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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이 드러낸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주의의 기억을 희화화하는 사회...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등록 2026.05.21 11:53수정 2026.05.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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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이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국가 폭력의 현장이자,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악명 높은 거짓말이 만들어진 장소.
▲박종철이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국가 폭력의 현장이자,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악명 높은 거짓말이 만들어진 장소. 박종철기념사업회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은 경찰 고문 끝에 숨졌다. 그리고 권력은 말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거짓말 가운데 하나다. 국가폭력이 인간의 죽음을 어떻게 은폐하는지를 상징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는 음료잔 이벤트를 알리는 SNS 게시물에 '탱크데이'라는 명칭과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게시물을 삭제했다. 많은 시민들이 그 문장을 즉각 알아봤다. 누군가는 과민반응이라고 말했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이벤트 카피로 읽히지 않았다.

1980년 5월 광주의 장갑차와 군홧발,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치사 사건이 겹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이 의도였는가 아니었는가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지금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이다.

논란 이후 더 충격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스타벅스 이제 좌파프리 청결지역 되겠노ㅋㅋㅋ 고맙다", "내일 스벅에 들렀다가 출근해야징" 같은 반응들이 올라왔다. 민주화운동의 상징들을 조롱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조롱 자체를 정치적 놀이와 진영 인증의 수단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스타벅스 불매운동 민주주의 역사를 혐오와 조롱의 대상을 삼은 마케팅을 반대하는 불매운동 포스터
▲스타벅스 불매운동 민주주의 역사를 혐오와 조롱의 대상을 삼은 마케팅을 반대하는 불매운동 포스터 강석령

특히 2024년 12·3 내란 사태 이후 이 같은 현상은 더 두드러지고 있다. 헌정질서를 위협한 사건으로 기억하는 사람들과 "애국"이나 "계몽령"이란 언어로 미화하는 사람들은 이제 완전히 다른 세계관 안에서 살고 있다. 광주, 박종철, 그리고 2024년 겨울의 경험까지 국가가 폭력으로 시민 위에 군림하려 했던 그 역사적 장면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다.

민주주의는 흔히 선거와 헌법 같은 제도로 설명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감각이다. 인간의 존엄이 훼손될 때 불편함을 느끼는 감각,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려 할 때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농담거리로 소비하지 않는 감각 말이다.

한국 사회는 왜 민주주의의 기억을 이렇게 소비하게 됐나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이미 완성된 체제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한번 얻어내면 자동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배우고 기억하고 갱신하지 않으면 조금씩 무뎌진다. 지금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너무 자연스러운 공기처럼 존재한다. 군홧발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자유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게 만들기도 한다.

더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슬픔도 콘텐츠가 되고, 분노도 콘텐츠가 되며, 역사마저 밈과 짤의 형태로 소비된다. 알고리즘은 긴 성찰보다 빠른 자극을 선호하고, 혐오와 조롱은 순식간에 집단 놀이가 된다.


그래서 이번 일을 단순히 '기업의 마케팅 실수' 정도로만 끝낼 수는 없다. 불매운동과 형사 고발 역시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 몇몇 담당자를 처벌하고 지나간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기억을 희화화하는 문화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박종철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을 함께 해온 사람으로서, 이번 논란이 낯설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왜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의 기억을 이렇게 가볍게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바꾸게 되었는지를 묻는 일이다. 왜 광주와 박종철, 그리고 2024년 겨울의 경험들까지도 혐오 정치의 밈으로 전락하고 있는가를 직시하는 일이다.

1980년 광주의 공수부대 공수부대가 시민을 곤봉으로 진압하고 있다.
▲1980년 광주의 공수부대 공수부대가 시민을 곤봉으로 진압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기억이 약해진 사회에서는 반드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들이 생겨난다. 광주를 왜곡하는 정치, 독재를 효율로 미화하는 언어, 혐오와 냉소를 놀이처럼 소비하는 문화가 그렇다. 그것들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시민적 감수성이 약해진 틈을 타고 스며든다.

민주주의는 결국 기억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기억은 박물관 안에 보존된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현재의 언어로 계속 번역되어야 한다. 왜 1980년 광주가 오늘의 삶과 연결되는지, 왜 1987년의 고문치사 사건이 지금의 민주주의와 이어지는지, 왜 2024년 겨울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번역은 강의실 안에서도, 골목 어딘가에서도,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가는 자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탄핵을 위해 모인 시민들 12.3 계엄을 일으킨 윤석렬의 탄핵을 위해 광화문 앞에 모여서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탄핵을 위해 모인 시민들 12.3 계엄을 일으킨 윤석렬의 탄핵을 위해 광화문 앞에 모여서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강석령

그렇지 못할 때 역사는 점점 낯선 과거가 되고, 낯선 과거는 쉽게 희화화된다.

1987년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거창한 이념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물두 살 청년의 죽음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감각 위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번 논란은 불편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얼마나 살아 있는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이 희미해질 때,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가.

그 물음이 불편하다면,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를 다시 배워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강석령씨는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입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최근 스타벅스 논란을 계기로, 민주주의의 기억과 역사 감수성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고 왜곡되고 있는지 고민해보기 위해 썼습니다.
#스타벅스논란 #박종철 #민주주의 #역사의기억 #시대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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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역사와 문학, 장소의 기억을 연결하며 ‘인문 역사 기행’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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