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 15일 베이징 중난하이 정원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위험한 단어는 오히려 '안정'일 수 있다. 안정은 좋은 말이다. 미중이 충돌하지않는 것은 세계 경제와 안보에 분명한 이익이다. 그러나 안정이라는 말에는 항상 질문이 따라야 한다. 누구의 안정인가, 어떤 비용으로 유지되는 안정인가, 그 안정의 바깥에 놓인 국가는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가.
중국이 말한 전략적 안정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 중국의 '선을 넘지 않는 상태'에 가까운 안정이다. 미국이 말한 안정은 호르무즈 해협의 에너지 흐름 유지와 무역 성과, 국내 정치 부담 완화에 가까워 보인다. 일본이 두려워한 것은 이 두 안정이 맞물리는 순간이다. 미국은 경제와 에너지 성과를 얻고, 중국은 대만 문제에서 더 큰 발언권을 확보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물어야 할 질문도 여기에 있다. 미중의 전략적 안정이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는가. 대만해협의 긴장은 반도체 공급망과 안보 문제로 이어진다. 희토류는 자동차, 배터리, 방산, 전자산업의 원가와 납기 문제다. 호르무즈는 유가, 전기요금, 물류비, 소비자 물가의 문제다. 이 세 가지는 외교부 발표문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공장 가동률과 기업 투자, 청년 일자리와 가계부로 내려온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단순한 선택 구호가 아니다. 물론 동맹과 가치, 국익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복합위기의 시대에는 외교 구호만으로 안전을 만들 수없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강대국의 선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충격이 와도 버틸 수 있는 위험관리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첫째, 대만해협·호르무즈·희토류·반도체·배터리·금융시장·물류비를 하나의 국가복합위기 지도로묶어야 한다. 지금처럼 부처별로 위험을 따로 계산하면 위기가 겹칠 때 대응이 늦어진다. 외교안보 부처는 대만을, 산업 부처는 희토류를, 에너지 부처는 호르무즈를, 금융당국은 환율과 유가를 각각 따로 보는 방식으로는 복합충격을 설명할 수 없다.
둘째, 핵심광물 비축과 가공기술 확보를 산업정책의 주변 과제가 아니라 안보정책의 중심 과제로올려야 한다. 희토류는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다. 가공기술, 환경 규제, 숙련 인력, 대체 공급망, 재활용 기술이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 한국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면 구매처 다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가공기술 확보, 동맹국과 공동 비축, 기업별 비상 생산계획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셋째, 에너지 안보를 유가 전망이 아니라 해상수송로 리스크로 봐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중동 뉴스가 아니라 한국 물가 뉴스다. 유조선 통항, 보험료, 항만 물류, 전략비축유, LNG 조달, 전력요금이 모두 연결돼 있다. 정부는 위기 때마다 가격 안정 대책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주요 해상로 차질 시나리오와 산업별 충격 완화 방안을 미리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넷째, 국민에게 위험을 숨기지 않는 공적 언어가 필요하다. 국제정세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포장하면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안심시킬 수 있다. 그러나 위기가 실제로 닥쳤을 때 신뢰는 더 크게 무너진다. 안전사회란 위험이 없는 사회가 아니다. 위험을 미리 보이게 만들고, 충격이 와도 무너지지않도록 제도를 설계한 사회다.
베이징의 악수 뒤에 남은 한국의 질문
중국은 대만을 말했다. 미국은 호르무즈를 말했다. 일본은 그 사이에서 희토류와 대만을 같은 문장으로 읽었다. 한국 언론은 안정이라는 말 뒤에 남은 빈칸을 봤다. 그 빈칸이 바로 한국의 숙제다.
미중이 충돌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미중의 안정이 한국의 안전과 같은 말은 아니다. 강대국의 안정은 때때로 주변국의 침묵을 요구한다. 대만 문제에서 그 침묵이 시작되고, 희토류와 에너지에서 그 비용이 청구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회담의 핵심은 시진핑의 미소나 트럼프의 찬사가 아니다. 한국이 확인해야 할 것은 그미소와 찬사 사이에서 우리의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를 누가, 어떤 제도로 지킬 것인가다. 미중의 전략적 안정이 한국의 안전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면, 한국은 이제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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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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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은 '안정'을 말했지만, 한국은 '위험'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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