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이 스승의 날에 내건 현수막 서울로봇고 학부모 일동이 학교 정문에 내건 현수막,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로봇고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출근하는 교사들을 맞았다.
오성훈
현수막을 미처 보지 못하고 출근했을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나는 학부모회 담당부장에게 현수막 사진을 찍어 전체 교직원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커피차 대신 드릴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34년 교직 생활 동안 수많은 환영사를 봤지만, 이 문장은 달랐다. 교사를 '성과'가 아니라 '존재'로 바라본 최초의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가 지난해 학교평가에서 학생, 학부모, 교직원 모두에게 '매우 우수' 판정을 받고, 특히 '학부모 민원 0건'이라는 기적 같은 기록을 세운 비결이 이 현수막 한 장에 응축되어 있었다.
사실 우리 학교는 기숙사형 학교라 부임 전만 해도 학부모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갈등의 핵심이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다고 보았다. 학교가 정보를 감출수록, 부모는 자녀의 단편적인 말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불신으로 이어진다. '모르면 두렵고, 두려우면 방어적이 되는 법'이다.
'민원 0건'의 비결, 유리벽 행정과 신뢰의 승리
그래서 나는 '유리벽 행정'을 시작했다. 공문 원문 공개율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매달 말이면 학교의 속살을 담은 '학교장통신'을 직접 편집 발행했다. "취업처 확보가 쉽지 않아 밤잠을 설친다"라는 교장의 솔직한 토로부터, "아이들의 급식 잔반이 줄어 대견하다"라는 소소한 칭찬까지 가감 없이 공유했다. 학교의 문턱을 낮추고 정보를 공동체의 자산으로 되돌려주자, 빗장을 걸어 잠갔던 학부모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민원 0건'은 학부모들이 불만이 없어서 만들어진 숫자가 아니다. 학교가 투명하게 고민을 공유할 때, 학부모님들이 '감시자'에서 '동반자'로 거듭나며 기꺼이 인내하고 응원해 주신 덕분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민원 0건은 학교가 잘해서가 아니라 학부모님이 학교를 믿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신뢰의 승리'다.
스승의 날, 나는 학생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꽃 한 송이와 학부모님들이 보내준 그 문장을 가슴에 달았다.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웃고, 학부모가 믿어줘야 학교가 바로 선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을 것이다. 우리 학교라는 자전거가 '신뢰'라는 동력을 얻어 아이들의 미래를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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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봇고등학교 교장. 『되풀이되는 비극, 따개비 현장실습』, 『디지털 대전환 시대 직업계고 미래는』 등 직업계고 학생들의 삶과 미래를 응원하는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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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문에 걸린 현수막, 34년 교직 중 이런 문구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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