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5.18민주묘지에 전시된 홍성담의 판화
문타하 아베드
몇 년 전, 나는 아직 자궁을 떠나지 못했다고 쓴 적이 있다. 나는 어머니의 안전한 자궁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를 보호할 수는 없었던 조국의 자궁을 의미했다. 나에게 흙과 거리와 언어와 기억을 주었지만, 동시에 검문소와 차별적인 신분증과 부재와 두려움도 준 조국의 자궁을 의미했다. 그것은 나를 어디엔가 속하게 만들려 하면서도, 동시에 강제로 가두는 삶이었다.
팔레스타인은 자신의 아이들을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 단지 한 가족의 품 안으로가 아니라, 중간에서 끊겨버린 시간 속으로. 딸아이는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감옥의 의미를 배운다. 그녀는 금지당함을 통해 지리를 배운다. 그녀는 길이 단지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문서가 단지 문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국경이 단지 선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에, 존재할 권리란 끝없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증명해 보여야만 하는 것임을 배운다.
팔레스타인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가로막힌 삶을 물려받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우리의 말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전에, 다른 이들이 우리의 이름과 서류를 정하고, 우리가 지나갈 수 있는 길과 끝내 갈 수 없는 도시들을 정해 버린다. 우리가 정치를 이해하기도 전에, 정치는 이미 우리 가족 안으로 들어와 있다. 누가 여행할 수 있는지, 누가 돌아올 수 있는지, 누가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면회할 수 있는지, 누가 검문소를 건널 수 있는지, 누가 고향에 묻힐 수 있는지를 그것이 결정한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 미완의 탄생 속에서. 그리고 나중에 내가 광주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곳을 낯선 역사로 마주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광주를 중간에서 끊겨버린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도시로 마주했다. 죽은 이들을 끝내 품고 놓지 않았던 도시로. 애도를 하나의 정치적 윤리로 배워낸 도시로. 평범한 사람들이 조직된 폭력에 맞서야 했고,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거리들에서 참혹함의 목격자가 되어야 했던 도시로.
광주에서 나는 현재 속에서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죽은 이들을 보았다. 나는 기억을 보았다. 뒤를 돌아보는 행위가 살아 있는 이들을 사라짐으로부터 구해내는 힘이 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애도가 저항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고, 슬픔이 집단적으로 짊어질 때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내가 팔레스타인의 광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이유다.
나는 애도가 결코 사적인 것이 아니었던 지형 속에서 태어났다. 도시의 상처가 가족의 상처 속으로 스며들고, 기억이 생존의 한 형태가 되는 곳에서. 오늘, 우리가 광주항쟁 46주년과 팔레스타인 나크바 78주년에 다가가고 있고, 또 내가 조국들과 배제 사이의 유예된 상태 속에서 살아남아 온 36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숫자들은 단순한 날짜 이상의 것이 된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그들에게 사라지라고 요구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으로 남기 위해 싸워온 세월을 증언하는 목격자들이 된다.
나에게 광주는 인식의 언어가 되었다. 해마다 그것은 내 영혼 속에, 정의를 향한 나의 탐색 속에, 그리고 내가 써왔고 여전히 쓰고자 하는 말들 속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광주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살을 기억으로, 기억을 책임으로 그리고 책임을 진실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로 바꾸어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함께 돌려 마시던 우유 한 잔, 밤새 닫히지 않던 이웃의 문

▲ 광주 옛 전남도청 지하, 오늘을 연결하는 광주.
문타하 아베드
내가 광주의 사람들이 끔찍한 폭력의 한가운데서, 총성과 밤의 침묵을 가르며 지나가는 헬리콥터 날갯소리 속에서 저항과 연대를 만들어낸 방식을 공부할 때면, 나는 나 자신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나는 들이닥치던 군인들과 길들이 막혀버리던 날들을 기억한다. 나는 두려움으로 짓눌렸던 밤들을 기억한다. 나는 여름 공기를 타고 퍼지던 불타는 살의 냄새를 기억한다. 나는 굶주림과 기다림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를 끝내 살아남게 하던 작고 조용한 몸짓들을 기억한다. 빵 한 조각, 함께 돌려 마시던 우유 한 잔, 밤새 닫히지 않던 이웃의 문을. 바로 이곳에서 광주와 가자가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광주의 어제가 가자의 오늘과 연결되는 것은 두 역사가 동일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두 역사 모두 어떤 민중이 소모 가능한 존재로 낙인찍히고도 끝내 사라지기를 거부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두 역사 모두 지도에서, 존엄에서,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배제된다는 것의 폭력을 드러낸다. 두 역사 모두 조직된 잔혹함 앞에서도 계속해서 외치고 주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드러낸다. 우리는 여기 있다!
오늘의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돌아오는 것도, 떠나는 것도, 안전하게 머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슬퍼하는 일마저 끝내 의심의 심문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들은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조건들을 박탈당한 채, 끊임없이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들은 얌전히 애도하고, 조용히 죽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숫자가 되고, 영화 같은 영웅이 되고, 인스타그램 릴스가 되고, 번쩍이는 속보가 되고, 이미지와 포스터와 폐허가 되어, 국제기구들의 무감각한 진부함을 입증하는 증거로 남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는 남아 있다. 지금 그러하듯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가자는 그들의 수무드(굳건함)를 통해 남아 있다. 그것은 추상적인 미덕처럼 수행되는 굳건함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조건 아래에서 삶을 이어가는 일상의 실천이 되는 수무드다. 수무드는 자기 아이들을 찾아 헤매면서도 다른 어머니를 위로하는 어머니이다. 그것은 전기도 없는 상태에서, 폭탄을 실은 드론 아래에서 수술을 이어가는 의사이다. 수무드는 다음 차례가 자신의 이름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순교자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기자이다. 그것은 몇 시간씩 걸어 물을 길어 텐트로 나르고 다시 돌아가던 아이이며, 끝내 수업을 멈추지 않는 교사이고,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컵마저 이웃과 나누는 가족이다. 그것은 파괴가 그곳의 마지막 언어가 되는 것을, 마지막 이름이 되는 것을, 마지막 기억이 되는 것을 끝내 거부하는 일이다.
죽은 이들의 이름이 자부심과 책임으로 불릴 때, 그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 1987년 1차 인티파다 당시 이스라엘군에게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여성
출처 미상 SNS
바로 이것을 광주는 내게 이해하게 해준다.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이 모두 침묵을 거부할 때, 학살은 역사의 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곳은 가르쳐준다. 죽은 이들의 이름이 자부심과 책임으로 불릴 때, 그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한 도시가 깊은 상처를 입고도 여전히 세계의 도덕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자는 단지 고통의 장소만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양심이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광주가 우리에게 사회적 연대를 가르쳐 주었듯, 가자는 오늘도 불가능해 보이는 용기와 수무드의 땅으로 남아 있다. 삶을 둘러싼 모든 구조가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도록 짜여 있음에도, 끝내 서로의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사람들의 땅으로.
그래서 나는 다시, 오래전 다른 언어와 다른 시간 속에 남겨두었던 질문 앞으로 돌아간다. 나는 끝내 구름 위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이것은 국경이 나를 밀어내고, 검문소가 나를 끝없이 붙들어 세우고, 서류와 여권이 나를 비인간화하며 하나의 문제로 규정하던 때 내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야 하는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존재해야 하는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자리에서 애도해야 하는가? 끝내 닿을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조국을 사랑해야 하는가? 길들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지도와 국경들이 끝없이 나를 밀어내는 그 장소를?
팔레스타인인들은 종종 바로 그 구름 위에서 살기를 요구받는다. 존재하되 지나치게 존재해서는 안 되고, 슬퍼하되 너무 크게 울어서는 안 되며, 인간이되 오직 증명 이후에만, 오직 죽음 이후에만, 오직 사라진 이후에만 인간으로 인정받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나 가자는 광주처럼 그 요구를 거부한다. 죽은 이들을 다시 현재의 시간 속으로 불러오며, 그들에게 여전히 이름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고, 꿈과 가족과 끝내 다 살아내지 못한 미래가 남아 있음을 끝까지 붙든다. 그리고 기억이란 단지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자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책임이라는 것을 말한다.
나는 팔레스타인의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죽은 이들이 산 자들과 함께 걷고, 슬픔이 하나의 언어가 되며, 존엄을 향한 투쟁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어 죽음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광주에서, 가자를 향해 글을 쓴다. 어떤 상처들은 처음 베어진 그 자리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상처들은 끝내 하나의 부름이 되고, 어떤 도시들은 우리에게 그 부름을 듣는 법을 가르쳐 준다. 어떤 역사들은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끝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끝내 응답해야 한다.
번역: 박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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