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밤거리는 싱그럽지만, 야간 운행을 하는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도로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남편이 22년이나 타고 다니던 정든 화물차를 보내고 큰맘 먹고 새 차를 산 것은 오직 하나, 안전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대출을 내고 아들에게 빌려도 부족한 금액을 장롱 속 금붙이까지 팔아가며 장만한 차였다. '누리'라는 애칭을 붙여준 새 화물차는 우리 부부에게 동아줄처럼 튼튼하고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이자, 남편의 일터를 지켜줄 든든한 울타리였다.
지난 3월 3일에 누리가 우리 집으로 왔다. 하도 낡아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던 예전 차와 달리, 누리는 더울 때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잘 나오고 추울 땐 히터도 뜨뜻하게 나온다며 남편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퇴근하고 올 때마다 누리의 좋은 점을 자랑하느라 입이 한시도 가만 있질 않았다. 누리 덕분에 노동의 강도가 낮아졌다며 연신 웃음 짓는 남편의 모습에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새 차가 주는 평온함은 딱 거기까지였다.
지난 17일 밤,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밥을 준비하기 위해 평소처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몹시 가쁘고 다급했다.
"큰일 났어! 지금 누리가 움직이질 않아."
"아니, 새 차가 왜 안 움직여? 어디 고장이라도 났나?"
"모르겠어. 갑자기 멈추더니 꼼짝도 하질 않네. 일단 끊어 봐."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경주에서 배송을 마치고 고속도로와 차도를 달리는 중에 차가 갑자기 멈추었다니.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대형 트럭들이 쌩쌩 달리는 어두운 도로 한복판에 불 꺼진 화물차가 서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뒤따라오던 차량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받기라도 한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깜깜한 밤에 혹시라도 2차 사고라도 날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손발이 차갑게 식어갔다. 켜놓은 TV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벽 세 시가 다 되어서야 남편은 10년은 늙어버린 듯 까칠해진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남편의 옷은 긴장해서 흘린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다행히 고속도로 위에서 서비스센터 직원과 통화가 닿아 지시대로 시동을 껐다 켜고,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간신히 기어왔다고 했다.
그게 지속적이지 않고 도로 위에서 시동이 멈추길 반복했다는 것이다. 어두컴컴한 길에서 비상등만 켠 채 몇백 미터를 가다가 서기를 반복하는 동안, 차 뒤로 거대한 트럭들이 전조등을 켜고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남편은 도로 위에서 온몸으로 공포를 견뎌내야 했다. 도로 위 시동 꺼짐이 수없이 반복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는 내 등 줄기에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예전에 타고 다니던 화물차는 기계식이었다. 오래 타고 다녀서 어디가 아픈지를 금방 알아채고 길 위에서도 손수 고쳐 가며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누리는 온통 컴퓨터 센서로 제어되는 전자식이다. 아직 태어난 지 80일밖에 되지 않은 뽀송뽀송한 아이다. 30년 넘게 운전대를 잡은 베테랑 운전사인 남편도 도무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길이 없어 무력감과 두려움이 더 컸다고 한다. 화를 면하고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조상님께 감사 기도를 올려야 할 판이었다.
화물차 운전자에게 차가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 수단의 문제만이 아니다. 차를 고칠 때까지 일하지 못해 생계에 타격을 입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류 배송 조로 짜인 팀원들의 달콤한 휴무마저 빼앗게 된다. 남들에게 피해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은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자마자 서둘러 서비스센터로 향했다.
대기 차량이 많아 다른 센터로 이동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안심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십여 분이 지나자 다시 전화벨이 날카롭게 울려댔다. 화면에 뜬 남편의 이름을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는 길에 차가 또 죽어버렸어. 지금 복잡한 교차로 한가운데 멈춰 서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있네. 결국 견인차 불렀어."
대낮의 복잡한 도로 위에서 사방의 시선을 받으며 멈춰 서버린 새 차를 보며, 이제 갓 80일 밖에 안 된 차가 견인차에 매달려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남편의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다행히 '센서 고장'이라는 진단을 받고 무상 수리를 마친 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팀원들의 배려 덕분에 다행히 배송 구멍은 막았지만, 결국 그날 하루 남편의 일당과 노동은 공중으로 날아간 셈이다.
화물차를 새로 산 지 이제 겨우 80일 남짓이다. 수십 년 타던 노후 차도 아닌 백일도 안 된 새 차가 위험한 도로 위에서 갑자기 멈추는 결함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운전자의 생명, 그리고 도로 위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결함이다. 비용 처리가 무상으로 되었다고 해서 이틀간 우리 부부가 겪은 피 말리는 정신적 고통과 화물 노동자가 감수해야 했던 하루의 공치는 생계 위기까지 무상이 될 수는 없다.
몸이 좀 더 편해지고 제품을 더욱 신선하게 배송하기 위해 대출까지 내며 장만한 새 차다. 이제 누리가 더는 속 썩이는 일 없이, 새 차답게 당당하고 안전하게 길 위를 뻗어가길 바란다. '누리'는 남편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우리 부부의 노후를 책임질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쇳덩이 구르는 소리 뒤에 숨은 화물 노동자들의 안전한 노동 환경은 언제쯤 찾아올까. 대형 차량의 초기 결함에 대한 제조사들의 조금 더 철저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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