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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단속·처벌하고 경찰서 들락거리는 일, 올해도 맡은 이유

[아이들은 나의 스승] 모두 기피하는 학생부장직을 자원한 이유

등록 2026.05.17 14:41수정 2026.05.1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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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지난 금요일, 조용하던 교무실이 졸업생들의 행렬로 종일 북적였다. 스승의 날이어서 부러 인사드리러 왔다고 했다. 그들이 건넨 박카스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였다. 졸업생이었기에 망정이지 재학생이 건넸다면 청탁 금지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농을 걸기도 했다.

"선생님, 올해도 학생부장이세요?"
"응, 즐거워서 또 맡았다."

한 졸업생의 뜬금없는 질문에 부지불식간에 즐겁다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이들을 학칙에 따라 단속하고 처벌하고, 심지어 경찰서까지 들락거려야 하는 일이 즐거울 리 만무하다. 나의 실없는 농담에 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다른 추억담으로 화제를 돌렸다.

십수 년 전에도 학생부장이었고, 잠시 후배 교사에게 인계했다가 다시 맡았고, 3년 전부터 또다시 연이어 맡고 있다. 학생부장에서 인권자치부장, 생활교육부장을 거쳐 안전생활부장으로 이름만 달라졌을 뿐 주어진 업무는 동일하다. 학칙을 어긴 아이들을 일벌백계하는 일이다.

시쳇말로, '손에 피 묻히는' 일인데도 학생부장을 또다시 맡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아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여느 직무보다 많다는 점이 좋다. 그들과 40년 가까운 터울에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 말곤 없다.

또, 그들과의 대화는 세상의 변화상을 절감하는 기회가 된다. 10대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과 내가 바라보는 그것과는 천양지차라는 사실을 왕왕 깨닫게 된다. 옳고 그름의 경계조차 흐려지는 듯해 안타까울 때가 있지만, '꼰대스러움'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예방주사다.

오랜 학생부장 경험이 준 '선물'


글 쓰기가 취미인 내게, 학생부장 업무는 글감을 무한정 제공하는 화수분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 것부터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소재가 된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거나 황당한 민원을 맞닥뜨렸을 때는 기자인 양 수첩부터 꺼내 든다.

한편, 학생부장은 '나이가 무기'라는 지론 때문이기도 하다. 매 순간 아이들과 부대껴야 하는 일이기에 그들과의 소통이 유리한 신세대 젊은 교사들에게 맞춤한 직무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중엔 희망하는 경우가 드물다. 학부모들의 민원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학생부장으로 일한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면, 젊은 교사들을 함부로 대하는 학부모들이 나날이 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인생 선배'를 자임하며 교사를 가르치려 드는 이들이 비일비재하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 젊은 담임교사의 'SOS'를 받을 때도 있었다. 교무실에 찾아와 행패에 가까운 언행을 보이는 학부모를 제어해 달라는 요구였다. 달려가 보니, 자녀의 담임교사 앞에서 막무가내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본 순간,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는데도 목소리를 낮췄다.

눈을 부라리던 학부모는 이내 '순한 양'이 됐다. 그의 태도 변화를 이끈 건 나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도 '띠'나 '학번'부터 묻는 사회에서 나이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직후 그는 담임교사의 조치에 수긍하고 돌아갔다.

말하기 민망하지만, 지금 아이들의 학부모 중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그들이 젊은 교사 대하듯 함부로 낮잡아 보질 못하는 장점이 된다. 언젠가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던 한 학부모가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 정중히 사과를 건넨 '훈훈한'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 학생부장직은 교사로서 우리 교육의 '적폐'를 성찰하는 데에 가장 좋은 직무다. 반면교사일지언정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스승 역할을 톡톡히 한다. 기성세대보다 아이들의 가치관이 훨씬 더 강퍅하고 완고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도 오랜 학생부장의 경험이 준 '선물'이다.

요즘 아이들은 가난하고 어리숙하면 무시당한다는 것, 남을 도울 생각하기보다 남들 위에 군림할 정도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좌우명처럼 새기고 있다. 책상과 공책에 '하면 된다' 식의 글귀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강약약강(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의 비루한 행태가 학교에서조차 난무하는 것도 그래서다. 아이들이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고, 학부모도 "남의 일에 나서지 말고 너나 잘하라"고 조언하는 현실이다. 공공선 주장은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가족 말곤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셨어요. 뒤통수 맞기 십상이라면서요."

얼마 전 친구의 호의조차 의심스럽다며 건넨 한 아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 말을 부모님으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고 했다. 낯선 사람의 질문엔 일절 대꾸하지 말고, 웬만하면 타인과의 모든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생활 습관을 들이라고도 했단다.

친구도, 이웃도, 학교도, 국가도 믿지 못하는 아이들

가정에서부터 더불어 사는 걸 금기시하는 현실에서 더불어 사는 시민을 길러야 하는 학교 교육의 본령이 끼어들 틈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이고 극단적인 불신의 늪에 빠져있다.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건, 하나의 양상이자 징후일 뿐이다.

교사들의 현장 체험학습 거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본질적으로는 관련 법 조항의 미비가 아닌, 교육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국가는 교육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고, 학부모는 교사를 믿지 않는다. 교사는 교권 침해를 견디며 법적 책임마저 떠안아야 하는 현실에 절망한다.

지난 서이초교 교사 순직과 체험학습 인솔 교사의 유죄 판결을 지켜보면서, 교사는 국가의 방임에 분노했다. 또, 걸핏하면 아동 학대로 민원과 고소를 일삼는 학부모들의 유별한 '자녀 사랑'에 치를 떨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대응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었다.

최근 교사를 향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학교폭력과 관련된 그들끼리의 갈등은 훨씬 심각하다. 교육적 화해와 중재를 금지하는 현행법상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말다툼조차 법적 소송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학교폭력의 해결 주체는 학부모들이 됐다.

학교폭력이 접수되면 학부모들은 변호사부터 찾는다. 고소와 맞고소가 난무하고, 학교는 졸지에 '제삼자'가 된다. 자녀의 후견인으로서 학부모들은 법에 기대어 사생결단식으로 대응한다. 자녀의 친구 부모라는 신뢰는 사라지고, 법정의 원고와 피고의 관계로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자녀에게만 매몰될 때, 학교는 괴물이 된다'는 금언은 그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서 친구도 이웃도 학교도 국가까지도 믿어선 안 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귀를 씻고 싶은' 말들이지만, 교사로서 반성할 대목이 없지 않아 귀담아듣게 된다.

사족. 학생부장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그런 '말 같지 않은' 말과 몰상식한 행태를 보고도 차분하게 응대하는 인내력과 포용력이지 싶다. 비행을 일삼는 아이들을 보며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가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다음 학생부장직을 수행할 후배 교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학생부장 #스승의날 #교권침해 #학부모악성민원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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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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