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장은 열렸지만, 제도는 아직 문턱에 서 있다

46주년 기념식이 남긴 헌법·직권등록·전남도청·통합특별시 과제

등록 2026.05.18 16:33수정 2026.05.1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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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년 5월 18일 오전, 광주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올해 기념식 주제는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였다. 5·18 역사 현장인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국가기념식이 열린 것은 2020년 40주년 이후 6년 만이다. 기념식에는 5·18 유공자와 유족, 정부 인사, 여야 지도부, 각계 대표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 기념식에서 가장 눈에 띈 장면은 복원된 옛 전남도청이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옛 전남도청은 2019년부터 복원 사업이 진행됐고, 기념식 당일 정식 개관했다. 5·18민주광장은 1980년 당시 시민들이 분수대를 연단으로 삼아 집회를 열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광장은 다시 열렸고, 기억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광장이 열렸다고 해서 오월의 과제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옛 전남도청의 민주주의 공간화, 5·18 민주유공자 직권등록 제도 마련을 약속했다. 그는 또 5·18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보상하고 예우하겠다"고 밝혔다. 기념사의 형식은 추모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헌법과 행정, 기록과 지역정책에 관한 제도적 과제였다.

헌법 전문 수록, 상징 논쟁에 머물 수 없다

가장 먼저 남은 쟁점은 헌법이다. 지난 5월 7일 국회 본회의에는 비상계엄 요건 강화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등을 담은 헌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해당 개헌안에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하고,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표결 불참으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다.

반대 입장도 있었다. 국민의힘은 해당 개헌 추진을 "졸속·누더기·선거용"이라고 비판했다. 헌법 개정은 국가의 기본 질서를 바꾸는 일이므로 충분한 숙의와 폭넓은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가볍게 볼 수 없다. 개헌의 내용이 옳더라도 절차의 정당성이 약하면 사회적 합의는 흔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계엄 통제 장치의 필요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엄권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는 더 이상 추상적인 헌법학 논쟁이 아니다. 실제 개헌안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엄권 남용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헌정질서를 복원하는 취지로 평가됐다.


이 대목에서 참고할 만한 비교헌법 연구가 있다. 미국 비교헌법학자 톰 긴즈버그와 밀라 베르스티그는 비상권한에 관한 공동 연구에서, 위기 상황을 곧바로 '제약 없는 행정부의 시간'으로 보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시기 100여 개국 사례를 분석하며, 법원과 의회, 지방정부가 비상상황에서도 중앙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긴급권 발동의 절차와 권리 제한을 심사했고, 의회는 감시와 입법을 맡았으며, 지방정부 역시 중앙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국제 IDEA의 비상권한 헌법설계 자료도 같은 문제를 짚는다. 이 자료는 많은 민주국가 헌법이 비상권한 조항을 두지만, 그 조항은 권리 제한, 권력 집중, 선거 연기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비상권한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인 동시에, 남용될 경우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국제 IDEA는 비상권한이 법치주의 안에서 행사되도록 절차와 보장 장치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의 헌법 개정 논쟁도 시사점을 준다. 일본 헌법 개정 논의를 분석한 칼 굿맨은 자민당의 긴급사태 조항 구상이 선언권자와 집행권자를 충분히 분리하지 않고, 의회의 즉각적 승인·심사와 사법심사, 기본권 보호 장치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에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상권한을 헌법에 넣을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권한을 누가 발동하고 누가 감시하며 언제 어떻게 종료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다(관련 기사: 평화헌법 79년, 일본은 왜 지금 브레이크를 풀려 하나 https://omn.kr/2i1yv)

이 관점에서 보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상징 논쟁으로만 보기 어렵다. 1980년 광주는 통제받지 않는 국가권력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얼마나 빠르게 위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역사다. 헌법 전문에 오월의 민주이념을 새기는 일은 과거를 기리는 행위인 동시에, 국가권력의 자기통제를 헌정 질서 안에 명문화하는 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직권등록제, 국가가 기다리는 행정에서 찾아가는 행정으로

이 대통령이 밝힌 또 하나의 약속은 5·18 민주유공자 직권등록 제도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국립 5·18민주묘지의 고 양창근 열사를 언급하며, 등록신청을 대신할 직계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사례를 들었다. 이어 정부가 국가폭력 희생자의 가족이 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보훈부 안내는 5·18 민주유공자 유가족과 가족의 순위를 배우자, 자녀, 부모, 조부모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보훈 민원안내에는 5·18 민주유공자 등록이 민원 신청 항목으로 제시되어 있다. 가족관계가 끊겼거나, 신청 절차를 알지 못했거나, 오랜 트라우마로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라면 이런 방식은 실제 피해자를 제도 밖에 남겨둘 수 있다.

해외 사례는 기록과 등록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독일의 아롤젠 아카이브는 나치 박해 피해자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4000만 건 이상의 문서를 온라인 아카이브로 제공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개인 소지품을 돌려주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기록을 개인의 신청에만 맡기지 않고, 공적 기록체계가 지속적으로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연결하는 방식이다.

아르헨티나의 CONADEP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민주화 이후 설치된 국가실종자위원회는 군사정권 시기 실종·납치·고문·처형 사례를 조사했고, 1984년 공식 보고서 형식의 < Nunca Más >로 그 결과를 남겼다. 이 보고서는 수만 쪽의 자료와 수천 명의 피해자 이름, 비밀수용소 위치와 생존자 증언을 기록했다.

이런 사례를 5·18에 그대로 옮기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국가폭력 피해를 개인과 유족이 먼저 증명해야 하는 구조에서, 국가가 축적된 기록을 바탕으로 피해자를 찾고 인정하는 구조로 전환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직권등록제는 보상 행정의 편의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방향을 바꾸는 제도다. 실제 운영을 위해서는 조사 권한, 자료 접근권, 행정 인력, 예산, 이의신청 절차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전남도청, 복원 이후가 더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복원된 옛 전남도청을 "K-민주주의의 성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전남도청을 불법적 국가폭력에 맞선 최후의 시민 항쟁지로 언급하며, 그곳에 새겨진 희생과 연대의 정신이 미래 세대의 가치로 계승되도록 정부가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지는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물 복원은 출발점일 뿐이다. 기록 보존, 증언 수집, 시민 접근성, 연구·교육 프로그램, 지속적인 진상 규명이 함께 이어져야 전남도청은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민주주의를 배우는 살아 있는 현장이 될 수 있다.

일본의 5·18 기록유산을 연구해 온 마나베 유코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의 발표는 이 점을 보여준다. 2024년 5·18 국제학술대회 자료에 따르면 마나베 교수는 "일본의 5·18기록유산"을 주제로 발표했고, 당시 광주에 갇힌 일본인과 재일한국인의 증언, 아사히신문 보도, 일본 내 출판물 등을 통해 5·18 관련 정보가 치열한 통제 속에서도 여러 경로로 전파됐음을 짚었다.

같은 학술대회에서 켄트주립대 랜든 핸콕 교수는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대응에서 드러난 인권, 전장의 안개와 정치적 편의성"을 발표했다. 그는 해제 문서를 검토하며 미국 행정부의 대응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안보와 안정 유지 논리에 묶여 있었음을 분석했다. 이 논의는 5·18이 국내 정치의 기억을 넘어 냉전기 국제정치와 인권, 안보의 문제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전남도청이 살아 있는 공간이 되려면 국내 기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에 더하여 일본 언론과 재일한국인 증언, 미국 정부 문서, 시민 구술, 사진과 영상, 가해자와 피해자 기록을 함께 연결하는 열린 기록 플랫폼이 필요하다. 전남도청의 복원은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을 어떻게 공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이름보다 삶의 변화가 중요하다

지역 의제도 남아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2026년 7월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을 목표로 준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3월 전남도·광주시와 출범준비회의를 열고, 단계별 이행안과 정보시스템 통합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광주와 전남의 통합을 상생과 공존의 새 이정표로 언급했다. 5·18 정신을 지역 행정과 연결하려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러나 통합은 이름 바꾸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청사 위치, 권한 배분, 예산 구조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질문은 주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다.

교통, 의료, 교육, 산업, 재난 대응 체계가 실제로 개선되어야 한다. 광주와 전남의 통합이 5·18 정신의 행정적 구현이 되려면, 상생과 공존이라는 말이 주민의 생활권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특히 지역소멸, 고령화, 공공의료 격차, 재난 대응 역량은 통합특별시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광장이 열렸다고 제도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46주년 5·18 기념식은 추모의 자리였지만, 그날 광장에 남은 질문은 추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헌법 전문 수록과 계엄 통제, 직권등록 제도, 옛 전남도청의 기록·교육 공간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안정적 출범은 모두 구체적인 실행을 요구한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개헌에는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고,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의 제도 논의가 정치적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그 우려가 제도 개선 논의를 멈추게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야가 공개적으로 쟁점을 정리하고, 무엇에 동의하고 무엇에 반대하는지 시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오월은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광장이 열렸다고 제도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다음 5월이 오기 전까지 헌법, 행정, 기록, 지역 통합의 영역에서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추모는 기억의 출발점이지만, 책임은 제도 속에서 확인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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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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