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최치원의 시에 반응한 아이들

경주 '신라오기' 공연 현장… 5월 23일 마지막 무대 남아

등록 2026.05.18 13:51수정 2026.05.1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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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경주를 찾았다. 월정교 너머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리를 건너 경주향교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자리는 신라시대 국가 교육기관인 국학이 있던 곳이다. 그 학문의 정신이 조선시대 향교로 이어졌다. 지금은 경주향교 일대에는 경주 최씨 고택과 교동법주 양조장, 식당, 찻집들이 어우러진 전통 마을로 살아 있다.

마침 향교 일대에서 '신라오기(新羅五伎)'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에 담긴 오기(금환·대면·산예·월전·속독)를 현대 마당극으로 재해석한 공연이다. 향악잡영은 삼국사기 권32에 전한다.


 신라오기 공연
신라오기 공연 여경수

무대는 다섯 마당으로 펼쳐졌다. 금방울을 던지고 받는 기예 '금환', 황금 가면을 쓰고 붉은 채찍으로 귀신을 쫓는 '대면', 사자탈을 쓰고 추는 '산예', 익살스러운 풍자극 '월전', 그리고 아이들이 무리 지어 솟구치며 빙글빙글 도는 '속독'이었다.

아직 유치원생인 둘째 아이는 사자탈을 쓴 배우가 다가오자 온몸이 굳어버렸다. 반면 초등학생인 언니는 속독의 군무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였다. 같은 무대를 보면서도 이렇게 다른 반응이라니. 최치원이 천 년 전 한자로 적어 남긴 예술이, 지금 이 아이들의 몸을 저마다 다르게 건드리고 있었다.

 신라오기 공연
신라오기 공연 여경수

행사장에서 배부된 안내장을 살펴보니 삼국사기 권32에 실린 향악잡영 원문도 소개되어 있었다. 속독을 묘사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더수룩한 머리에 푸른 얼굴, 모습이 범상치 않은데, 무리 지은 아이들 고슴도치처럼 빽빽이 모여 북적대누나. 팔뚝 북소리 요란하게 울리고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가벼운 몸으로 솟구쳐 오르며 빙글빙글 춤을 추는구나."

공연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아이들의 모습이 정확히 이 구절 안에 있었다. 신라는 서역과 활발히 교류하며 외래 예술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빚어냈다. 최치원은 그 현장을 시로 기록했고, 그 기록이 천 년을 건너 오늘의 무대가 되었다. 문화강국 신라의 저력이 새삼 실감 났다. 올해 마지막 공연이 오는 5월 23일 경주향교 일대에서 열린다.
#신라오기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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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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