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교재&선물 교육교재와 마지막 날 받은 작은 선물 상자입니다. 교육을 마치고 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오동희
내 이름만으로 서야하는 시간
회사에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 1년에도 몇 차례 교육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교육은 특별했다. '스스로 원하여 교육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니었을까' 교육의 대부분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거나 업무 교육이었지만 이번은 나를 위하여 선택한 교육이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자신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시작이다. 31년간을 직위로 불렸던 내가 이제는 내 이름만으로 서야 한다. 그 시작은 교육으로부터 출발하였다.
2박 3일 일정의 교육 첫 시간은 마음을 여는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을 이야기하였다. 회사에서의 '직위'가 아닌 오롯이 '지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남의 일인 줄 알았던 퇴직이 막상 내 앞으로 다가온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개별적이다. 모두에게 다가오는 순간은 같지만 인정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는데, 퇴직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현재의 나를 바라보게 하는 교육이었다. 다음으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지 그 마음을 나누었다. 퇴직 이후 남아 있는 시간 속에 있을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산 정상만 바라보며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며 보는 산의 모습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한낮 정오의 태양은 마주 볼 수 없지만 저녁 무렵의 석양은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내 삶의 모습을 직면하여 볼 수 있다.
'퇴직'이라는 말 앞에 약하여 지기만 하였다. 오랜 기간 근무하여 익숙한 업무와 조직에 대한 자신감은 퇴직을 앞두고 두려움으로 바뀌어져 갔다. 강사님의 따뜻한 위로와 이직과 실패한 경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우리의 굳은 얼굴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사무실에서는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척하였지만, 여기에서는 퇴직 후 진로나 재취업, 노후에 대한 고민을 함께 이야기하고, 자녀들의 결혼이나 손자의 사진을 보며 웃었다. 가장 반응이 좋은 교육은 재무설계와 금융에 대한 강의였다. 노후에 닥칠 가장 큰 현실은 '돈'이다.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위험이고 걱정이다. 직장에서 근무할 때는 많든 적든 매월 급여가 들어오지만 이제 급여가 끊어지고 모아둔 재산과 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생존의 문제이다.
마지막 교육은 인생 설계서 작성 시간이었다. 앞으로 1년과 2년 그리고 중기 및 장기 계획을 생각해보고 적어보는 시간이었다. 살아갈 남은 인생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퇴직 후 바라는 모습의 그림이다. 그 그림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림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여기 모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마지막 교육을 마친 후 강의장을 나올 때 교육 주관기관에서 빵과 쿠키를 담은 작은 상자를 선물로 주었다. 리본으로 묶은 예쁜 상자에는 '다시 피는 봄'이라는 글이 선명하다. 지금이 봄이다. 봄은 생명이다. 사계절이 지났다고 끝이 아니라 다시 봄이 온다. 긴 겨울 동안 생명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봄은 어김없이 오며 생명은 다시 피어난다. 직장이라는 하나의 계절이 지나가도 삶은 지속 될 것이며, 각자가 살아온 인생에서 이전에 봄이 있었듯 퇴직 후에도 새로 시작하는 봄이 올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생명이 피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희망의 말이었다.
지상에서의 사람 일생을 3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생이 연극 무대라면 우리는 각본 없이 무대 위에서 배우로 살았다. 그 1막은 '꿈'이었다. 부모님 보호 아래 교육을 받으며 미래를 꿈꾸는 20~30년의 시간이다.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의 무대에 서 있었다. 2막은 '현역'의 시간이다. 직장이나 생업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시간이다. 큰 무대에서 울고 웃으며 온 힘을 다해 버티며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퇴직 후의 시간이 3막이다. 그 앞에 서 있다. 2막은 거의 끝나가지만 인생 무대의 연극은 계속된다. 이제 2막을 마치고 3막의 문을 열기 위해 서 있다. 내 곁에서 핀 5월의 봄처럼 3막의 무대는 봄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행복한 여정을 기원하며
31년 전 아버지가 운전하신 차를 타고 첫 출근하던 그날의 기억은 어제 쓴 일기처럼 선명하지만 이제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 내 딸 또래의 직원들이 입사하여 근무하게 된 때부터 사무실의 내 의자는 비워주어야 할 예정된 자리였다. 사무실의 책상과 의자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주인은 따로 있지 않다. 의자에 누군가는 앉아야 한다. 그 누구는 나가고 또 들어온다.
40명은 같은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만나 마지막 교육을 함께 하였지만 이제 남은 여정에서는 각자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인생의 대지 위에서, 바다 위에서 어떤 바람이 불고 몇 갈래 길이 나올지, 얼마나 거친 파도가 일렁일지 모르지만 버텨내고 행복한 여정이 되기를 서로 기원하였다. 그 기원은 나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 버스를 타고 건물을 나서며 뒤 돌아 보았다. 다시 이곳으로 와서 교육을 받을 일이 없을 것 같다. 2막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배우처럼 우리는 떠났다. 다음 무대의 3막을 기다리며 집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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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입사 동기와 함께, 퇴직 대비 교육에서 들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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