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故) 김갑진 열사의 아내 정정희(72)씨가 남편의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화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신 어머니는, 역사 공부보다 세상 공부를 하고 다니는 아들을 늘 걱정하셨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어머니는 같은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아들아, 대학 가서 데모하면 안 된다. 큰일 난다."
대학에 들어가 시위에 나가는 아들을 본 뒤로는, 말씀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아들아, 데모를 해도 앞에 서면 안 된다. 잡혀간다."
어느 해 5월, 저는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갔습니다. 민족민주열사들이 누워 계신 그 묘역에서, 어머니와 저는 소주 한 잔을 따라 놓고 마주앉았습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보여 주신 그 비디오 테이프 속 광주를, 저는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제가 역사를 배운 사람인데,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누워 계신데 어떻게 외면하고 살아요."
어머니는 한참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어머니도 5·18을 모르지 않으셨다는 것을. 몰라서 조용히 사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한 시대의 침묵은 무지가 아니라,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한 어머니의 두려움이었고, 그 시절을 함께 견뎌낸 한 세대의 슬픔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침묵을 동의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어떤 침묵은 가장 깊은 애도이고, 가장 무거운 증언입니다.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은, 침묵 속에 5월을 견뎌 온 수많은 어머니들의 마음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의 비극은 시민군의 함성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하지 못한 이들의 침묵, 울지 못한 이들의 눈물 또한 그날의 광주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진실입니다.
교실에서, 12년째의 5월
역사교사가 되어, 매년 5월이면 교실에서 5·18을 가르칩니다. 올해로 13년째입니다. 그리고 오늘, 2026년 5월 18일. 저는 우리 학교 아이들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 기억 캠페인'을 엽니다.
잊지 않기 위해 행동합니다. 기억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기억은 그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정보가 아닙니다. 기억은 행동입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기억은 곧 잊힙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아이들과 함께 작은 무엇이라도 합니다. 한 장의 포스터를 만들고, 한 줄의 추모 글을 쓰고, 5월의 어느 수업 시간에 다 같이 1분간 묵념을 합니다. 거창한 행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1분이 한 학생의 평생에 5·18의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생활지도 사안이 발생하는 시끌벅적한 남자 중학교에서, 저는 아이들에게 평화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서로의 일상의 평화를 지키자. 평범한 삶의 평화를 깨지 말자. 친구의 평화를, 가족의 평화를, 이웃의 평화를 작은 말 한마디로도, 작은 행동 하나로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5·18을 가르친다는 것은 1980년의 한 사건을 외우게 하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이들과 함께 묻고 또 묻는 일입니다.
당신의 5·18은 안녕하십니까
5·18은 1980년 광주만의 일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5·18은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인류 보편의 경고입니다.
작은 고모가 빚으셨던 주먹밥은, 굶주린 이웃을 외면하지 않은 한 시민의 양심이었습니다. 작은아버지의 가게 벽에 박힌 총알은, 시위 한 번 한 적 없는 사람의 하루마저 빼앗아 가는 국가폭력의 얼굴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며 침묵으로 5월을 견뎌낸 한 시대의 애도였습니다.
서로 다른 표정을 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결국 같은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밥을 짓고, 누군가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거리에 섰고, 누군가는 그것이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평생 침묵의 무게를 견뎌 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나의 평화와, 너의 평화와, 우리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옆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것. 잘못된 정보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것. 5월에 한 번이라도 광주를 떠올리는 것. 영화 한 편을 더 보고 가족과 이야기 나누는 것. 그리고 '그날 그곳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늘을 사는 방식이자, 5·18을 살아내는 방식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려 주십시오.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작은아버지였던 그분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먹밥을 빚으셨을 누군가의 거친 손을, 가게 벽에 박힌 한 발의 총알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른 통곡을 잠시만이라도 함께 떠올려 주십시오.
그 기억이, 오늘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됩니다.
당신의 5·18은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날을 기억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랑과 삶을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 모두가 5·18을 살아내는 방식이기에.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 영성중 기억 캠페인 기억 캠페인 포스터
이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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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역사를 가르치고, 집에서는 8살 딸 지수와 6살 아들 지호에게 인생을 배우는 아빠. 첫째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고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과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만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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