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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꺼진 하루는 다신 안 켜져요

[시로 읽는 오늘] 박한 '서울전파사'

등록 2026.05.28 09:06수정 2026.05.2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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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기자말]
서울전파사
- 박한

별빛으로 땜질한 저녁이
매일 고장이 나 돌아왔다


봄에 심은 나사들은
하나같이 흉작
쇠를 데우며
오후를 납땜하는 태양 밑으로
고장 난 가전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돌아간 턱을 다물지 못하는 전축과
머리를 치면
그제야 표정을 짓는 텔레비전이
인도까지 나와 늙었다

한때는 다 전성기였습니다

인두기를 내려놓아도 백발인 주인이
목장갑을 벗어 무릎을 털었다
나는 새 전구소켓을 고르고
고양이는 흠집마다 새 털이 자랐다
나사가 풀릴 때마다
함께 느슨해지는 노을

한번 꺼진 하루는 다신 안 켜져요


흉터로 흉터를 부축하는 가게
다 저물어 도착한 집앞에서
나는 담뱃불을 붙여
후후―
별을 지폈다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에서.


출처_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 삶창, 2023.
시인_ 박한 : 2018년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이 있다.

 고장난 물건들이 매일 저녁을 데리고 돌아왔다.
고장난 물건들이 매일 저녁을 데리고 돌아왔다.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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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시적 화자인 '나'는 감상에 잠긴다. 인도에는 낡은 '전축'과 '텔레비전'이 늘어져 있다. 언젠가 이 물건들도 새것이었고, 쓸모 있고 귀한 것이었다. 나는 전파사 주인이 성한 데 없는 물건의 나사를 풀고 납땜하는 장면을 저녁 하늘의 별빛과 절묘하게 연결한다. 나는 어떤 고장 난 일상을 고쳐나가고 있는가. "한번 꺼진 하루는 다신 안 켜"진다고 말하면서도 "흉터로 흉터를 부축"해내는 가게 앞에서 나는 담뱃불로 무얼 지피고, 무얼 흘려보내고 있을까. 되는 게 없는 흉작 같은 일상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하루지만, 그럼에도 해거름이 되면 꺼져가는 거리는 어김없이 빛을 낸다. 그것은 그림 같은 야경이 된다. 이울어가는 거리를 밝히는 빛으로 나는 나아가고, 오늘의 흉터를 견뎌낸다. 이 빛에 의지해 오늘을 살아간다. (문경수 시인)
#박한시인 #서울전파사 #기침이나지않는저녁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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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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