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시집 <오래된 아침> 표지
안준철
원래는 박 선생이 맡아온 '노인 시낭송' 반 수업인데 하루 특강 형태로 나를 초청한 것이다. 졸시집 <오래된 아침>을 구입해서 읽어보라고 드렸는데 시집을 읽고 많은 질문들이 쏟아지자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첫 질문은 연두에 관한 것이었다. 연두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연두 색깔에 대한 설명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시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머니도 날 낳으시고/ 며칠 뒤라도/ 몸이 우선해져서는/ 마당에 나오셨다가/ 연두를 보셨겠구나// 나도 어머니에겐 연두였겠지만/ 아니, 내가 더 연두였겠지만/ 먼 산의 연두보다도/ 더 연두였겠지만// 아, 당신 품 안의 연두와/ 봄 산 먼발치의 연두를/ 번갈아 바라보셨겠구나
- 졸시 <연두> 부분
시라는 것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같았달까? 그 순박한 모습이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귀하고 진지하게도 느껴졌는데 나도 모처럼 오랜만에 선생으로 돌아가 신이 나서 이렇게 설명을 해드렸다.
"어린이들을 새싹이라고도 하잖아요? 새싹에 비유해서 표현한 거지요. 시에서는 이런 상징이나 비유를 써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기서 연두도 새싹과 같은 거죠. 그럼 당신 품 안의 연두가 뭐겠어요? 품 안에는 아기가 있겠죠. 봄의 연두처럼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가요. 제 생일이 음력 2월 28일인데 양력으로는 사월 초순 경이거든요. 산과 들에 온통 연두가..."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저쪽에서 또 한 분이 불쑥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저 첫, 분홍이란 시에서 분홍은 암에 걸려 곧 죽게 되었지만 눈 앞에 아들과 며느리가 있어서 얼굴에 화색이 돈다는 말인가요?"
내가 암 투병 중에 임종을 앞두고 쓴 시 같다고 박 선생님이 말을 해주었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그건 아니라고 먼저 말해 준 뒤 이렇게 설명을 해주었다.
"유월 초중순쯤 연꽃이 피는데요. 그 무렵 거의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덕진연못에 가곤 했어요. 그러다가 첫 연꽃을 보게 되면 그 분홍에 얼마나 가슴이 뛰겠어요. 그때의 감동을 시로 쓴 거예요. 그런데 첫 연꽃의 분홍이 참 예쁘다. 이런 식으로는 쓸 수는 없잖아요. 뭔가 새로운 표현으로 쓰고 싶은데 그때 문득 임종 때를 떠올리게 된 거예요. 저는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어요. 제 임종을 지켜보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마지막으로 윙크를 해주고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고요."
인간은 어차피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고 우리 세대가 죽어야 아들이나 손주가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삶의 유한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삶이 더 소중해지고 하루하루가 더 즐거울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임종 때 제 볼에서 분홍꽃이 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중요한 것은 첫 연꽃을 본 감동이 이렇게 저의 임종까지 끌고 와서 표현하고 싶을 만큼 컸다는 데 있고요."
설명이 조금 길어졌지만 어르신들의 눈망울은 갈수록 초롱초롱해졌다. 뒤에도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나는 성심성의껏 설명을 해드렸다. 시에 대한 이해가 조금 깊어졌다 싶을 때 짧은 시 한 편을 함께 읽었다.
당신이 와주어서
나의 음습함이 보석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서성거림으로
나도 거처를 갖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졸시 <비와 거미줄> 전문
시를 함께 읽고 난 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비 오는 날 산책하다가 쓴 시인데 시 제목이 비와 거미줄이지요? 첫 연의 당신은 누구일까요?"
(....)
"비 아니면 거미줄이겠지요?"
"아, 비네요. 비."
"맞아요. 그럼 두 번째 연의 당신은?"
"거미줄 요."
"맞아요. 저는 아내를 스물두 살에 만났어요. 아내는 스물한 살이었고요. 아내는 저에게 비와 같은 존재였지요. 제가 방황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아내가 와주어서 제 음습함이 보석이 되었지요. 그런데 두 번째 연을 보면 비도 거미줄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당신의 서성거림으로 나도 거처를 갖게 되었다고요. 저와 아내를 예로 들었지만 우리 모두 이렇게 서로 상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바로 그때였다. 맨 앞에 앉아 있던 여성 어르신 한 분이 연필로 밑줄을 그어놓은 '시인의 말'의 한 대목을 나에게 보여주며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연두의 연두의 연두가 뭐예요?"
오래전, 어머니가 연두인 나를 바라보셨듯이
연두의 연두의 연두인 첫 손주 유담이를
할머니가 된 아내가 바라보고 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다시 연두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하던 한 아이를 떠올렸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또 오래전 선생으로 돌아가 질문하신 어르신과 청중들을 향해서 이렇게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여러분이나 저나 지금은 늙은 나이가 되었지만 한때는 갓난아이였겠지요. 그 연두가 연두를 낳고 또 다음 연두가 연두를 낳아 저도 작년 12월 2일에 연두의 연두의 연두인 첫 손주 유담이를 안아보게 되었답니다. 이제 이해가 좀 되시나요?"
나는 시를 쉽게 쓰는 편이다. 시는 산문과 달라서 어려워야 맛이 있기도 하지만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는 시를 좀 더 쉽게 쓰리라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 연두의 연두의연두인 첫 손주 유담이
안준철
오래된 아침
안준철 (지은이),
푸른사상,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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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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