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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는 달 탐사보다 위대하다

[제26회 녹색순례 - 빼앗긴 갯벌에도 봄은 온다]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 수라갯벌 걸으며 마주한 생명들

등록 2026.05.15 17:59수정 2026.05.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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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오면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훼손되고 오염된 현장을 찾아 순례를 떠납니다. 올해는 수라갯벌로 향합니다. 빼앗긴 갯벌에도 봄이 오길 바라며 걸었습니다.[기자말]

저는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숱한 사건 중 유일한 경우로 지구가 만들어졌으며, 우주가 생명체를 만드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류가 끝내 외계의 생명체를 만나지 못한 채 지구에서의 생을 마감할 거로 추측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1968년, 아폴로 8호가 촬영한 사진을 감상하곤 합니다. 아폴로 8호에 탑승해 달 궤도 탐사에 나선 세 명의 지구인은 달의 지평선 너머로 지구가 떠오르는 광경을 담아 돌아왔습니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니 지구에서 해가 뜨듯 달에서도 지구가 뜨는 셈인데, 이 사진에는 '지구돋이'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대단한 우연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생명 가득한 지구가 냉랭한 회색빛 달의 대지 너머에서 떠오르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마음속에 일렁입니다. 흐릿한 사진 속 지구 안에 생태계라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리고 그런 생태계를 품은 행성이 우주에서 유일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이곳 지구가 정말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비가 쏟아지는 일이 기적으로 변하는 순간을 녹색순례단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일이 기적으로 변하는 순간을 녹색순례단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최황

빗물이 쏟아지는 기적

순례 첫날, 줄포만 갯벌에 도착한 우리의 어깨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갯벌을 왼편에 두고 걸은 지 채 30분이나 지났을까요. 강우량은 점점 늘어나고 거센 바람이 합세했습니다. 빗방울이 중력을 무시하듯 옆으로 몰아쳐 우의가 제 역할을 포기했고, 이내 온몸이 흠뻑 젖었습니다. 발목을 타고 흐른 빗물이 신발 속에 고였습니다. 순례단이 걷는 첫째 날 갯벌을 둘러 걷는 내내 거센 비가 그렇게 내렸습니다.

신발 속에 고인 물의 찝찝함을 털어내려 저는 다른 행성들을 떠올렸습니다. 태양계 안에서 물로 이루어진 비가 내리는 행성은 지구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가 어쩌면 무대를 우주 전체로 넓혀도 이런 비가 내리는 곳은 지구뿐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습니다. 진정한 우주 쇼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개기일식이나 유성우가 아니라 대기가 머금은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비가 우리 몸을 적시는 데 그치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대지 전체를 적시고 있으며, 이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고 뭇 생명의 몸집을 키운다고 생각하니 '비 맞기'라는 사건이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기적, 그래요. 기적입니다. 그 기적의 시간을 걷는 사이, 순례단 오른편 논에서 백로 몇 개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하나가 유독 커 보였습니다. 가방에서 망원경을 꺼내 눈가에 댔습니다. 렌즈를 통해 망막에 맺힌 건 저어새의 모습이었습니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불과 30여 미터 거리에서 조우한 겁니다. 생전 처음 저어새를 목격한 저는 빗속을 걸으며 '멸종위기종'이라는 말을 속으로 곱씹었습니다.


저어새가 던진 화두

지난 100년 사이, 지구상에서 수많은 생물이 멸종했습니다. 학계에선 하루 평균 130여 종의 생물종이 멸종한다고 합니다. 연간으로 치면 최소 1만 종입니다. 지구에서의 멸종은 우주에서의 영원한 소멸을 의미합니다.

지구를 벗어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존재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주가 아무리 광활해도, 지구에서 일어나는 생명체의 멸종은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의 사건입니다. 이곳이 그들의 유일한 터전이니까요. 그리고 이 거대한 절멸을 만든 건 다름 아닌 우리 지구인입니다.

우리는 불과 100년 사이에 수십만 년에서 수백만 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숱한 생물들을 지구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을 벌이면서 우리는 스스로 '멸종위기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저어새와 같은 종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모순 사이에서 저어새 한 마리가 순례 내내 제게 무거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우리는 오늘 지구에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수라갯벌에 들고 있는 녹색순례단
수라갯벌에 들고 있는 녹색순례단 녹색연합

수라갯벌이라는 우주 속으로

짧게는 십수 킬로미터, 길게는 스물몇 킬로미터를 걷는 사이에 우리는 갯벌 옆을 스쳐 산을 넘고 간척지를 가로지르다 갯벌을 딛기도 했고 강을 따라 난 길을 거슬러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바다와 산과 강에 사는 많은 생명과 마주쳤습니다.

순례 기간 내내 노루, 고라니, 물닭, 검은머리갈매기, 민물가마우지, 괭이갈매기, 까마귀, 백로, 왜가리, 멧비둘기를 봤고 식견이 짧아 채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달팽이류와 맹금류와 도요물떼새 무리를 만났습니다. 오소리와 수달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걸 보고는 웅크려 앉아 한참을 수군거리기도 했습니다.

얼굴 앞에서 곡예비행을 하듯 귀찮게 구는 날벌레들과 산길을 걸었고, 계곡 근처에서 무당개구리를 마주쳤을 때는 실례를 무릅쓰고 장갑 낀 손 위에 잠시 올려 동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물닭이 얼마나 오래 잠수해 사냥을 하는지 지켜봤고, 고라니가 들판을 가로지르는 폭발적인 탄력에 감탄했습니다.

이들과 우리는 오직 이 지구만을 나눠 쓸 수밖에 없는 지독히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지구를 몇 개나 보유한 존재인 양 아무렇지 않게 이곳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새만금 신공항을 짓겠다는 곳을 한번 볼까요?

군산공항 옆에는 넓디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초원이라 표현했지만 이곳은 사실 수라갯벌입니다. 갯벌 상당 부분이 염습지로 변해 지금은 초원처럼 보이지만, 지난 30년간의 새만금 사업에도 불구하고 수라갯벌은 생명체를 한가득 끌어안고 있는 작은 우주입니다.

이 우주에는 많은 염생식물과 높이 자란 갈대밭이 광범위하게 뻗어 있습니다. 오목눈이를 비롯한 작은 새들이 갈대를 붙들고 먹이 활동을 합니다. 순례단의 기척을 느낀 고라니가 자리를 옮겼고, 장지뱀이 재빠르게 몸을 숨겼습니다. 기러기를 비롯한 철새가 드나들었고, 민물가마우지가 보금자리와 사냥터를 오가며 이곳을 가로질렀습니다.

지척에 오소리 발자국과 수달의 흔적이 있었고, 삵의 똥에는 소화되지 않은 누군가의 털이 섞여 있었습니다. 땅을 기는 거미들, 곧 모기가 될 장구벌레들, 나비와 나방들, 도시에선 보기 어려운 왕잠자리들도 보였습니다. 보인 것이 전부가 아니겠죠. 우리 시야 바깥의 그 모든 터전을 더 많은 생명이 가득 채우고 있었을 겁니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작은 우주, 수라갯벌의 시공간은 그리 이루어져 있습니다.

 군산공항에서 이륙한 미군 항공기가 민물가마우지의 집단 서식지 위를 선회하는 모습
군산공항에서 이륙한 미군 항공기가 민물가마우지의 집단 서식지 위를 선회하는 모습 최황

이곳은 인간만의 시공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우주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십 분이 멀다 하고 생명의 기운을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전투기가 날아오르고 있으니까요. 공중급유기로 보이는 커다란 기체도 수시로 이착륙을 반복합니다. 군산공항을 이용하는 미 공군 항공기들입니다. 민간 항공사는 진에어 한 곳뿐으로, 하루 세 번 제주도에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게 전부입니다. 이 공항은 사실상 미군이 점용 중인 군 공항입니다.

순례단이 수라갯벌에 머무는 사이 미군 전투기가 이륙 직후 급상승 기동을 하며 음속을 돌파했습니다.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음파가 귀를 막은 손을 파고들어 고막을 찔렀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해 매일 포격 소식이 들려오는 터라 더욱 불쾌했습니다.

막 이륙한 전투기는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이동하는 경로를 가로질렀고, 놀란 가마우지 무리는 황급히 방향을 돌려 흩어졌습니다. 강조합니다만, 수라갯벌은 수많은 생명의 터전이자 텃새와 철새들이 서식지와 먹이터 사이를 이동하는 주요 경로입니다.

이 땅에 공항이 들어서면 안 되는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새와 항공기의 충돌 위험이 굉장히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고 견고한 논리가 구성됩니다. 지난해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낸 취소 소송에서 공항 기본 계획 취소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토교통부는 항소했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신공항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묻고 싶습니다. 수라갯벌에 직접 와 본 적이 있는지를. 이 땅을 딛고 서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본다면, 이곳이 우주에서 중요한 곳 중 하나임을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공항을 위해 이 우주를 콘크리트로 덮어버리자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을 겁니다.

 수라갯벌에 살고 있는 고라니가 전력을 다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수라갯벌에 살고 있는 고라니가 전력을 다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녹색연합

지구를 촬영한 사진의 의미

마침 순례 기간 중 미항공우주국의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가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아르테미스 2호는 반세기 전 아폴로 8호가 촬영했던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영상과 사진을 잔뜩 담아 실시간으로 전송했습니다.

8K 해상도로 촬영된 달과 지구의 모습, 미러리스 카메라로 재촬영한 '지구돋이'는 SNS에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왠지 아폴로 8호의 그것과는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기술적으로나 광학적으로나 훨씬 진보한 이미지가 만들어졌으나, 이미지가 가진 아우라는 사라졌습니다. 그 사이에 지구가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 겁니다.

아폴로 8호가 촬영한 지구는 지금과 확실히 다른 지구였습니다. 1968년의 대기는 지금보다 투명했고, 산호가 말라 죽는 백화 현상은 없었으며, 열대우림은 지금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새만금을 비롯한 서해 갯벌 역시 온전한 모습이었습니다. 우주에서 내려다본 그 푸른 행성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지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보며 지구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실감했고,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감각을 얻었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아폴로 8호가 '지구돋이' 사진을 가지고 돌아온 이듬해,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대규모 원유 유출 사고가 터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1970년에 첫 지구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해 말 미국에 환경청이 출범했고, 청정대기법과 수질법 등이 제정됐습니다.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의 이미지가 지구인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던 시절과 비교해, 오늘의 아르테미스 2호가 만들어낸 수많은 디지털 이미지 속 지구는 어떻습니까. 지난 반세기 동안 척추동물 개체수는 평균 70% 가까이 줄었고, 그사이 수십만 종의 생물이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아마존은 군데군데 갈색으로 패였고, 산호초의 절반은 표백되거나 죽었습니다. 갯벌은 간척돼 직선의 육지로 바뀌었고, 곳곳의 산이 잘려 나갔습니다.

아르테미스 2호가 촬영한 그 선명한 화질의 지구 사진은 지구인의 욕망과 과잉된 자의식의 결과로 제가 선 땅을 파괴한 상처들을 더 또렷하게 보여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우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우라가 깃들었던 대상 자체가 달라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전쟁이 미국의 주도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군산공항에서 이륙한 전투기의 굉음과 지구인을 싣고 우주로 발사되는 우주선의 굉음이 다르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 전쟁들 때문이었겠죠.

 수라갯벌에 찍힌 생명체의 발자국. 좌측은 너구리로 추정되고, 우측은 오소리로 추정됩니다.
수라갯벌에 찍힌 생명체의 발자국. 좌측은 너구리로 추정되고, 우측은 오소리로 추정됩니다. 녹색연합

지구인으로 거듭나는 녹색순례의 힘

저는 순례를 마친 뒤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됐습니다. 아르테미스 2호의 달 탐사보다 녹색순례가 훨씬 가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 순례를 통해 중요한 감각을 되살렸습니다. 우리를 중력으로 붙잡고 있는 이 땅과 관련한 오래 된 감각 말입니다.

이곳이 비가 쏟아지는 우주 유일의 행성임을 새삼 떠올리고, 발밑에서 느껴지는 갯벌의 질퍽함과 전투기 굉음에 흩어지는 가마우지 떼의 움직임 같은 것들을 다시 감각했습니다. 지구를 지키자는 말의 의미를 갯벌을 딛고 서서 자세히 헤아렸습니다.

수라갯벌은 이 행성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거점입니다. 거기엔 정말이지 수많은 생명체가 깃들어 있습니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점 하나에 불과할 이곳이,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주 전체가 됩니다.

그러니 이 순례는 단순히 길을 걷는 행위가 아니라 우주 탐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탐사한 우주 곳곳에서 귀한, 귀하디귀한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수많은 생명과 지구를 공유하는 지구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녹색순례의 진정한 힘임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수라갯벌의 사진을 천천히 감상해 보기를 당부합니다. 우주 전체에서 오직 수라갯벌만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수많은 생명이 있음을 감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 감각으로 우리가 지구인이라는 사실을 되살려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어새가 날갯짓하며 제개 던진 화두를 다시 나눕니다.

'우리는 오늘, 지구에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소속입니다.
#녹색연합 #녹색순례 #새만금 #수라갯벌 #새만금신공항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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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은 성장제일주의와 개발패러다임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인간과 자연이 지구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초록 세상의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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