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안군의 해창갯벌, 일명 ‘장승뻘’이라 불리는 곳은 2001년부터 4대 종단이 컨테이너로 세운 법당, 성당, 교회, 교당이 아직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녹색연합
부안군의 해창갯벌에는 '장승뻘'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2001년부터 4대 종단이 컨테이너로 세운 법당, 성당, 교회, 교당이 아직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때는 바닷물이 축대까지 들어왔지만 이제는 간데없고 갯벌의 회복을 염원하는 수십의 장승으로 가득한 벌판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킨 장승은 누워 흙으로 돌아가지만 곧 또 새로운 장승이 그 옆을 채웁니다.
장승 뒤로는 새만금 잼버리 부지로 들어가는 도로가 선명하지만 이곳에 있을 때만큼은 모든 것이 온전해지는 기분입니다.
도로 너머로는 한때 '산'이라 불리던 해창산이 보입니다. 해창산을 깎아 해창갯벌을 메우는 데 썼습니다. 산과 갯벌에 깃들어있던 생명들이 '간척'이란 이름 아래 한꺼번에 묻혔습니다. 깎여나간 산보다 무지하고, 바다를 메운 흙보다 오만한 짓입니다.
누군가는 활동가가 되기 전, 무엇으로 살지 고민하던 시기에 이 자리에서 모습을 잃어가는 갯벌을 목격했습니다. 누군가는 활동가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삽을 들어 방조제를 허물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싸움이 100년은 갈 것임을 알고 시작했으며, 또 누군가는 언젠가 방조제가 부서지는 날이 올 거라 확신합니다.
곁을 지키는 수많은 누군가들이 있는 한, 새만금은 여전히 갯벌입니다.

▲ 누군가는 활동가가 되기 전, 무엇으로 살지 고민하던 시기에 이 자리에서 모습을 잃어가는 갯벌을 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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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천수만이 있습니다. 바닷물이 통하지 않아 쌓인 오니는 물을 방류하는 날마다 악취를 퍼뜨립니다. 이곳에서는 최근 역간척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는 느리지만 되돌리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장승뻘에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다시 바다가 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장승뻘 사이를 거닐며 다시 떠날 기운을 차린 우리는 언젠가 그랬듯 바닷바람에 닳아 없어진 글자를 채우며 장승께 인사합니다.

▲ 장승뻘 사이를 거닐며 다시 떠날 기운을 차린 우리는 언젠가 그랬듯 바닷바람에 닳아 없어진 글자를 채우며 장승께 인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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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에 들어가지 마라, 호랑이 물려간다"
수라갯벌은 여전히 생동합니다. 갯벌 못지않게 염습지에도 수많은 생물이 서식합니다. 염생식물과 습지식물이 한데 섞이며 양서류와 조류, 포유류까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라에 머문 몇 시간 동안에도 갈대 사이를 스치는 고라니, 방게의 집, 누군가의 뼈와 수많은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이곳을 감히 갯벌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수라갯벌은 염생식물과 습지식물이 한데 섞이며 양서류와 조류, 포유류까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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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뒤 배후습지는 바다와 육지의 영양분을 교환하고 오염을 걸러냅니다. 논, 배후습지, 자연제방, 염습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그물코와 같이 얽혀있습니다. 우리는 그 관계를 보지 않은 채 끊어내고 바꿔버립니다. 흙으로 된 제방에 콘크리트를 바르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자연은 시간을 들여 오래된 인공 구조물 마저 포용합니다. 낡고 부서진 틈새마저도 다시 생명이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 낡고 부서진 틈새마저도 다시 생명이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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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가마우지는 새만금 간척을 위해 쓰이고 버려진 옥녀봉 채석장에 모여 살아갑니다. 먹이를 찾아 수라갯벌을 오가는데 그 사이에는 미군과 활주로를 공동 사용하는 군산공항이 있습니다. 먹이 활동을 마치고 옥녀봉으로 돌아가는 민물가마우지는 군산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와 하늘에서 교차합니다. 군산공항 옆을 걷는 동안 귀를 막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소음이 몇 차례 헤집고 지나갔고, 옥녀봉 으로 돌아가던 민물가마우지 두 개체가 마주 오는 비행기에 방향을 잃고 어지러이 날았습니다.
인근에 거주하는 누군가는 소음피해 보상으로 달에 3만 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겨우, 고작 그만큼의 피해를 인정받는데 인간 아닌 그들은 또 얼마나 절하되고 있을까요. 수라갯벌에 들어가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도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또 날아갑니다.

▲ 옥녀봉 으로 돌아가던 민물가마우지 두 개체가 마주 오는 비행기에 방향을 잃고 어지러이 날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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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둥켜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활동가에게는 현장이 있습니다. 두 번째 케이블카만은 막아야 하는 설악산,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해 700일 동안 천막을 친 금강,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파괴된 맹방해변, 신공항을 짓겠다는 가덕도, 탈플라스틱 대책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 수화기와 화면 너머 당신과 소통하는 그 모든 곳이 우리의 현장입니다.
저마다의 현장에서 무진히도 애씁니다. 그럼에도 농성장에 방문하지 않아서, 기자회견에 연대하지 않아서, 최근 상황에 빠삭하지 않아서 떠올리기만 해도 미안함에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몇 번이고 깨진 헛된 꿈에도 기어코 헤집어 놓고 말겠다는, 아무리 되새겨도 와닿지 않는 이름을 가진 "새만금"이 그중 하나입니다. 부채감이 나를 더 무겁게 만들기 전에 그곳에 있고 싶었고 운 좋게도 녹색순례로 진득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마지막 숙소를 앞에 두고 쉬어간 갈숲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만금에 대해 뭐라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전북의 동지들에게 미안했다고. 삼보일배, 오체투지가 끝나고 나면 나에게도 새만금에 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가 생기며, 이 길은 그 관계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함께하지 못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은 접어두고 이 땅 곳곳으로 갑니다. 그곳을 지키는 동지의 곁으로, 그들을 부둥켜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걷고 또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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