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줄 알면서도 형제를 귀찮게 하는 이유

지역 휴양림을 걷고, 지역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자연 그대로의 채소를 나누며

등록 2026.05.28 10:41수정 2026.05.2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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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언니, 형부, 남동생, 올케가 느루뜰에 왔다. 봄이 완연해지면서 나는 형제들에게 "좋은 계절에 만나 얼굴도 보고 탐스럽게 자란 채소들을 갖다 먹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벌써 여름 초입에 이르렀다.

내게 좋은 것이 상대에게 꼭 좋을 리 만무한데, 나는 자꾸 귀찮게 한다. "상추 싹이 잘 났다"고, "부추가 맛있게 자랐다"고, "대파가 살이 올랐다"고, "얼른 시간 내서 오라"고 문자를 보낸다. "지역 시장에 나갔더니 멸치 쌈밥이 맛있더라", "바닷가 음식점 호박 화덕피자가 부드럽고 맛나더라"며 꼬드긴다. "지역의 자연 휴양림에 갔더니 편백숲이 멋지더라" 같이 산책하자며 사진을 찍어 보낸다. 모두 맞벌이라 평일도 주말도 바쁜 줄 알지만 그래도 이 좋은 걸 같이 하자고 귀찮게 한다.


내 경우는 그랬다. 좋은 사람들이 권하는 것을 '예스'해서 후회한 적 없다. 그렇게 새로운 장소, 음식을 맛보며 좋은 추억들이 쌓였다. 경험을 공유하는 만큼 더 친밀해졌다. 삶에서,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기억, 추억이다.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많다면 삶의 끝자락에서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이었어' 하며 이 세상과 홀가분하게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밭에서 채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는 이 좋은 채소들을 제일 먼저 형제들과 나누고 싶다. 어쩔 수 없이 피를 나눈 형제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우리도 젊은 날 각자 살기 바빠 서로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제는 모두 흰 머리 희끗해졌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더 잘 돌보며 살자"고 다짐했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우리 형제 모습을 보며 안심할 수 있게 말이다.

우리집은 종가집이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란 옛말이 있듯, 우리는 큰언니가 중심이 되어 매달 한 집당 10만 원 회비를 내는 모임 통장이 있다. 그 회비로 좋은 계절에 가족 여행도 가고 연말 연시 모임도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형제가 더 애틋하다. 어릴 때 부터 한 이불 덮고 서로 기대고 돌보며 자랐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부모님의 빈 자리는 크지만, 그래도 형제가 있어 서로 채우며 지낸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형제와 함께

잔잔한 바다를 조망하며 느긋하게 점심을 즐길 수 있는 식당에서 호박 화덕피자, 파스타, 리조또, 필라프,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었다. 맛, 전망, 분위기가 좋은 장소에서 형제와 함께 하는 식사는 마냥 좋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제일로 편한 사람들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삶의 희로애락을 읽을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지역의 자연 휴양림을 산책했다. 때 이른 오월 더위지만, 편백 나무, 삼나무, 측백 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숲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걷기 좋았다. 숲길을 걸으며 근황을 나누기도 하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형부는 홀로 숲을 온통 느끼며 걷기 명상을 즐겼다.

산을 좋아하는 형부 덕분에 정상까지 올랐다. 정상에서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 능선, 섬들을 바로 보았다. 섬은 산이요, 바다는 흰 구름 같았다. 오랜만에 땀 흠뻑 흘리며 산행을 했더니 아주 생산적인 일을 끝낸 것처럼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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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림 정상에서 바라본 산과 바다 ⓒ 이정미


우리는 이른 저녁으로 멸치 쌈밥을 먹기로 했다. 마침 장날이라 식당 부근 노점에서는 참외 장수가 마지막 남은 몇 봉지를 떨이로 싼 값에 팔고 있었다. 언니가 한 봉지 사서 세 봉지로 나눴다. 알이 자잘했지만 노랗게 잘 익어 달달해 보였다.

제철 채소로 만든 나물 반찬, 무 소박이, 쌈채소, 매콤 담백 멸치 조림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맛있네. 고사리 나물이 들어가서 별미네."
"음, 깻잎 향이 강하네."

나는 올케에게 멸치를 가득 덜어주며 "많이 먹고 몸 회복해" 했다. 간단한 시술이지만 그래도 담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멸치와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가득한 제철 채소를 맛있게 먹으면 약해진 몸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테다.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느라 제 몸 살뜰히 보살필 여유 없이 지내는 올케다.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올케가 고맙다.

"아이구,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장사 하시면 손해납니다."

식당 사장님께서 서비스라며 달걀야채구이를 6개나 맛있게 구워 내 주셨다. 애호박, 양파, 당근이 듬뿍 들어간 도톰한 구이는 별미였다. 부드럽고 고소하고 담백해서 모두들 맛있다며 한 개씩 냉큼 먹어 치웠다.

사장님은 전남 완도에서 음식 장사를 하셨단다. '음식하면 남도'라는 말이 있듯이 음식이 푸짐하고 맛도 좋아 모두가 만족한 저녁 밥상이었다.

자연 그대로 채소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느루뜰에 왔다. 서산으로 해가 눕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적상추, 청상추를 가득 땄다. 잘 굵어진 양파를 몇 개 골라 뽑았다. 대파도 뽑고 부추도 베었다. 작은 언니가 서울 간다고 함께 하지 못해서 작은 언니 몫까지 챙겨 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가까이 사는 올케가 가져다 주기로 했다.

지난 5월 초순에 직접 만든 '꾸지뽕 잎차'도 맛 보라고 조금씩 담아서 선물했다. 가까이 있으면 더 자주 밭에 와서 채소들을 나누어 먹을 수 있으련만, 아쉬운 대로 감사하다.

"상추는 초벌 씻기 해서 락앤락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열흘 먹어도 싱싱하더라. 아침 저녁으로 5장~10장씩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씨앗을 놓으면 땅이 알아서 잘 키우는 느루뜰이 참으로 고맙다. 느루뜰은 돌이 많고 물 빠짐이 좋은 흙이라 그런지 별도의 관리를 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채소가 잘 자란다. 자연이 키운 그대로, 자연의 영양을 담은 채소를 소중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 더 좋다. 느루뜰 덕분에 생전 찾을 일 없던 지역에 와서 지역의 음식, 명소를 방문하고 즐기고 관심을 갖게 되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언니와 함께 채소를 가득 따서 봉지 봉지 담았다.(제미나이에게 사진을 펜화로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언니와 함께 채소를 가득 따서 봉지 봉지 담았다.(제미나이에게 사진을 펜화로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정미

그렇게 채소를 봉지 봉지 나눠 담고 나니 서쪽 하늘에 해가 지고 있었다.

"아랫집 밭에 자주 감자꽃이 예쁘게 피었더라. 보러 갈래?"

농막 이웃 언니네 텃밭에는 자주 감자꽃이 보라빛 물결이 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고사리 밭에는 고사리가 나무처럼 키를 키워 넘실거리고 있었다. 언니는 "이렇게 어울려 농사 지으면 참 재미있겠다"고 했다. 맞다. 이웃이 있어 더 즐겁고 풍요로운 오도이촌 생활이다. 우리는 잔잔한 먼 바다 위, 멀리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멀리 서산으로 해가 지고 있다.
멀리 서산으로 해가 지고 있다. 이정미
#멸치쌈밥 #채소 #자연휴양림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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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글쓰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자신의 성장을 너머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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