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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지나면 핸드폰 용량 꽉 차도록 찍는 것

소박한 시골 꽃밭에 핀 사랑초, 한련화, 끈끈이대나물, 금영화가 주는 기쁨

등록 2026.05.25 10:18수정 2026.05.2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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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부터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골 쉼터 '느루뜰'로 향합니다. 이 글은 시골 쉼터에서 '사는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시골 쉼터 느루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꼽으라면, 발코니에서 나의 소박한 꽃밭을 바라보는 일이라 하겠다. 오월 한가운데를 지나는 요즘 나의 화단에는 꽃들이 활짝 피었다.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진 때, "오래 기다렸지요" 하며, 그 마음 잘 안다는 듯 반갑게 응답하니 더욱 기쁘다.

씨앗을 구해 흙에 놓고, 여린 싹이 땅을 뚫고 나오기를 기도하듯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그 조그만 싹이 천천히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부풀리는 모양을 지켜본 사람은 안다. 성숙하고 온전한 한 그루로 자라 줄기 끝에 꽃봉오리가 맺히고 어느 날 벼락처럼 꽃잎을 활짝 펴는 순간을 마주해 본 사람은 안다. 눈이 환해지는, 맑고 고운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그런 기쁨 말이다. 기다리고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소박한 나의 꽃밭

 나의 꽃밭.
나의 꽃밭. 이정미

누가 봤다면, 무슨 대단한 정원이라도 가진 듯 호들갑이냐고 핀잔을 줄 것 같다. 그러나 알지 않는가. 제 아무리 훌륭한 정원도 제 손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꽃밭만큼 애정스럽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사람은 그런 생명체인 것 같다. 뭐든 제 손으로, 제 마음을 쏟아, 제 눈에 담고, 정을 쌓은 시간 만큼 그 만큼 알고 사랑하게 되는.

내 꽃밭에 와서 동고동락한 정이 각별하여 나의 수수한 들꽃들은 오월 장미의 우아함과 화려함에게도 으뜸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세련되지 못한 사람인지 길섶에 자연스럽게 피는 들꽃들에 자주 눈길을 빼앗긴다. 천연의 자연색이 어쩌면 그토록 맑고 예쁜지 볼 때마다 새롭고 놀랍다.

지난해 밭을 인수한 후 뜨거운 여름 농한기 때, 나는 빈 화단을 만들었다. 밭에서 돌을 주어 꽃밭 테두리를 울퉁불퉁 만들었다. 1평 정도로 작은 화단이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화단은 빈 채로 덩그러니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내 꽃밭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빈 화단을 바라보며 '겨울 지나고 봄이 오면 꽃씨를 뿌려야지' 다짐하곤 했다.

그러던 중 9월 하순에 옛 근무지 동료 선생님께서 세컨하우스 화단에 꽃들이 많이 번졌다며 꽃 모종을 분양을 해주었다. 가을, 겨울을 잘 지낼 수 있을까 염려하며 빈 화단에 그 아이들을 옮겨 심었다. 나의 꽃밭 첫 식구는 선생님이 주신 사랑초, 나도 샤프란, 자주닭개비와 메리 골드였다. 가을이지만 날이 따뜻하여 사랑초가 분홍색 꽃을, 나도 샤프란이 고상한 하얀 꽃을, 메리골드가 나무처럼 자라 주홍색 꽃을 주렁주렁 피워서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지난 3월에 나는 꽃밭을 키웠다. 쉼터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로 앞 밭고랑 전체를 꽃밭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3평 정도 되려나. 신기하게도 꽃밭을 키웠더니 꽃 식구가 자연스럽게 찾아 들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끈끈이대나물과 국화 씨앗이 꽃밭에 자리잡았다. 지인이 일본 여행 다녀오면서 모둠 꽃씨를 선물해 주었다. 비올라, 한련화 꽃씨를 구입해 뿌렸다.

 나의 꽃밭, 왼쪽 위에서 부터 한련화, 금영화(흰색, 다홍색), 끈끈이대나물, 비올라, 사랑초
나의 꽃밭, 왼쪽 위에서 부터 한련화, 금영화(흰색, 다홍색), 끈끈이대나물, 비올라, 사랑초 이정미

​​​​​지금 꽃밭에는 사랑초, 한련화, 비올라, 끈끈이대나물, 금영화, 자주닭개비, 패랭이꽃이 한창이다.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아 이름을 모르는 꽃도 있다. 이번 주에는 반대편 밭 한 모퉁이를 꽃밭으로 만들어 백일홍과 샤스타데이지 씨앗을 뿌렸다. 무더운 여름 날, 알록달록 원색 백일홍이 주는 쨍한 에너지를 좋아한다. 하얀 샤스타데이지의 맑고 청아한 모습을 내 밭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어르신들의 꽃 사랑

가끔 동네를 걸으며 어르신들이 사시는 집을 둘러본다. 대문 앞에, 마루 아래 댓돌 위에, 마당 한 켠에 꽃 화분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예쁜 화분이 아니어도 고무통, 재배상자, 스티로폼 박스를 이용해 페튜니아, 튤립, 작약 등 계절 꽃을 키우신다. 밭 가장자리에도 메리골드, 낮달맞이꽃, 상사화, 붓꽃, 유채꽃과 같은 계절꽃이 피고 진다.

오랜 세월 함께 한 세간살이를 정갈하게 쓸고 닦으시고, 화초를 키우고 바라보는 소녀 같은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계신다. 농사일에 지쳐 마음에 여유가 있을까 싶은데 말이다. 꽃에는 긍정의 힘이 있다. 바라보는 순간 온통 환해지게 하는 힘. 눈가에 미소 주름이 잡히게 하는 힘 말이다. 어르신들은 아침 저녁으로 꽃과 얼굴을 마주하며 노동의 고됨을 잠시 내려놓기도 했으리라.

어르신들의 꽃 사랑을 바라보며 대문 앞에, 댓돌 위에, 마당 한 켠에 부디 오래도록 꽃이 피고 지기를 생각한다. 꽃을 가꾼다는 것은 여전히 삶을 지속할 힘과 애정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의 소박한 꽃밭 오월 한 가운데를 지나는 요즘 느루뜰에는 소박한 들꽃들이 활짝 피었다.
▲나의 소박한 꽃밭 오월 한 가운데를 지나는 요즘 느루뜰에는 소박한 들꽃들이 활짝 피었다. 이정미

꽃을 사랑하는 방식

"꽃 사진 찍기 시작하면 나이 들었다는 증거야. "

그런가. 꽃 사진이 유독 많아진 것은 그러고 보니 40대를 한창 살고 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20대, 30대는 앞가림 할 일들이 산더미라 꽃을 지긋이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걱정도 불안도 많은 시기에 어쩌면 꽃, 숲, 정원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좀 덜 불안하고 좀 덜 걱정하며 여유 한 점 가질 수 있을 텐데.

'꽃 사진이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다. 실제로 흰 머리 숭숭 나고 얼굴 피부가 늘어지는 나잇대를 살고 있으니까 . 지인 중에는 절대 꽃 사진을 카톡 프로필에 올리지 않는다고도 하더라만. 자식들도 "엄마 꽃 사진 올리지 마. 나이든 티 나" 한다고. 나이 들어가며 꽃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어 나는 좋기만 하다.

내 프로필 단골 소재는 단연 '꽃'이다. 나는 우리 산천에서 피고 지는 들꽃이 하나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어찌 사진으로 담지 않을 수 있을까. 찍고 또 찍는다. 사진 보관함 용량이 걱정될 때면 지우기를 반복하면서도 계속해서 꽃 사진을 찍는다. 이건 내가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 계절, 그때가 아니면 안 되니까. 담아 놓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니까. 아기 볼처럼 보드랍고 보송보송한 꽃잎을 감촉하는 일은 소소하지만 비할 바 없이 큰 행복이다.

쉼이 필요할 때, 적적할 때 나는 멍하니 꽃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을 찍었던 그 곳, 그 순간, 그때의 날씨가 떠오른다. 꽃 한 송이가 온통 한 계절이 되는 마법을 경험한다.
#꽃밭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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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글쓰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자신의 성장을 너머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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