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구운 빵 향기 뒤... 밀가루 분진 마시며 쓰러지는 사람들

[사회건강연구소가 마주한 현장 ③] 제빵사 직업병 실태 보고서, 근골격계·호흡기·정신질환까지 총망라

등록 2026.05.21 09:55수정 2026.06.0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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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만드는 장면 작업대위에서 빵을 만드는 과정
▲빵 만드는 장면 작업대위에서 빵을 만드는 과정 류지아

바야흐로 '빵의 시대'다. 소셜미디어에는 전국 유명 빵집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빵지순례' 인증사진이 넘쳐나고, 매일 아침 매장 앞은 갓 구워낸 고소하고 달콤한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토록 친숙한 빵 너머에 누군가의 힘겨운 노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지난 2022년 10월 한 제빵 공장에서 발생한 20대 노동자의 기계 끼임 사망 사고, 그리고 2025년 7월 유명 베이글 가게에서 발생한 과로사 의심 사건은 달콤한 빵 뒤에 가려진 제빵업계의 잔혹한 노동 환경을 세상에 일부 드러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빵'에 비해, 정작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 환경이나 건강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사회건강연구소는 연구보고서 '빵 만드는 사람들의 건강'(류지아·정진주 외 2023)를 통해 실제 제빵사의 산재 판정 자료와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이들의 노동과 건강 실태를 짚어보았다.



제빵사의 직업병, 근골격계 질환부터 정신 질환까지

사회건강연구소는 제빵 노동자가 직면한 건강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2012년부터 2022년 6월까지 산재를 심사하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심의한 사건들을 검토했다.

우선 업종 분류를 통해 '빵 및 과자류 제조업' 사건으로 일차 선별한 뒤, 연구진이 개별 판정서를 일일이 읽어 나가며 재해자가 실제 제빵 생산 업무를 수행했는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최종 확인된 제빵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 사례는 총 20건이었다.


산재로 인정된 제빵사의 질병 중 가장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 것은 근골격계 질환(13건, 65%)이었다. 제빵사들은 20kg이 넘는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수시로 나르고, 온종일 서서 반복적으로 반죽을 치대며 모양을 잡는다.

특히 작업대의 높이가 맞지 않으면 일하는 내내 허리를 과도하게 굽히거나 어깨를 들어 올린 채 작업하기도 한다. 이처럼 일터에서의 중량물 취급, 부적절한 자세, 반복 작업은 제빵사의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주된 위험 요인이다.


근골격계 질환 외에 인정된 질병 사례들도 확인되었다. 첫 번째로, 뇌심혈관계 질환은 장시간 근로와 부족한 휴일이 핵심 원인이었다. 산재가 인정된 이들은 모두 1주 평균 근로 시간이 65시간을 넘어서는 과로 상태로 확인되었다.

두 번째는 호흡기계 질환인 천식이다. '제빵사 천식(Baker's Asthma)'이라는 고유한 명칭이 존재할 정도로, 곡물 분진과 효모 노출로 인한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은 제빵사의 대표적인 직업병이다.

세 번째로는 접촉성 피부염이다. 위생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수행하는 잦은 손 씻기와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라텍스 장갑의 지속적인 착용이 피부 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인정되었다. 그밖에 정신 질환 승인 사례도 확인되었다.

작업장 내에서 발생한 사고를 회사 측이 인정하지 않아 트라우마가 악화된 경우를 비롯해 상사 및 동료와의 관계 갈등, 회사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 등으로 발생한 정신 질환 또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었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려면

제빵사가 소속된 사업장의 형태가 대기업 공장이든,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든, 소규모 동네 빵집이든 일터에서 비롯된 건강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제빵업계는 여전히 산업안전보건제도에 대한 인지 부족, 제도 적용의 한계 등의 이유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에 사회건강연구소는 제빵사의 사고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몇 가지 대책을 제안한다.

첫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설비 안전 조치는 즉각 이뤄져야 한다. 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기계 끼임 사고를 막기 위해 회전 설비에는 반드시 안전 덮개를 설치해야 하며, 위급 상황 시 작업자가 즉각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비상정지 버튼을 배치해야 한다.

바닥 물청소나 기름때로 인한 넘어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작업장 바닥을 상시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고, 이동 중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적재물을 정리해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는 등의 현장 관리는 필수적이다.

둘째, '업무 관련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개선책 또한 필요하다. 제빵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려면 작업자의 체형과 노동 특성을 고려해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맞춤형 작업대를 마련해야 한다.

중량물을 취급할 시에는 허리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보조 도구를 사용하거나 2인 1조로 작업하여야 한다. 또한 천식 등 호흡기 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분진이 발생하는 공정은 공간적으로 격리하거나 적절한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여 분진에의 노출을 차단해야 한다.

셋째, 뇌심혈관계 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과로를 줄여야 한다. 대기업 공장의 경우 노동자의 생체 리듬을 파괴하는 주야 맞교대 형태의 교대제를 개선해야 하며, 프랜차이즈나 개인 매장의 경우 당일 생산 시간과 업무량을 고려한 적정 인력 배치를 통해 연장근로를 줄이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달콤한 빵 너머를 보아야 할 때

생산과 소비 사이의 아득한 시·공간적 거리 탓에, 매대 위에 예쁘게 놓인 케이크나 갓 구워져 나온 베이글을 마주하며 이것을 만들어 낸 사람의 수고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새벽을 통째로 반납하고, 뿌연 밀가루 분진 속에서 숨을 참아가며 만든 빵이라면 우리에게도 그 빵이 완전히 달콤한 위로가 되기는 어렵다.

이제는 제빵사를 단순히 '빵을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함을 넘어 이들 역시 일터에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보편적 노동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노동이 안전하고 건강해질 때, 비로소 우리 테이블 위의 빵도 오롯이 달콤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사회건강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류지아님은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입니다.
#산업재해시민 #사회건강연구소 #제빵사 #노동과건강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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