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 속의 인형극
이정현
'숲속의 집'이라는 인형극에는 청설모, 딱따구리, 소쩍새가 등장한다. 숲속에 살던 청설모는 산불로 친구들과 집을 잃는다. 무분별한 재개발로 나무들이 베어져 소쩍새도 집을 잃었다. 새로운 집을 찾아 헤매던 청설모와 소쩍새는 딱따구리가 파놓은 나무 구멍을 찾아 집을 삼는다. 숲속의 건축가인 딱따구리가 만든 따뜻하고 아늑한 집 안에서 낮에는 소쩍새가 밤에는 청설모가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인형극을 만드신 배이화 선생님께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할 것 같은 숲속에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동물들의 실제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전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 의미를 더 깊이 느끼고 싶어서 인형극을 감상한 후에, 아이들, 그리고 어머님들과 함께 '비스듬히'라는 시를 읽고 그를 몸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했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 정현종, '비스듬히'
둘씩, 넷씩 짝을 지어 서로의 몸을 기대고 지탱하며 비스듬히 선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서 깔깔, 하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활동 후 모두가 둥근 원을 그려 손을 잡고 서서 사슬 풀기도 하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마주 잡은 양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고, 하나로 이어진 몸과 마음에서는 평화가 흐르고 있었다.
수업을 마쳤는데, 숲 수업에 계속 참여해왔던 1학년 은수가 와서 예쁘게 접은 카네이션을 붙인 편지를 내밀었다. 은수처럼 고운 글씨로 '선생님과 숲에 가서 정말 좋아요. 저의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이 적혀져 있었다. 편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핑그르르 눈물이 났다. 어머님들도 인형극을 보다가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고 하시며, '책상 앞 공부보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아이답게 웃게 해주시는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져 늘 감동입니다' '선생님, 그 열정 그대로 오래오래 아이들 곁에 계셔주세요' 등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숲속에 가득한 아카시아 향기처럼,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온몸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인형극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느꼈던 긴장과 피로가 한순간에 싹 사라졌다.
인형극을 마치고 나서는데, 처음 발령받았던 학교에서 17년 전 만났던 제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스트리아에서 숲과 생태를 연구하는 석사 과정 공부를 하며, 바쁘고 지칠 때마다 내가 해줬던 말이나 긍정적 마음가짐 등에 대해 떠올린다는 메시지였다. 바로 전화를 해서 안부를 나누고, 여름에 한국에 잠시 들린다 해서 갈비찜을 해준다고 약속했다. 밥을 먹고는 함께 숲에 가기로 했다. 전화를 하는 내내, 너무나 잘 성장해준 제자가 너무나 반갑고, 고맙고, 기특해서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나왔다.
이처럼 많은 이벤트가 있었던 스승의 날을 정리하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번 생에 교사라는 역할을 해오며,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 함께 성장해왔던 시간들에 감사했다. 그렇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오늘 숲에 소담스레 피어있었던 하얀 찔레꽃과 '찔레꽃'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 문정희, '찔레꽃' 中
지금껏 내가 흘려 왔던 눈물이 내가 만나왔던 아이들 마음을 꽃 피우는 비가 되었기를 바라며, 이 아름다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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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예술가로 살아가며 교육, 예술, 심리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school_d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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