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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감탄만 나온다, 신라 석공의 놀라운 상상력

[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경주 원성왕릉 12지신 인(寅)신상과 사자상

등록 2026.05.25 10:15수정 2026.05.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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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 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기자말]

경주는 신라 천년고도의 도시이자 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그야말로 도시 자체가 야외 박물관이다. 서양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찾거나 시대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문화의 본향인 아테네나 로마를 찾아 실마리를 구한다고 한다. 그렇듯이 우리도 문화의 수도이자 시대 영감의 젖줄이 바로 이곳 경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1998년부터 경주 세계문화엑스포를 개최하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호랑이 문화도 마찬가지다. 남한에서 야생 한국호랑이의 마지막 공식 확인 기록이 1921년 경주 대덕산이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격적인 호랑이 탐방에 앞서 '삼국사기' 신라의 기록을 살펴보니 호랑이 관련 기사가 무려 열다섯 건이 넘었다. 삼국시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기도 하고 내용 또한 다채롭다는 점이 주목된다. 물론 대부분은 불길한 징조를 알리는 상서로운 기록들이지만 실제로 맹수의 출몰과 피해 사건도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현실적인 문제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특이한 경우는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 기록이었다.


바로 '삼국유사' 김현감호(金現感虎) 설화다. 내용은 젊은 화랑 김현이 탑돌이를 하던 중 처녀로 변신한 암호랑이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오라비들을 둔 호랑이 집안의 딸로 인간을 사랑한 호랑이 처녀는 이 오라비들의 죄업을 씻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죽인 김현이 공을 세워 출세하도록 스스로 김현의 칼에 목숨을 내어준다. 그야말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생인 것이다. 슬프고도 신기한 호랑이 설화가 전해오는 도시, 호랑이 유물들이 풍부한 호랑이 나라를 찾아 지난 5월 10일 경주를 찾았다.

김현의 감호설화 출발점

호원사지 발굴지 황성공원 안에 있는 호원사지, 호랑이의 소원을 기린 절로 화랑 김현과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의 사랑이야기가 전해 온다.
▲호원사지 발굴지 황성공원 안에 있는 호원사지, 호랑이의 소원을 기린 절로 화랑 김현과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의 사랑이야기가 전해 온다. 정재학

경주 도착 후 처음 찾은 곳은 바로 황성공원에 있는 호원사지였다. 김현의 감호설화의 출발점이자 호랑이의 소원을 기린 절. 이 설화야말로 신라인들이 호랑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언이기도 하다.

호랑이는 단순히 두려운 맹수가 아니라 인간과 교감하고 희생을 선택할 수 있는 영혼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잘 조성된 황성공원 안에서 안내판 하나 변변치 않은 사지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발굴했는지 추정된 장소는 정비된 모습이었지만 이렇다 할 안내판이 없어 답답했다.

김유신장군묘 전경 송화산 기슭에 있는 김유신장군묘로 봉분 주위로 웅장한 호석 장식으로 유명하다.
▲김유신장군묘 전경 송화산 기슭에 있는 김유신장군묘로 봉분 주위로 웅장한 호석 장식으로 유명하다. 정재학
김유신장군묘 인신상 호랑이, 인신상으로 평복을 걸치고 손에 곤봉 같은 무기를 쥐고 있다.
▲김유신장군묘 인신상 호랑이, 인신상으로 평복을 걸치고 손에 곤봉 같은 무기를 쥐고 있다. 정재학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송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김유신 장군묘였다. 삼한일통으로 신라 태대각간이 되었고 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충장렬흥무대왕으로 추존된 인물. 그에 걸맞게 잘 조성된 봉분 주위로 웅장한 호석(護石) 장식을 두르고 있었다. 능 주위를 감싸는 열두 개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은 짐승의 머리에 무기를 든 형식이나 평복을 걸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중 호랑이, 인신상(寅神)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비록 표면은 풍화로 많이 상했지만 힘차게 곤두선 귀와 부리부리한 눈매가 살아있었다. 그리고 손에 쥔 무기는 무엇일까. 위는 둥근 곤봉처럼 생겼고 밑에는 털 뭉치 같은 장식이 있는데, 어떻게 사용한 걸까.


다음 탐방 여정을 위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을 찾은 목적은 호랑이 유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전시관 구석구석을 누비며 호랑이를 찾았다. 호랑이 모양 허리띠 장식인 호형대구, 무덤 속에 매장되었던 호랑이 토우나 십이지신 호랑이상 등.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다 어디로 간 걸까. 수장고에 있나, 다른 박물관으로 이관된 걸까.

대신 사자 유물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모서리를 장식하던 돌기둥에도, 지붕 기와 막새 장식에도, 불교 사원의 석수 장식에도 모두 수준 높은 사자 문양이 잘 조각돼 있다. 호랑이는 다 어디 가고 왜 사자만 있는 걸까.


원성왕릉 전경 일명 괘릉이라고 불리는 원성왕릉으로 서역인 역사와 사자상, 호석으로 유명하다.
▲원성왕릉 전경 일명 괘릉이라고 불리는 원성왕릉으로 서역인 역사와 사자상, 호석으로 유명하다. 정재학
원성왕릉 사자상 능 앞 참도 양쪽으로 도열한 사자상으로 표정이 해학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원성왕릉 사자상 능 앞 참도 양쪽으로 도열한 사자상으로 표정이 해학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정재학
원성왕릉 사자상 꼬리 사자상 꼬리의 표현이 다양하다.
▲원성왕릉 사자상 꼬리 사자상 꼬리의 표현이 다양하다. 정재학

그래서 찾은 곳이 일명 괘릉(掛陵)이라고 불리는 원성왕릉이었다. 이는 한 자리에서 이 둘을 극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능 앞 참도 양쪽으로 도열한 사자상(獅子像)을 볼 수 있었다. 한반도에 살지도 않았고 한 번 본 적도 없었을 텐데 신라 석공은 어떻게 사자를 이렇게 생동감 있게 빚어낸 걸까. 사자의 표정은 참 미묘하다.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어딘지 해학적인 것 같기도 하다.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냈는데도, 그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 있는 게 아닌가.

분명 위협적이어야 할 표정인데 보는 이에게 작은 미소를 번지게 하는 건 뭘까. 그런데 백미는 따로 있었다. 바로 꼬리다. 사자 꼬리의 향연이 볼만했다. 탐스러운 꼬리 술이 어떤 것은 오른쪽으로, 또 어떤 것은 왼쪽으로 치고, 또 어떤 것은 양쪽으로 갈라져 몰아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가히 꼬리치기의 교본이요 꼬리의 유혹이 장난 아니었다.

원성왕릉 인신상 갑옷을 입고 손에 칼 잡고 있는 모습으로 호랑이를 조각했다.
▲원성왕릉 인신상 갑옷을 입고 손에 칼 잡고 있는 모습으로 호랑이를 조각했다. 정재학
원성왕릉 인신상 얼굴 표정 듬직한 얼굴에 포효하는 표정으로 상당히 도식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다.
▲원성왕릉 인신상 얼굴 표정 듬직한 얼굴에 포효하는 표정으로 상당히 도식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다. 정재학

그렇다면 이 왕릉 호석에 조각된 십이지신 호랑이상은 또 어떤가. 듬직한 얼굴에 입 모양은 영락없는 포효하는 표정이었다. 여느 왕릉처럼 갑옷을 입고 손에는 칼 잡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사자 조각에 비해 상당히 도식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었다.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이니 더 그럴 것도 같았다.

장항리 옛절터에서 만난 사자상

장항리사지 전경 동해구로 가는 길에 두 물길이 마주하는 위태로운 둔덕 위에 조성된 사찰이다.
▲장항리사지 전경 동해구로 가는 길에 두 물길이 마주하는 위태로운 둔덕 위에 조성된 사찰이다. 정재학
장항리사지 사자상 장항리사지 불상 대좌에 새겨진 사자상으로 표정과 몸짓이 인상적이다.
▲장항리사지 사자상 장항리사지 불상 대좌에 새겨진 사자상으로 표정과 몸짓이 인상적이다. 정재학
장항리사지 사자상 세부표정 사자후를 날리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장항리사지 사자상 세부표정 사자후를 날리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정재학

마지막 여정은 경주에서 동해구로 가는 길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장항리 옛절터였다. 두 물길이 마주하는 위태로운 둔덕 위에 조성된 사찰. 거의 수직에 가까울 정도의 급경사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절터 불상 대좌에 새겨진 사자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아마 이 사자를 한번 본다면 계속 찾아 올 수밖에 없는 매력에 빠질 것이다.

자, 저 사자상을 보시라. 앉았다가 금방이라도 일어설 기세다. 한 앞발을 앞으로 쭉 뻗고 두 주먹을 움켜쥔 모습이 아주 파이팅이 넘치지 않는가. 또 입 모양은 어떤가. 혀를 내밀고 핏대가 설 정도로 사자후를 날리는데 귀청이 떠나갈 정도로 강렬하지 않은가. 이렇게 훌륭한 조각상을 새기다니 신라 석공의 상상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호랑이 나라인 줄 알고 호랑이를 찾아 떠나온 여정, 하지만 뜻밖에 사자 문화를 더 접하게 되는 이 어색함. 신라에 불교가 뿌리내리기 전, 호랑이는 이 땅의 절대적인 영수였다. 그런데 불교라는 새로운 우주관이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오면서 사자를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신라는 호랑이를 버리지 않고 사자와의 공존을 시도했다. 그것은 문화의 충돌이자 융합의 이야기다. 사자는 실물 없이 이미지만으로 왔기에,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아는 가장 강한 짐승인 호랑이의 기억으로 사자를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신라의 사자 조각에는 어딘가 호랑이의 기운이 깃들어 있어 보인다.

결국 호랑이와 사자의 논쟁은 단순한 동물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문화가 토착성과 외래 문명 사이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융합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의 역사다. 호랑이는 산과 인간 사이를 오가던 한반도의 원초적 존재였고, 사자는 불교와 함께 들어온 세계 문명의 상징이었다.

신라는 그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함께 세웠다. 왕릉의 둘레에는 호랑이 인신을 두고, 능 앞에는 사자상을 세웠다. 어쩌면 신라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살아남는 문화는 서로를 밀어내는 문화가 아니라, 서로를 품어내는 문화라는 사실을. 천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경주의 돌조각들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경주 #원성왕릉 #호원사지 #김유신장군묘 #장항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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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크리에이터입니다. 김구 선생 탄생150년을 맞아 문화강국 프로젝트 일환, 2036년 전주하계올림픽 유치 및 국립한국호랑이박물관 건립 기원을 위해 기획한 연재로 "거룩한 장도-한국호랑이를 찾아서" 매주 금요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한국호랑이를 찾아 탐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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