리 싱싱하게 나오려면 난방비가 무척 많이 들었을 텐데 싶어 이제는 가격표를 보고도 군소리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는다.

(관련기사: 한 방에서 옹기종기, 초보농사꾼 부부와 함께 자라는 것 https://omn.kr/2hkby)


이제 밭에 심어둔 작물들이 본격적으로 눈에 띄게 속도전을 내며 자랄 5월이다. 작물마다 성장하기에 적당한 햇빛과 바람, 물을 만나는 시기가 따로 있다. 지금부터는 대부분의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충분한 햇볕, 시원한 바람 특히나 내가 일구는 밭은 바닷가 근처에 위치해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해풍이 불어온다. 간혹 밭일 하다 코끝으로 바다 냄새가 스치면 굽혔던 허리를 한번 피고 바닷가 쪽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기도 한다.

사실 지난해 처음 이 밭에 고추를 심고 수확을 하는 동안 궁금했다. '농사짓는데 해풍이 정말 좋은 게 맞아?' 고추는 병해충에 취약한 작물이라 적정 시기에 병해충 방지를 위해 방제(농약 살포)를 10회 내외로 해줘야 한다. 그런데 실제 지난해는 방제 횟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의아했다. 이웃 할아버지가 그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날아오는 바닷바람에 각종 영양분이 들어있어. 그리고 낮에 땅이 햇볕에 달아오를 때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땅 온도를 낮춰주는 거야. 그래서 농사가 잘돼. 복 받은 거야."

그렇게 복 받은 밭에서 어느덧 2년째 밭을 일구고 있다. 밭에 심고 싶은 작물의 모종을 사와 심을 수도 있지만, 잠시 농사일을 접고 숨을 고르던 지난겨울, 씨앗을 심어 모종으로 키워보자던 남편의 제안으로 고추, 오이, 브로콜리, 토마토, 부추 키우기에 성공했다.

그렇게 자란 모종은 시기에 맞게 밭으로 옮기는 정식(씨앗이 뿌려 키운 모종을 밭에 제대로 옮겨 심는 과정)을 마쳤다. 시장에서 돈만 주면 쉽게 사는 모종과 달리, 씨앗부터 심어 정식까지 마친 작물들은 어린 자식처럼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갔다. 밭으로 갈 때면 '지난밤에 잘 있었니?', 집으로 돌아갈 때면 '밤새 잘 지내거라' 그렇게 들여다보는 것이 귀농 2년 차인 남편과 나의 쏠쏠한 즐거움이었다. 5월의 따스한 햇볕과 파도에 실려 넘어오는 해풍을 맞아 작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첫 수확물


첫 수확물 오이1개 첫 오이를 수확했다. 앞으로도 하나하나씩 선물처럼 아침마다 1개씩 열릴거다.
▲첫 수확물 오이1개 첫 오이를 수확했다. 앞으로도 하나하나씩 선물처럼 아침마다 1개씩 열릴거다. 김희

그리고 14일 아침, 드디어 밭에서 첫 수확물이 나왔다. 노란 꽃이 진 자리에 초록색 가시로 촘촘하게 날 세우며 길쭉하게 자란 오이 1개, 초록색 잎 사이에서 풍성하게 피워낸 브로콜리 1개…. 감동이다. 핀셋으로 겨우 집을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모종으로, 이후 제 모습을 갖추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본 나에게는 단순한 수확물을 넘어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자 뿌듯함이다.

초록빛 오이 1개와 묵직한 브로콜리 1개를 손에 들고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진짜 농사짓는 맛이지….' 누가 들으면 엄청난 수확이라도 한 줄 알았을 것이다.


첫 수확물 브로콜리 1개 남편이 브로콜리 매대앞에서 망설이던 나를 위해 길러준 귀한 브로콜리다.
▲첫 수확물 브로콜리 1개 남편이 브로콜리 매대앞에서 망설이던 나를 위해 길러준 귀한 브로콜리다. 김희
브로콜리 수확전 모습 브로콜리는 처음 키워봤다. 화려한 어떤 꽃다발보다 이쁜 꽃송이다.
▲브로콜리 수확전 모습 브로콜리는 처음 키워봤다. 화려한 어떤 꽃다발보다 이쁜 꽃송이다. 김희

사실 브로콜리는 처음 키워봤다. 지난겨울, 시장의 브로콜리 가격 앞에서 선뜻 장바구니에 담지 못하고 망설이던 나를 보고 남편이 모종을 키우면서 밭에 추가된 작물이었다. 작물이 하나 늘면 남편의 손길이 더 바빠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퇴직하고 흙을 일구며 오랜 직장 생활의 피로를 풀고 있는 나를 배려해 작물을 추가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남편이 정성껏 키워낸 묵직한 꽃송이 브로콜리다. 어떤 화려한 꽃다발보다 더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여보, 고마워. 한 톨도 안 남기고 먹을게.'

직장 생활을 끝내고 내려온 귀농 2년 차 부부, 때론 얼기설기한 일로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일이 서툰 나를 남편은 타박하지 않고 챙겨준다. 삽질로 마무리해야 하는 일은 내게는 힘겨울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와서 마무리를 자청하는 남편 덕분에 나의 서툰 삽질은 늘 깔끔한 마무리로 해피엔딩이다.

비닐하우스 안 참깨모종 파종한지 보름되는 참깨모종이다. 본잎이 나오면 얘들도 밭으로 정식할예정이다.
▲비닐하우스 안 참깨모종 파종한지 보름되는 참깨모종이다. 본잎이 나오면 얘들도 밭으로 정식할예정이다. 김희

아직 비닐하우스 안에는 밭에 정식하지 않은 '참깨' 모종이 자라고 있다. 이제 보름 남짓 된 모종에서 본잎이 나오면 밭에 옮겨 심을 것이다. 먼저 밭으로 나간 다른 작물들이 쑥쑥 자라 오늘 첫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었듯 비닐하우스 안 참깨들도 밭 한자리에 터를 잡을 것이다. 다만 참깨는 뿌리가 매우 약하고 예민해 햇볕이 쨍한 낮에 심으면 안 된다고 한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 심어야 모종이 마르지 않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다고 하니 일기예보를 잘 살펴보며 참깨 심기에 가장 좋은 날을 신중하게 점지해야겠다. 올해 참깨를 키워 꼭 참기름을 짜보자고 다짐한 터라 참깨 정식 일은 남편과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 모종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밭에 옮겨 심는 날, 우리 부부의 손길은 또 한 번 분주해질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할 일을 마치고 저녁 식탁에 올라올 오이 1개와 브로콜리 1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씨앗에서 시작해 모종을 길러 손에 든 첫 수확물까지, 진짜 농부가 되어가는 우리의 귀농 2년 차 5월은 이렇게 따스하게 지나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밭농사 #모종키우기 #귀농부부 #귀농 #초보농사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35년 직장생활을 마쳤다. 이제 나는 자유인이다. 지금은 듀얼라이프, 도시와 시골 반반살기, 지금까지 나를 앞으로 나를 기록하는 글쓰기도 시작해본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커피가 얼마나 잔인한 음료인 줄 아나?" 유학생 각성시킨 미국 교수 "커피가 얼마나 잔인한 음료인 줄 아나?" 유학생 각성시킨 미국 교수
  2. 2 여행지에서 사 온 선물 챙겨 갔는데... 담임 교사가 한 뜻밖의 말 여행지에서 사 온 선물 챙겨 갔는데... 담임 교사가 한 뜻밖의 말
  3. 3 초간편 여름 밥도둑 반찬, 이만한 게 없습니다 초간편 여름 밥도둑 반찬, 이만한 게 없습니다
  4. 4 이 대통령 "투표용지 사태 지적하는 청년들, 참으로 귀하고 존경" 이 대통령 "투표용지 사태 지적하는 청년들, 참으로 귀하고 존경"
  5. 5 송파구 개표소 앞 천여 명 집결... "선관위 해체·재선거" 목소리 높여 송파구 개표소 앞 천여 명 집결... "선관위 해체·재선거" 목소리 높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