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셔틀외교, 한일은 국민안전망을 짤 수 있을까

[주장] 공급망·지방창생·재난관리, '고향 외교'를 제도전환의 시험대로

등록 2026.05.19 11:34수정 2026.05.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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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동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경제·사회·국민 보호’='공급망·지방창생·재난안전 협력' 의제가 양국 국민의 안전망이 될 수 있는지 짚었습니다.[기자말]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월 13일 일본 나라현 회담장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함께 일본 측이 사전에 준비한 푸른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일본의 대표 악기 브랜드 '펄(Pearl)' 드럼 앞에 마주 앉아 즉석 드럼 합주를 선보이고 있다. 자료=Korea Presidential Office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월 13일 일본 나라현 회담장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함께 일본 측이 사전에 준비한 푸른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일본의 대표 악기 브랜드 '펄(Pearl)' 드럼 앞에 마주 앉아 즉석 드럼 합주를 선보이고 있다. 자료=Korea Presidential Office 대한민국 청와대

5월 19~20일, 경북 안동이 다시 외교 뉴스의 현장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 안동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맞는다. 형식은 셔틀외교의 답방이다. 그러나 이번 만남을 의전의 장면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에서 경제, 사회, 국민 보호 등 민생에 직결된 실질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안동에서 무엇을 물어야 할까. 한일 관계가 좋아졌다는 말만으로 충분한가. 안동찜닭과 전통 공연, 하회마을의 상징성만 남는다면 회담은 사진으로 소비되고 끝날 수 있다. 이번 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한일이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안전망을 실제로 설계할 수 있느냐다. 공급망, 지방창생, 재난안전. 이 세 갈래가 안동 회담의 민생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공식 발표가 비교적 넓게 열어둔 '경제·사회·국민 보호'라는 표현은, 거꾸로 말하면 이번 회담을 어디까지 밀고 갈지는 양국의 의지에 달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사와 안보 현안의 틀 안에만 머물면 새로울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더 보고 싶은 장면은 외교 의제가 지역경제와 재난 현장, 생활물가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이다.

옛말에 유비무환, 즉 미리 준비하면 근심이 없다고 했다. 안동 회담이 단순한 의전 행사가 아니라면 이 말은 이번 회담을 읽는 핵심어가 될 수 있다. 공급망, 지방창생, 재난안전은 모두 위기가 닥친 뒤 대응하면 늦는 분야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막히는 순간 국민의 물가와 일자리, 지역의 생존, 재난 현장의 구조 속도로 나타난다.

한일 경제협력 가능성, 구체 아젠다로 승부

한일 경제협력은 이미 '각자도생 한계'를 넘어 '공동 생존 전략'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공급망 파트너십(SCPA) 프레임워크를 통해 희토류·리튬 등 핵심광물 공동 조달·비축 체계를 만들고, 호주·중남미 등 제3국 광산 개발에 공동 투자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본의 소재·부품 기술과 한국의 생산 능력을 결합한 공동 R&D 플랫폼을 추진할 수 있다.

지방소멸 대응 창생전략도 중요한 아젠다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를 공유하는 양국은 경북과 일본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포럼을 정례화하고, 중소기업 기술매칭, 청년인력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다. 안동-나라(奈良)처럼 고향 도시 간 관광·문화·산업 연계 사업은 국민 체감 효과가 크다.


공급망 불안, 일본 실패학이 먼저 던진 질문

한일 경제협력의 첫 번째 의제는 공급망이다. 반도체 소재, 배터리 광물, 에너지 자원은 이제 기업의 조달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활의 가격표와 일자리 문제다. 한 나라에서 물류가 막히거나 특정 원자재 수출이 흔들리면 공장 가동률, 물가, 지역 고용이 동시에 출렁인다.


일본은 이 사실을 먼저 겪었다. 2010년 센카쿠 열도 충돌 뒤 일본 사회에는 희토류 공급 차질에 대한 강한 기억이 남았다. 그 사건의 세부 평가는 지금도 논쟁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 기업과 정부가 그 이후 조달 다변화, 대체 기술, 재활용 체계에 속도를 냈다는 점이다. 실패학의 눈으로 보면 교훈은 간단하다. 위기 매뉴얼은 있어도 공급망의 목을 남에게 맡기면 국가는 쉽게 흔들린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역량과 일본의 소재·부품 기술은 경쟁과 보완의 경계에 서 있다. 양국이 각자도생으로 버티기보다 공동 조달, 공동 비축, 조기경보 체계를 제도화한다면 위험은 줄고 협상력은 커진다. 호주와 동남아 등 제3국 광물 개발에 공동 투자하고,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참여하는 공동 연구개발 창구를 만드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으로 거론된다.

정상회담이 할 일은 거창한 구호를 반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핵심광물과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어떤 실무 협의체가 만들어지는지, 기업과 연구기관이 위험 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지, 공동비축과 공동투자가 실제 논의 단계로 들어가는지가 성과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고향 안동에서 지방소멸을 말해야 하는 이유

안동 회담의 두 번째 의제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지역창생'이다. 정상회담이 왜 서울이 아니라 안동인가. 단지 대통령의 고향이기 때문이라면 반쪽짜리 해석이다. 안동은 지방이 외교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소다. 동시에 한일이 공통으로 겪는 인구감소와 지역쇠퇴를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현장이기도 하다.

한국은 2026년 지방소멸대응기금 1조 원을 시설 중심에서 사람 중심 사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정주 인구와 체류 인구를 늘리고, 산업·일자리와 마을공동체를 살리는 사업에 무게를 두겠다는 방향이다. 문제는 돈을 어디에 쓰느냐보다 사람이 왜 머물 것인가에 있다. 다리와 센터를 지어도 일자리, 돌봄, 의료, 교육이 따라오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일본의 지방창생 경험은 그래서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014년 이후 지방창생을 추진했지만, 단순한 인구 유입 정책만으로는 한계를 봤다. 최근 일본의 지역 정책은 관계인구, 민관협력,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생활환경 개선으로 방향을 넓히고 있다. 관광객 이상, 이주민 미만의 사람들이 지역과 계속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온고지신,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말은 역사도시 안동에 잘 어울린다. 안동과 일본의 역사도시들이 문화 교류에 머무르지 않고 청년 창업, 전통산업 고도화, 고령사회 돌봄, 지역대학 협력으로 이어진다면 정상회담의 효과는 중앙 정치의 이벤트를 넘어설 수 있다.

경북과 일본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지방창생 포럼을 정례화하고, 지역 중소기업 기술 매칭과 청년 교환 프로그램을 붙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외교가 지방 골목의 일자리로 이어질 때 시민은 비로소 회담의 의미를 체감한다.

재난안전 협력, 국민 보호의 내용을 바꿔야 한다

세 번째 의제는 '재난안전'이다. 일본 정치에서 국민 보호라는 말은 종종 안보 담론으로 좁게 읽힌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은 군사적 위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진, 폭우, 산불, 감염병, 에너지 공급 차질, 물류 마비가 함께 올 때 시민의 삶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지방소멸 지역일수록 병원은 멀고 구조 인력은 부족하다. 재난은 가장 약한 지역부터 파고든다.

전문 구조 인력만으로는 고령화와 복합위기(재난) 시대의 위험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고, 평상시 주민이 대피 요령, 응급처치, 위험정보 전달 방법을 익히는 생활형 안전교육이 필요하다.

이 제안은 이번 회담의 '국민보호' 의제가 군사·안보 담론에 머물지 않고 지역 재난현장으로 넓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민안전가 양성 프로그램이 한일 공동교육, 지자체 교류, 학교·마을 단위 훈련으로 이어진다면 재난안전 협력은 정상회담 문구를 넘어 주민의 몸에 익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일본은 매뉴얼 사회로 불린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는 촘촘한 매뉴얼만으로 복합재난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국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재난문자는 빨라졌지만, 고령자와 장애인, 이주민, 관광객까지 실제로 대피시키는 지역 단위 시스템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한일은 이미 방재회의라는 협력 채널을 갖고 있다. 올해 1월에도 제18회 한일 방재회의가 열려 양국의 재난관리 사례와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안동 회담은 이 기존 채널을 정상외교의 의제로 끌어올릴 기회다. 드론을 활용한 산불·침수 지역 물품 배송, 지진·지진해일 대피장소 정보 공유, 재난 취약계층 지원 매뉴얼, 관광지 인파 관리 기술을 공동으로 점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회의가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연결망이다.

비정부행위자 협력이 진짜 안전망이다

정부 간 합의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협정서는 만들어져도 이행은 느리고, 정권이 바뀌면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비정부행위자 협력이다. 기업, 대학, 연구소,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가 국경을 넘어 연결될 때 안전망은 두꺼워진다.

공급망에서는 민간 연구소와 기업이 위험 징후를 공동 모니터링할 수 있다. 지방소멸 대응에서는 지역대학과 중소기업, 사회적경제 조직이 청년 체류 프로그램을 함께 설계할 수 있다. 재난안전 분야에서는 한일 지자체가 비상물자 목록과 대피소 운영 경험을 공유하고, 재난기술 스타트업이 공동 실증에 나설 수 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설계하고 허가한 뒤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위기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시민안전가 양성 프로그램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한일 소방·방재기관, 대학, 지역 공동체가 함께 표준 교육과정을 만들고, 청소년·고령자·관광객을 대상으로 훈련을 확산한다면 재난 대응은 관청의 업무를 넘어 시민의 역량으로 축적된다. 안전은 국가가 국민에게 내려주는 보호가 아니라, 시민과 지역이 함께 만드는 회복력이라는 점에서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 끝)이 2025년 10월 30일 오후 경북 경주 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왼쪽 끝)와 취임 후 첫 한일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대한민국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 끝)이 2025년 10월 30일 오후 경북 경주 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왼쪽 끝)와 취임 후 첫 한일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대한민국 대통령실 Office of the President o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회담의 성과는 문서보다 현장에서 확인된다. 회담 뒤 6개월 안에 어떤 실무협의체가 열리는지, 어떤 지역 프로그램이 시작되는지, 어떤 기업과 대학이 참여하는지가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을 반복하려면 그 미래가 어디에서 누구를 지키는지 보여줘야 한다.

안동에서 시작되는 안전혁명

이번 회담이 남길 최소한의 성과지표는 분명하다. 첫째, 공급망 조기경보와 핵심광물 공동비축을 논의할 실무협의체를 가동해야 한다. 둘째, 안동·경북과 일본 지방도시가 참여하는 지방창생 협력 포럼을 정례화해야 한다. 셋째, '한일방재회의'를 지자체·기업·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재난안전 플랫폼으로 넓혀야 한다. 여기에 시민안전가 양성 프로그램을 붙인다면 국민 보호 의제는 훨씬 구체적인 생활정책으로 내려올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안전혁명'은 더 이상 추상적 언어가 아니다. '미래 리스크 관리'는 외교 문서가 아니라 일상의 제도에서 시작된다. 안전사회는 정상의 악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가를 흔들지 않는 공급망, 사라지지 않는 마을, 재난 앞에서 서로 손을 내미는 체계가 있을 때 가능하다.

안동은 전통의 도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과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오래된 도시에서 새로운 제도전환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일이 안동에서 국민의 안전을 외교의 중심어로 세운다면, 고향 셔틀외교는 의전이 아니라 동아시아 민생 협력의 첫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다. 사진은 하루를 남기지만 제도는 사람을 살린다. 안동 셔틀외교가 동아시아 민생 협력의 첫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을지는 이제 회담 이후의 실행에 달려 있다. 한일 '고향(지방) 외교'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한일정상회담안동셔틀외교 #이재명대통령안전사회 #다카이치사나에일본총리지방창생 #안전혁명김영근한일관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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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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