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을 갯벌이라 부르기

[제26회 녹색순례 - 빼앗긴 갯벌에도 봄은 온다] '새만금'에서 돌아와 쓴 편지

등록 2026.05.18 10:12수정 2026.05.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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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6년 4월 녹색순례 ‘빼앗긴 갯벌에도 봄은 온다’를 마치고 돌아와, 새만금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북녹색연합 활동가 희진과 수라갯벌을 지키는 동지들 보내는 이야기이다.[기자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엄지발가락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다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새만금'이라고 불리우는 수라갯벌과 바람 모퉁이에 있는 희진, 당신은 '이상한 확신'을 갖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테지요. 그러나 나는 일주일을 빌려 걷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 차이를 잊고 싶지 않아서 굳이 이렇게 씁니다.

일주일의 여정 동안 나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들은 어르신들의 대화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전라도에서는 나를 무시하는 사람한테 뭐라구 하는지 알어? '얌마 나를 뻘로 봐?' 거기에는 바다에 뻘이 많단 말이야."

"서울에서는 '나를 졸로 보냐?'라고 하지. 장깃말의 졸."

"근데 말이야, 졸을 잘 써야 돼. 졸을 잘 써야 이겨."

나는 그때 무엇을 뻘로 본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졸을 잘 쓴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한 시대의 이름이었다는 것도, 한참을 걷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뻘이 만들어지는 시간

줄포만도 그저 그런 뻘들 중 하나였을 텐데, 곳곳의 팻말에는 갯벌습지보호구역이라든가 '람사르' 라는 이름이 자랑스럽게 걸려있었습니다. 낮은 지대의 침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시가지를 정리했지만, 둑 바깥으로는 갯벌과 염습지로 남았습니다.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곳이 그 자리였다고요. 순례를 기획한 활동가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생물들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줄포만에 나와 있는 생물은 우리뿐이었지요. 비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쳤습니다. 우리는 고개를 외틀고 날개에 부리를 박은 새들처럼 목을 움츠렸습니다. 얼굴이 얼얼할 정도로 내리꽂는 빗소리와 퍼덕이는 비옷 소리만을 들었습니다. 답사 차 이곳에 미리 와보았던 당신은, 날이 맑았다면 흰발농게를 볼 수도 있었을 거라며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눈앞이 이미 소란스럽던걸요. 수많은 갯것들이 구멍을 낸 뻘은 달 표면의 크레이터를 닮아 있었습니다. 이 풍경은 나를 순식간에 오래전 솟은 바위산 앞으로, 바닷물 속으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신령스러운 천년 거목을 거느린 변산의 바위가 자갈이 되고, 자갈이 모래가 되고, 모래가 영양 많은 흙이 되어 바다에 다다릅니다. 바다에서 잘게 부서지고 삭아 가라앉은 것들은 달이 끌어와 이 자리에 앉힙니다.


흰발농게와 망둥어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흔적만으로도 산과 바다와 달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길가에 늘어선 간판들만 보아도 저 고요하고 속 시끄러운 갯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뻘의 구멍들마다 망둥어의 눈처럼 동그란 의문이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나를 뻘로 봐?

뻘과 졸, 나 혼자 낱말 맞추기 놀이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갯것들이 구멍을 낸 뻘은 달 표면의 크레이터를 닮았습니다
수많은 갯것들이 구멍을 낸 뻘은 달 표면의 크레이터를 닮았습니다 녹색연합

졸을 잘 쓴 걸까, 이게 이긴 걸까

갯벌에는 벼도 자라지 않고 건물을 지어 올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졸의 자리에 뻘을 두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졸을 잘 쓰는' 방법이란, 뻘을 마르고 평평한 새 땅으로 만드는 거라고 여겼던가 봅니다.

서울에 돌아와 간척에 관한 이야기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간척은 원래 산이었던 바위들을 쪼개어 뻘에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천수만은 태산을 퍼부어도 멈춰지지 않는 물길을 낡은 유조선으로 틀어막았다지요. 이 이야기는 '정주영 공법'으로 유명해서 조금만 검색해도 찾아볼 수 있었지만, '바지락밭'과 '백합밭'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열심히 찾아보아야 겨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시간을 거쳐 가며 시화방조제, 그리고 당신이 있는 새만금방조제가 막혔지요.

해창갯벌을 향해 걷는 동안 풍경은 점차 바뀌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 너머로 보이는 해안선이 반듯했습니다. 당신이 '바람 모퉁이'라고 알려준 그곳에, 한국은 2023년 세계의 청소년 스카우트 대원들을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4만여 명의 사람들이 땡볕 아래서 벌레에 뜯기고, 웅덩이 위에 플라스틱 팔레트를 깔아놓고 텐트를 쳤습니다.

당신은 정부가 이 행사 한 번을 위해 농지관리기금을 끌어다부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먹거리 한 톨 내지 못하는 초지가 되어있다고도 했습니다. 풀조차 나지 않은 간척지에는 곰솔이 식재되는 중이었지요. 광활한 땅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기에는 아직 어리고 왜소한 나무들이었습니다.

길섶에는 대기업 투자를 환영하는 현수막들이 나부꼈습니다.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공장 같은 것들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번에는 뭐라도 되지 않을까요"라며 은근한 기대를 내비쳤습니다. 다른 주민은 "새만금 반대하면 전북 사람 아니란 소리 들으면서도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마음은 서로 달라도, 두 사람 모두 행간에 지친 기색이 묻어있었습니다. 옥토를 만들겠다던 약속이 수십 년째 얼굴을 바꿔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산업단지, 국제행사, 신공항, 수변도시. 새만금에는 신기루 같은 계획들이 준설토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해창갯벌이라는 신전

그래서 해창갯벌에는 신이 아주 많이 필요했나 봅니다. 지금은 마른 땅이 된 이곳에서 23년 전 저마다 다른 신을 믿는 성직자들이 삼보일배를 시작했지요. 서해의 개양할미 장승이 칠산 어장을, 변산신령 장승이 부안 평야를 지킵니다. 개양할미를 도우러 지리산에서 성모천왕 장승이, 제주에서 설문대 할망 장승이 왔지요.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에서 온 마오리 부족의 도요새 조각이 솟대와 함께 어울리고, 사람들이 기도를 올렸던 컨테이너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선(새만금해수상시유통본부) 활동가는 컨테이너 아래의 석축을 가리켰습니다.

"여기까지 물이 들어왔다는 걸 믿을 수 있어요?"

지선은 잠을 자다 말고 물이 들어온 날,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간장이며 식용유통을 허겁지겁 건진 이야기를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말했습니다. 해창갯벌의 지금 모습이야말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며 조금 웃었습니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추억담이 선명한 장면으로 바뀌어 바짝 다가왔습니다. 무척 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다를 땅으로 만든 것이 오히려 비현실이고 가짜였던 겁니다.

알지 못하고 믿어지지 않아도 믿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의 마오리 부족은 큰뒷부리도요의 둥지도 알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번식지는 북쪽의 추운 지역들이니까요. 그럼에도 때가 되면 오고 가는 그들을 오래 조상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나도 지선 활동가의 추억을 순순히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갯벌이고 바다인 해창갯벌, 끝까지 버려지지 않고 남아서 신전이 된 이름을요.

 그때도 지금도 갯벌이고 바다인 해창갯벌, 일명 장승뻘에서
그때도 지금도 갯벌이고 바다인 해창갯벌, 일명 장승뻘에서 녹색연합

한 톨의 의심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갯벌이 갯벌이기를 멈추는 순간이 언제인지를 누가 알 수 있을까요. 갯벌이 갯벌이기를 멈추는 순간을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요.

오동필 단장(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수라갯벌에 있는 모두에게 자기 자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파괴된 자리에 새로운 생명들이 자리를 잡는다고요. 부서진 논둑에는 수달이 집을 차렸습니다. 염습지가 되어가는 갯벌에는 퉁퉁마디와 해홍나물, 칠면초와 갈대의 숲이 연속선을 이루며 이어지다 끊어지곤 했습니다. 뻘을 매립하려 깎다 만 옥녀봉에는 검은 새가 둥지를 틀었고, 포클레인이 파낸 웅덩이에는 흰 새가 깃들었습니다. 칠게잡이 어구는 버려진 채로 방치되자 새들의 식탁이 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들어갈 때마다 날짐승 들짐승의 흔적이 점점 더 복잡한 콜라주가 되어 펼쳐졌습니다.

이 풍경을 두고 누군가는 이미 갯벌이 아니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갯벌이 아니니 매립해도 된다고요. 너른 들판처럼 보였던 수라갯벌은 그러나, 발을 넣자마자 움푹 패며 신발 주위로 물이 고였습니다. 바닥이 희었던 건 부서진 조개껍데기들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게의 자리와 산 게의 자리가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건 수라가 얕게나마 숨을 쉬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뻘은 언제고 뻘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던 거라고, 누구라도 와서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갈 수록 더 많은 생명의 흔적을 볼 수 있었던, 여전히 살아있는 수라갯벌
가까이 갈 수록 더 많은 생명의 흔적을 볼 수 있었던, 여전히 살아있는 수라갯벌 녹색연합

이 흔적들을 밟아도 될까. 우리는 그것들 앞에서 자주 멈칫거렸지만, 군산 미군기지의 전투기는 거침없이 이륙했습니다. 이날도 이삼 킬로그램 남짓한 민물가마우지의 몸뚱어리가 수 톤짜리의 쇳덩어리와 같은 하늘을 날고 있었지요. 옥녀봉에 둥지를 튼 민물가마우지들의 비극은, 갯벌에 밥을 먹으러 오가는 길이 전투기의 길과 겹친다는 데 있었습니다. 평행을 이루며 날아오던 두 새는 전투기를 마주하며 멀어졌습니다. 잠시 허둥거리며 오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전투기는 연이어 날았습니다. 그때마다 귀를 세게 막으면서, 내게 귀를 막을 손이 있다는 게 낯설었습니다. 들을 수 있는 존재가 수라갯벌에 살아가는 게 가능한가 싶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갯것들이 왜 떠나지 않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들의 세계가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쓰면서도, 나의 일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종의 안전한 영속을 위한 건 아닌지("졸을 잘 써야 이겨") 또한 수시로 의심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자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의 존재에 내 머릿속 일 따위는 한 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있을 뿐입니다.

 너른 들판처럼 보였던 수라갯벌은, 발을 넣자마자 움푹 패며 신발 주위로 물이 고였습니다
너른 들판처럼 보였던 수라갯벌은, 발을 넣자마자 움푹 패며 신발 주위로 물이 고였습니다 녹색연합

연약하고 그래서 강인한

일주일 동안 가장 자주 본 것은 우리의 맨발이었습니다. 쉬는 동안 우리는 갑갑한 신발이며 양말을 벗어 던지고 발가락을 꼬물거렸습니다. 붓고 물집 잡힌 발들, 그 발들이 우리를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은 연약합니다. 동네 사정에도 밝지 않고, 몸은 지쳐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 소식을 맞아 보도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를 밟지 않으려 엉거주춤 걸었지요. 뒷사람이 헛딛지 않도록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발끝으로 툭툭 걷어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다른 이의 발가락에 밴드를 감아주었습니다. 뻣뻣해진 종아리를 눌러가며 테이핑해 주었습니다. 지선은 "누가 내 발에 난 물집을 터뜨려줘!"라며 웃었지요. 타인의 발바닥을 들여다볼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는 약해진 만큼 낮아졌고, 낮아진 만큼 다정해졌습니다.

 일주일 동안 가장 자주 본 것은 우리의 맨발이었습니다, 타인의 발바닥을 들여다볼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요
일주일 동안 가장 자주 본 것은 우리의 맨발이었습니다, 타인의 발바닥을 들여다볼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요 녹색연합

"워메, 다 타버렸어이."
"일부러 태웠구나?"

시장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들은 우리에게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걸었지요. 순례단을 보는 사람들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궁금해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손님이었고, 그들은 우리의 벌겋게 익은 얼굴이며 팔뚝을 보며 조금은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재미있게 지내다 가는구나'라는 안심 말입니다.

당신은 2023년 잼버리 당시 지역의 어르신들이 외국인 청소년을 만나면 미안해하며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고 했지요. 누구나 손님들이 귀하고 좋은 것만 보고 가기를 바랍니다. 손님들이 내가 사는 곳에서 행복한 경험을 간직하고 가면 나도 기뻐지지요.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마음은, 어쩌면 손님들의 여정이 망쳐진 데에 대한 막연한 미안함과 책임감이었을 겁니다. 바람 모퉁이를 잼버리 야영장으로 바꾸는 일에 직접 나서지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손님을 대하는 마음은 그런 것 아닌가요.

매년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오는 도요새에게도 그런 환대가 있어야 했을 겁니다. 이 손님들이 갯벌에서 여윈 몸을 다시 살찌워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갯벌을 남겨두고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새들에게도, 당신에게도 미안해했습니다. 새만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주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다른 말을 했습니다. 부채감은 학살자가 가져야 하는 마음이라고요. 당신의 말은 우리가 군산평화박물관의 사진전에서 보았던 비폭력 저항운동의 문구와 맞닿아있었습니다. 미군에 의해 땅을 뺏긴 오키나와의 이에지마 주민들은 파괴자보다 생산자가 위대하다고 했다지요. 당신의 말은 환대가 부서진 자리에서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상기시켰습니다. 나는 부채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대신 나의 자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잃어버린 이름들

덕분에 내내 잃어버린 이름들을 헤아리며 걸었습니다. 김제평야와 만경평야의 글자만 뚝뚝 꺾어내어 새만금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잼버리 경관 쉼터의 원래 이름이 바람 모퉁이였다는 사실도 당신이 알려주었습니다. 지도를 보며 이제 지명으로만 남은 것들을 세어보았습니다. 까마귀가 많은 오식도, 매가 날아가는 모양을 닮은 비응도, 물살이 거센 가력도를 말입니다. 섬의 거센 풍랑을 가로질러 수라갯벌이라는 한 점에서 만나는 새들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걷는 이곳은.

이른 봄꽃이 두서없이 피어났습니다. 걷는 길마다 꽃길이라 아름다웠지만, 벌통에는 기척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마을에 들어서는 폐기물 소각장을 반대하는 주민 대책위원회의 빈 천막을 마주했고, 언덕배기를 넘어서자마자 송전탑 반대 현수막들이 걸린 마을을 지났습니다. 푸른 보리밭이 펼쳐진 그 마을의 농로 앞에는 '아름다운 계곡마을'이라고 적혀있었지요. 미군기지가 있는 마을에서는 철조망을 따라 빙 둘러 가야 했고, 목적지를 향해 가로질러 가기는커녕 사진조차 찍을 수 없었지요. 트럭이 줄지어 지나가면 젖은 바닥에도 먼지가 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아까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주민들의 말을 들었다 했지요. 처음부터 새만금 사업을 반대했다는 주민의 말은 단호한 만큼 반가웠습니다. 새만금 신공항이며 첨단산업단지에 거는 가느다란 희망 앞에서는 허둥거렸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안락하고 편안한 집으로 돌아갈 내가, 그런 마음까지 정당하지 않다고 단언하기 어려웠습니다.

내가 사는 서울은 이런 소란들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다는 걸 압니다.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의 몇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전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나갈 겁니다. 약속 장소에는 건물 벽뿐만 아니라 보도 옆에 줄지어 서 있는 커다란 전광판에도 선명한 화질의 광고 영상이 쉴 새없이 나옵니다. 한국에서 가장 커다랗고 파괴적인 계획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이 도시는, 어떤 고역도 치르지 않으면서 절대 꺼지지 않습니다. 일주일을 걸으며 알게 된 것 중 가장 무거운 진실입니다.

 해창갯벌을 지나 숙소로 향하는 길, 언덕배기를 넘어서자마자 송전탑 반대 현수막들이 걸린 마을을 지났습니다
해창갯벌을 지나 숙소로 향하는 길, 언덕배기를 넘어서자마자 송전탑 반대 현수막들이 걸린 마을을 지났습니다 녹색연합

서울에서 뻘을 뻘로 부르는 일

엄지발가락이 시큰거리는 통증은 여정을 마무리하고 며칠 지나자 사그러들었습니다. 수라갯벌의 발자국들 곁에 내 발자국을 두는 일도 한동안은 없을 겁니다. 다시, 나와 당신의 거리는 200km를 훌쩍 넘어갑니다. 큰뒷부리도요는 서너 시간이면 거뜬히 날아갈 테지만, 우리는 열흘을 꼬박 걸어야 닿을 수 있습니다. 그 거리만큼이나 당신의 자리와 나의 자리는 같지 않습니다.

일주일의 여정을 마치고 나면 누구 앞에서라도 단언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더 단단한 자리 위에서 더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돌아온 자리에서 내게 남은 것은 풍경들입니다. 달 표면을 닮은 줄포만 갯벌의 표면, 해창의 장승들, 수라의 발자국들, 검은 새가 전투기를 마주하고 휘청이던 하늘, 동료들의 아픈 발, 그리고 바람 모퉁이 같은 것들 말입니다. 단언할 말은 찾지 못했고, 부르고 싶은 이름만 한 아름 안고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선조의 어떤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새만금 방조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며 부수는 날이 올 거라고요. 그것을 당신은 '이상한 확신'이라 했습니다. 지선 활동가는 백 년을 바라보며 싸울 거라고도 했지요. 그러나 유조선으로 겨우 틀어막은 천수만의 방조제는 백년의 절반도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지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기고만장했던 시대의 한 끄트머리가 뻘 대신 파묻히기 시작합니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또 다른 현재로 말입니다.

당신과 내가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은 알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갯벌을 갯벌이라 부르기. 바람 모퉁이를 바람 모퉁이라 부르기. 신공항도 무엇도 아닌 이름으로 그곳들을 불러내기. 거짓된 서류가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지는 자리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운운한 청사진들이 애초에 가짜였다는 판결조차 승복되지 않는 자리에서, 졸로 취급된 것들을 그 자신의 이름으로 자꾸 불러내기.

이것 또한 당신이 알려준 것입니다. 갯벌을 갯벌이라 부름으로써 열릴 미래를, 나는 어쩔 수 없이 믿게 되었습니다.

녹색연합 정책팀 김도미



#녹색연합 #녹색순례 #새만금 #수라갯벌 #새만금신공항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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