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리사지 사자상 세부표정 사자후를 날리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정재학
마지막 여정은 경주에서 동해구로 가는 길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장항리 옛절터였다. 두 물길이 마주하는 위태로운 둔덕 위에 조성된 사찰. 거의 수직에 가까울 정도의 급경사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절터 불상 대좌에 새겨진 사자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아마 이 사자를 한번 본다면 계속 찾아 올 수밖에 없는 매력에 빠질 것이다.
자, 저 사자상을 보시라. 앉았다가 금방이라도 일어설 기세다. 한 앞발을 앞으로 쭉 뻗고 두 주먹을 움켜쥔 모습이 아주 파이팅이 넘치지 않는가. 또 입 모양은 어떤가. 혀를 내밀고 핏대가 설 정도로 사자후를 날리는데 귀청이 떠나갈 정도로 강렬하지 않은가. 이렇게 훌륭한 조각상을 새기다니 신라 석공의 상상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호랑이 나라인 줄 알고 호랑이를 찾아 떠나온 여정, 하지만 뜻밖에 사자 문화를 더 접하게 되는 이 어색함. 신라에 불교가 뿌리내리기 전, 호랑이는 이 땅의 절대적인 영수였다. 그런데 불교라는 새로운 우주관이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오면서 사자를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신라는 호랑이를 버리지 않고 사자와의 공존을 시도했다. 그것은 문화의 충돌이자 융합의 이야기다. 사자는 실물 없이 이미지만으로 왔기에,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아는 가장 강한 짐승인 호랑이의 기억으로 사자를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신라의 사자 조각에는 어딘가 호랑이의 기운이 깃들어 있어 보인다.
결국 호랑이와 사자의 논쟁은 단순한 동물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문화가 토착성과 외래 문명 사이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융합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의 역사다. 호랑이는 산과 인간 사이를 오가던 한반도의 원초적 존재였고, 사자는 불교와 함께 들어온 세계 문명의 상징이었다.
신라는 그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함께 세웠다. 왕릉의 둘레에는 호랑이 인신을 두고, 능 앞에는 사자상을 세웠다. 어쩌면 신라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살아남는 문화는 서로를 밀어내는 문화가 아니라, 서로를 품어내는 문화라는 사실을. 천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경주의 돌조각들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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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크리에이터입니다. 김구 선생 탄생150년을 맞아 문화강국 프로젝트 일환, 2036년 전주하계올림픽 유치 및 국립한국호랑이박물관 건립 기원을 위해 기획한 연재로 "거룩한 장도-한국호랑이를 찾아서" 매주 금요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한국호랑이를 찾아 탐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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