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꽃잎을 열기도 전에 멈춰버린 어느 청춘을 닮은 목련 이제는 아픔 없는 그곳에서 두 청춘이 활짝 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황윤옥
결혼 5년 차인 부부에게는 아이가 둘 있었다. 남편은 육아 휴직을 내고 다섯 살 첫째와 한 살 둘째를 홀로 돌보며 아내의 병간호까지 감당하고 있었다. 낮에는 홀로 아이들을 돌보고, 밤에 아이들을 재운 뒤에야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홈캠으로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확인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남편의 고군분투는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보기 힘들 정도였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겨우 첫 끼를 먹으며 홀로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오은영 박사와 MC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도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들 부부는 온라인에서 '배그부부'로 큰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게임을 좋아하는 시한부 아내를 위해 남편이 '아내에게 일부러 킬 당해줄 유저'들을 모집했고, 수많은 게이머가 이 감동적인 이벤트에 동참해 뉴스에까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게임 이벤트 후 아내는 "살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며 연명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치료를 이어나갔다.
결혼 5년 만에, 둘째를 출산하고 겨우 7개월 만에 찾아온 비극이었다.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 대장 80%가 괴사하고 복막 전체에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고 했다. TV를 보면서도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화면 속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첫째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언제 와?"
그 한마디에 내 마음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던 아픈 기억이 밀려와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아마 2005년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때 내게는 한 살 어린 손위 올케가 있었다. 배우 채시라를 닮아 꽃처럼 어여쁜 사람이었다. 키가 자그마하고 체형도 말랐지만, 생활력이 무척 강했다. 그 시절 우리 친정 6남매 중 4명이 모두 학원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올케는 아파트 바로 옆집에 살면서 바쁜 형제들을 대신해 친정 부모님을 항상 지극정성으로 챙겨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올케가 음식을 잘 먹지 못했고, 그렇지 않아도 마른 몸이 자꾸만 여위어 갔다.
"언니야, 병원에 가 봐. 병은 깊어지면 못 고치니까 빨리 가봐야 해."
몇 번을 권유한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는 위암 진단 소견을 냈다. 급히 서울아산병원으로 진료 일정을 잡았다. 나와 온 가족은 위암은 수술만 잘하면 나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올케도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행운은 우리를 비켜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수술만 잘되면 나을 거라던 희망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가 심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때 조카가 둘 있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가 겨우 네 살이었다. 인사도 없이,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모자의 작별이 시작되었다.
오빠는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언니를 살리기 위해 공기 좋은 요양병원으로 처소를 옮겼다. 좋다는 음식과 약은 다 구해서 먹였다. 하지만 이미 망가진 장기가 다시 살아날 리 만무했다. 온 가족이 기적을 바라고 간절히 빌고 또 빌었지만, 하늘나라에서 일찍 데려가려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다행히 내가 조카들 가까이에 살고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살뜰히 챙겨주었지만, 그것이 엄마의 빈자리를 온전히 채워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올케는 1년간 힘겨운 병마와 싸우다가, 첫째 조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끝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서른아홉, 참으로 꽃다운 나이였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온 가족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남겨진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야 할 책임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야 했다.
그때 다섯 살이던 둘째 조카는 밤마다 항상 내 발을 꼭 잡고서야 잠이 들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엄마가 떠난 것을 아는지 이상하게 보채지를 않아 내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다행히 지금은 조카들도 모두 반듯한 성인으로 자라나 제 몫을 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배그부부'를 보며 병이란 참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TV 속 아내도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찾아온 복통으로 병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겨우 서른을 조금 넘긴 푸른 청춘이다. 그런 그가 방송 말미 114일간의 투병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자막과 영상이 흘러나왔다.
떠나는 그 길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남편과 생때같은 두 자식을 두고 돌아서는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제는 홀로 남겨진 가족들이 부디 잘 살아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디선가 팔랑팔랑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어 슬픔에 잠긴 그들의 가슴에 따스한 날갯짓을 전해주면 좋겠다. 엄마 없이 자랄 두 아이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고생했을 남편분도 절대로 자기 탓을 하지 말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씩씩하게 삶을 살아내기를 마음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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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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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비켜간 자리, '배그부부' 보며 떠올린 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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