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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사형집행 후 암매장 된 실미도 공작원 4명 유해 발굴 나선다

18일 오전 고양시 벽제시립묘지서 개토제

등록 2026.05.18 12:03수정 2026.05.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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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8월 23일 군경과 교전 후 병원으로 이송되는 실미도 부대원.
1971년 8월 23일 군경과 교전 후 병원으로 이송되는 실미도 부대원. mbc

군 당국이 지난 1971년 실미도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집행된 후 암매장된 공군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의 유해 발굴에 나선다.

국방부는 18일 경기도 고양시 벽제시립묘지에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의 넋을 기리고 유해발굴을 기원하는 개토제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열린 개토제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암매장 장소로 추정한 벽제시립묘지(5-2지역)에서 진행됐다.

국방부는 고양시 덕양구 벽제시립묘지 발굴을 시작으로 서울 구로구 오류동 옛 공군 정보부대 터,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내 팔각정 일원을 연내 차례대로 발굴할 계획이다.

김미성 군인권총괄담당관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실미도 사건으로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오랜 세월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견뎌오신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유해발굴 작업에서 유가족들의 염원대로 네 분의 유해를 찾을 수 있기를 여기에 계신 모든 분과 함께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작원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에 보복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와 공군이 북한 침투를 목표로 같은 해 4월 창설됐다.


당시 공작원은 북한 공작원 수와 동일한 31명으로 구성됐다. 이 중 7명은 혹독한 훈련 과정에서 사망했고, 나머지 24명은 3년 4개월 동안 실미도에 격리된 채로 사실상 구금 생활을 이어갔다.

가혹한 훈련과 부당한 대우를 견디지 못한 부대원들은 1971년 8월 23일 부대 기간요원들을 살해하고 탈출해 서울로 향했다. 이들은 대방동까지 진출해 도로를 차단한 군경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20명이 목숨을 잃었고, 체포된 4명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공군은 이듬해 4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지만, 이를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시신조차 인도하지 않고 비밀리에 암매장했다.

군경과 교전 중 숨진 부대원 20명의 유해는 벽제시립묘지에서 발굴되었지만, 사형 집행 후 암매장된 4명의 유해는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진화위는 불법 모집, 사형이 집행된 공작원의 유해 암매장, 대법원 상고 포기 회유 등 실미도 사건의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국가 사과, 유해발굴 등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2024년 10월 실미도 공작원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국방부 장관 명의의 사과를 한 바 있다.
#실미도 #북파공작원 #진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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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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