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은 진리이다. 나의 허점과 단점들은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그도 아닌, 사라지지 않는 상처 혹은 시련, 콤플렉스는 나를 더 강화시켰다. 그래서 일까? 니체의 말을 들으면 가슴 한켠에서 시원함을 느낀다. 그런데 여기, 삶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니 목숨이 경시되는 처절한 환경속에서 니체의 말을 인용한 사람이 있다. 바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다. 그가 있던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은 체험 그 자체였으니 이 깊이를 어찌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수용소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고 인간을 번호로 부르며 빵 한 조각에 동료를 배신하는 상황에서 짐승처럼 변해가는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는 곳이다. 그런 수용소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로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고 가혹한 운명에 굴복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스토아 철학의 대가 에픽테토스가 말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나의 판단이다'라는 선언의 위대한 실천이었다.
나치의 폭력, 굶주림, 영하의 추위는 프랭클 박사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영역'이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외적 조건에 연연할 때 인간이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프랭클 박사는 비참한 환경을 원망하는 대신, '이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키겠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인 내면의 태도에 집중했다.
그에게 고통은 단순히 피해야 할 재앙이 아니었다. 그는 고통마저도 내 삶의 지탱하는 하나의 의미이자, 영혼을 단련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사랑하고 수용하라는 스토아적 가치관인 아모르 파티(Amor Fati)와 연결된다. 고통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를 통해 삶의 가치를 증명해 낸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수용소'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우슈비츠처럼 물리적인 철조망에 갇힌 것은 아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타인의 차가운 시선,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불행이라는 정신적 감옥이 우리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무기력함에 대해 신경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가장 뜨겁고도 단단한 답을 건넨다.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인 날씨나 타인의 시선, 불행은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인 '내 마음'이나 '나의 선택'에만 집중하라는 실용적인 삶의 태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그의 기록은 고대 로마의 지혜였던 '스토아 철학(Stoicism)'과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스토아 철학(Stoicism)은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로마 제국 시대에 크게 번성했던 철학이다. 수백 수천 번의 변화를 거쳐 21세기의 문명과 과학 안에서 살고 있는 현재에도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의 마지막 자유였던 '자신의 태도'는 앞으로도 인간의 마지막 무기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빅터 프랭클의 말을 인용해 본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한국어판 발매 20주년 기념판
빅터 프랭클 (지은이), 이시형 (옮긴이),
청아출판사,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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