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와이오밍주에 들어설 테라파워의 차세대 원자력 발전소 '나트륨' 조감도
테라파워
원안위가 출범시킨 비경수형 SMR 규제연구반은 미국 테라파워(TerraPower)가 NRC로부터 취득한 소듐냉각고속로 '나트륨(Natrium)' 건설허가 사례를 집중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3월 발급된 NRC 공식 결정문(CLI-26-5)을 직접 들여다보면, 원안위가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첫째, 이번 허가는 설계 승인도 운전 허가도 아닌 단순한 행정적 건설 착공 허가다. 상업 운전 목표인 2030년까지 별도의 운전허가 심사를 다시 통과해야 한다. 둘째, 핵심 기술이 아직 실증되지 않았다. 결정문은 소듐-용융염 열교환기(SHX)에서 소듐과 염이 반응할 가능성을 "플랜트 위험과 관련한 가장 큰 불확실성 중 하나"로 명시하며, 최종 설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추가 연구개발을 의무화하고 연간 보고 조건을 부과했다. 셋째, 소듐 화재 대응 설계조차 미완성이다. 결정문은 화재방호 전략이 최종 플랜트 설계에 크게 의존하며 건설과 병행해 개발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NRC 결정문의 진정한 의미는 '기술이 완성됐으니 허가를 준다'가 아니라 '핵심 기술에 치명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건설 문서 형식은 갖추었으니 매년 검증받는 조건으로 지켜보겠다'는 고도의 관리형 조건부 유예다. 원안위는 '40년 만의 비경수로 허가'라는 수식어만 따와 규제 체계 구축을 서두르는 명분으로 삼고 있다. 결정문에 명시된 경고와 미해결 과제들은 철저히 지워버린 채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노형별 규제연구반'이라는 틀 자체에 있다. 원자로 노형을 기정사실로 놓고 그에 맞는 규제를 개발하겠다는 구조는, 규제 기준이 기술 실증보다 먼저 만들어지는 역전을 낳는다. 규제가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상용화 일정에 맞춰 인허가 통로를 닦아주는 형국이다. 해당 기술 개발 주체가 규제연구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안전 기준을 독립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 틀을 설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자백
원안위의 자기부정은 내부 포상 행사에서 완결된다. 원안위가 우수 성과로 포상한 'SMR 규제 로드맵 구축'의 이유는 "인허가 체계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이익을 보는 주체는 원전 개발 사업자다. 규제기관이 사업자의 행정 편의를 봐준 것을 스스로 최고의 우수 성과로 꼽아 내부 포상을 나누는 모습은, 이 기관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의
고리 2호기 수명연장 허가 역시 포상 대상이 될 수 없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의 정당성 논란과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 속에서 강행된 고리 2호기 수명연장 허가를 우수 성과로 자축하는 것은, 부정의한 결정을 내부적으로 정당화하는 행위다. 규제기관이 자신의 인허가 결정을 스스로 우수하다고 포상하는 구조에서는, 하위 심사관이 소신 있게 기술적 결함을 지적하고 허가에 제동을 걸기 어렵다. 조직 전체가 진흥의 속도전에 동원되는 방향으로 획일화되는 것이다.
독립성 훼손의 구조적 증거는 또 있다. 원안위는 혁신형 SMR(i-SMR) 개발 과정에서 법적 근거 없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산업통상자원부(현 기후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3년 10월부터 2026년 2월까지 2년 넘게 사전설계검토를 진행했다. 원자력 연구개발과 원전 산업 확대를 담당하는 전형적인 진흥 부처들과 규제기관이 손잡고 특정 기술 개발의 설계 도면을 함께 들여다본 것이다.
이 구조에서 원안위는 더 이상 독립적 심사자가 아니다. 개발 사업의 일정을 함께 걱정하는 개발 동반자로 전락한 것이다. 원안위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규제-설계 병행 개발'이라는 전략은, 규제의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했음을 시인하는 자백에 다름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NISA)은 원전 진흥을 주도하던 경제산업성 산하에 배치되어 있었다. 규제 관료들은 산업계와 유착해 '안전 신화'를 유포했고, 지진·해일 위험 경고를 묵살하며 규제를 완화했다. 그 대가는 수십만 명의 주민이 고향을 잃고, 후쿠시마를 포함한 동일본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는 참사로 일어났다.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가장 먼저 단행한 조치가, 규제기관을 진흥 부처에서 완전히 분리해 독립적인 원자력규제위원회(NRA)로 재창설한 것이었다.
지금 원안위의 행태는 후쿠시마 이전 일본의 상황과 일치한다. 이미 SMR 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며 진흥의 가속페달이 밟혔다. 그렇다면 원안위만이라도 그 폭주를 제어할 브레이크 역할을 자임했어야 한다.
그러나 원안위는 도리어 원자력안전법을 고쳐 인허가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불확실한 기술에 눈감으며, 스스로를 진흥의 파트너로 위치 지우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발언이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러나 안전을 무시하고 속도를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은 정권이 바뀐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원안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원안위는 이번 개정과 규제연구반이 안전규제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질문들에 먼저 답해야 한다. ▲ 사전검토 결과가 본심사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이 왜 법률에 명시되지 않았는가. ▲ 사전검토 신청서·검토계획·주요 쟁점·회의록·최종 결과는 왜 공개되지 않는가. ▲ 지역주민과 시민사회, 독립전문가는 왜 사전검토 절차에서 배제되는가. ▲ 기술 실증이 완료되지 않은 노형에 대해 규제 기준을 먼저 수립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 NRC가 허가 조건으로 명시한 SHX 미해결 과제와 소듐 화재 설계 미완성 문제를 한국 규제 체계에서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SMR과 비경수형 원자로는 상용화가 검증된 안전한 대안이 아니다. 기술적 불확실성이 크고 규제 공백은 넓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인허가의 조기화·고속화가 아니라, 실증되지 않은 기술이 사회에 전가하는 위험을 공개적으로 통제하는 더 투명하고 엄격한 안전규제다.
구체적으로는 사전검토 결과의 비구속성을 법률에 명시하고, 사전검토 전 과정을 공개하며, 지역주민·시민사회·독립전문가의 참여를 제도화 해야 한다. 또한 다수모듈 위험, 사이버보안, 사용후핵연료, 해체까지 전주기 안전 쟁점을 법정 필수 검토 항목으로 명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원안위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업자의 인허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원자력에서 안전은 낡은 관료주의가 아니라 규제의 존재 이유 그 자체다. 준비되지 않은 기술은 허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허가하기 위해 규제를 기술에 맞춰 낮추는 것은 안전 규제가 아니라 규제 포기다. 규제의 브레이크를 푸는 순간, 그 대가는 언제나 시민이 치르게 된다. SMR 개발 지원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해체해야 할 기관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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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이전 일본 상황과 유사...원자력안전위 내부에선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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