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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5.20 11:03수정 2026.05.20 11:0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실장님, 요새 다이어트하시죠?"
"친구야, 너 운동하지? 몸이 많이 슬림해졌다."
"형님, 얼굴이 반쪽이 되셨어요. 뭐 하시죠?"
최근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1800m 한강 횡단을 위해서 아침, 점심으로 하루 두 번씩 물속으로 뛰어드는 '1일 2수'도 마다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몸이 가벼워지니 솔직히 거울을 볼 때마다 은근히 기분도 좋습니다.
문득 한번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습니다. 현재 제 실력은 100m 완영 가능 수준인데, 1800m의 한강을 횡단하려면 앞으로 1700m의 거리를 더 늘려야 합니다. 내년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13개월. 산술적으로 매달 130m(1700 ÷ 13)씩 수영 가능 거리를 늘려나가면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도전의 첫 단추인 5월, 기존 제 능력치인 100m 수준에서 130m를 더한 230m로 하려다가 20m를 더 얹어 '250m 완영'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25m 레인 기준으로 딱 왕복 5바퀴(편도 10번)를 쉬지 않고 도는 분량입니다. 아무리 아득해 보이는 목표도 결국 월 단위, 주 단위로 해체하고 나면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가 보이는 법이니까요.
아득한 목표를 넘는 주문, "딱 왕복 한 바퀴만 더"

▲ 점심시간, 숨 가쁜 '1일 2수'의 길목에서 마주한 5월의 장미. 계절은 이토록 정직하게 붉은 흔적을 남깁니다.
문현호
이번 달 목표인 '왕복 5바퀴'를 다시 일주일 단위로 쪼개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주에 겨우 '왕복 한 바퀴(50m)'만 더 늘리면 된다는 가벼운 숫자가 툭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면 마음속으로 단 하나의 주문만 외우기로 했습니다.
"지난주보다 딱 왕복 한 바퀴만 더 돌자."
이 소박한 다짐을 세우고 나니, 저를 짓누르던 1800m라는 숫자의 공포가 신기하게도 사라졌습니다. 1년 뒤의 거대한 한강을 오늘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번 주에 내가 이겨내야 할 대상은 아득한 강물이 아니라, 오직 '지난주의 나' 였습니다.
물론 머릿속 계획과 달리, 매일 마주하는 물속의 세계는 너무나도 우직하고 정직합니다. 평소 돌던 대로 왕복 2바퀴(100m)를 채우면 어김없이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가쁜 숨이 차오릅니다. 산소가 부족해진 뇌는 익숙한 본능을 따라 "이제 그만 벽을 잡고 쉬어"라고 저를 종용 합니다. 평소라면 주저 없이 손을 뻗어 레인 끝을 붙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을 타이밍입니다. 그 순간, 코끝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가만히 주문을 외웁니다.
'지금부터, 딱 왕복 한 바퀴만 더.'
벽을 향해 가던 손을 거두고 기어이 몸을 돌려 다음 스트로크를 이어갑니다. 세 바퀴째에는 물살이 온몸에 저항으로 묵직하게 다가오고, 네 바퀴째에는 팔과 다리 근육이 터질듯 팽창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어코 버텨내어 마지막 다섯 바퀴를 채우고 손바닥으로 벽을 터치했을 때, 온몸을 감싸는 성취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지난주보다 딱 왕복 한 바퀴를 더 보탠, 나만의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매주 왕복 한 바퀴를 더하는 연습은 어찌 보면 단조롭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극적인 도약 같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문득 오래 전 들었던 성경 구절 하나가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 시편 90:12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 Psalm 90:12)
여기서 핵심은 바로 '날을 계수하다(number our days)'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흘러가는 날짜를 세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깊이 의식하고, 삶을 막연하게 흘려보내지 않으며,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알고 시간을 가치 있게 채워가라는 의미입니다.
목표를 구체적인 숫자로 만들고, 매일 정직하게 그것을 헤아리고 점검할 때, 흐릿했던 삶은 비로소 선명해지고 지혜로워진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아득한 숫자에 압도 당해 지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 나아갈 수 있는 거리를 매주 50m씩 정직하게 구체화하고, 헤아리고, 몸에 새기는 것. 그것은 단순히 한강을 건너기 위한 훈련을 넘어, 인생의 반환점에서 제 삶의 시간을 흐릿하게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지혜로운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에서 쌓아가는 성실함의 힘

▲ 무서운 힘이 되는 소박한 헤아림.
marcusxsnapz on Unsplash
이 소박한 헤아림이 쌓이면 무서운 힘이 됩니다. 매주 얹어간 왕복 한 바퀴가 차곡차곡 모이면, 내년 5월에는 한강 횡단 거리인 1800m(72바퀴)를 달성하게 됩니다. 대회 한 달 전에 필요 체력과 거리를 조기 달성하게 되는 셈입니다.
매일 마주하는 세상은 늘 우리에게 한 번에 거대한 성과를 내라고 다그치고, 조급하게 등을 떠밉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일상에서 숨이 찼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요행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헤아리고 내디딘 성실한 스트로크 만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입니다. 거창한 미래의 결과 대신, 오늘 내 눈앞에 주어진 '딱 왕복 한 바퀴'를 정직하게 계수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점심시간에 제가 배워가는 가장 단단한 삶의 태도입니다.
오늘도 저는 아침, 점심으로 수영장 푸른 물속에 몸을 던집니다. 살이 빠져 가벼워진 몸만큼, 마음의 무거운 짐들도 물속에 조금씩 녹아내리는 기분입니다. 대단한 한강의 기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지난주보다 딱 50m를 더 나아가 내 삶의 하루를 정직하게 계수한 저 자신과 조용히 하이파이브를 하며 수영장 문을 나설 것입니다. 제 근육과 심장, 그리고 인생은 매주 지혜롭게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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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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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횡단까지 13개월, '1일 2수' 하며 만든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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