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심은 거예요?" 박람회장 뒤흔든 '모아심기'의 매력

꽃 끊기고 새잎 돋기까지... 박람회 앞두고 날 애태웠던 행잉바스켓

등록 2026.05.22 11:52수정 2026.05.2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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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는 기획에서 시작된다. 모아심기 기획은 어떤 식물을 골라 어떻게 배치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일이다. 기획이 끝나면 나머지는 손이 따라 가는대로 하면 된다. 일도 아니다. 식재 후 식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완성되기까지 한 달쯤 걸린다. 그 한 달은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 완성하는 시간이다. 모아심기는 그래서 인간과 식물의 공동작품이다.

작품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모아심기의 약점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한 달 동안 시공을 넘나드는 화분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전주월드컵광장과 덕진공원 일원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전주정원산업박람회'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한련 행잉바스켓이었다. 한동안 그 녀석이 나를 애태웠다. 식재 열흘 후 교과서대로 하이포넥스 1000배액을 줬더니 갑자기 잎이 노래지더니 꽃이 뚝 끊겨버렸다. 박람회를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모아심기는 인간과 식물의 공동작품이다. 한달동안 시공을 넘나드는 화분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 모아심기는 인간과 식물의 공동작품이다. 한달동안 시공을 넘나드는 화분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유신준

비상이 걸렸다. 다른 식물로 바꿔 심을까. 하지만 행잉바스켓을 중간에 뒤집는 건 나머지 식물들에도 스트레스라 거의 극약처방에 가깝다.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사흘 후, 새잎이 돋기 시작했다. 한련은 생육이 빠르다. 출발 직전까지 원래 모습을 되찾았고, 박람회장에서는 화려한 색감으로 단연 눈길을 끌었다. 박람회 내내 주연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한때 속을 썩이더니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나는 지금도 한련이 내 근심을 알아채고 이심전심으로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이번 박람회엔 모아심기 화분 5종, 바구니 2종, 액자플랜터 5종, 행잉바스켓 4종 등 20여 점을 들고 갔다. 행잉바스켓은 상하좌우로 식물이 자라 공중에 띄운 채 포장해야 했다. 크기에 맞는 플라스틱 박스를 주문하고, 뒷판에 십자형 목재 프레임을 고정한 특수 포장을 고안했다. 그 모습 그대로 부스로 옮기는 일이, 한 달 동안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더 힘들었다.

전시 부스에 트렐리스(격자 울타리)를 세우고 작품들을 배치하자 '5×5'미터 공간이 좁아 보일 만큼 꽉 찼다. 뿌듯했다. 이번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욕심껏 싸 온 보람이 있었다.

준비 과정에서 얻은 소득

준비 과정에서 얻은 소득도 많다. 빈티지 스타일 소품을 직접 개발한 것이 그중 하나다. 공예 전문작가에게 배운 기법을 응용해 화분 받침과 액자플랜터를 손수 만들었다. 식물이 얼굴이라면 화분은 의복이다. 주변소품 분위기도 아름다움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체험 교육은 하루 세 차례, 닷새 동안 총 열다섯 번 진행됐다. 준비한 강의 내용은 왜 모아심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첫날, 색상·명도·채도를 설명하는데 참석자들 얼굴색이 변하는 걸 봤다. 이건 아니구나. 다른 부스를 둘러봤더니 내 강의는 거의 학술회의 수준이었다. 30분동안 흥미진진하게 경청하는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박람회 체험교육들은 간단한 유희성 이벤트가 주류를 이룬다. 놀러나온 사람들에게 심층강의라니... 과감히 들어내고 조정했다.

대신 취향 이야기를 했다. 커피가 들어온 게 얼마나 됐나. 지금은 한 집 건너 카페가 있고 전 국민이 커피 매니아다. 취향은 변하는 것이고, 좋은 취향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단품심기만이 우리 취향이 아닐 수 있다고. 취향을 넓히고 아름다움을 한껏 누려나가야 한다고.


박람회장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이걸 어떻게 심은 거예요?"

화분 하나에 식물이 여럿 어우러져 있으니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다. 우리 화훼 문화가 단품 위주다 보니, 여러 종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 자체가 낯설고 신선하게 보이는 것이다.

모아심기의 가장 큰 매력은 이종결합의 시너지다. 개성이 다른 식물들을 나란히 두면 서로 돋보인다. 노란꽃 옆에 보라꽃이 있으면 둘 다 혼자일 때보다 더 선명해진다.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커지는 것, 그게 모아심기다. 화분 하나가 하나의 작은 정원이 된다.

실용적인 장점도 있다. 관심이 비슷한 식물들을 골라 함께 심으면 물 주기와 관리가 한결 수월해진다. 무엇보다 계절마다 주역을 바꿔가며 오래 즐길 수 있다. 봄에 심은 화분이 여름엔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단품 화분처럼 한 번 사서 한 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재미가 계속 이어진다.

부스 앞을 지나다 멈춰 선 분들 중에는 "아파트에서도 이게 돼요?"라고 묻는 분들이 꽤 있었다. 된다. 베란다가 있으면 충분하다. 크게 시작할 필요도 없다. 작은 화분 하나에 두세 종을 모아 심는 것에서 출발하면 된다. 그렇게 한 화분이 두 화분이 되고, 어느새 베란다가 작은 정원이 된다.

 이번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욕심껏 싸 온 보람이 있었다.
▲ 이번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욕심껏 싸 온 보람이 있었다. 유신준

마지막 날에는 입술 네 군데가 위 아래 쌍으로 부르텄다. 체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이 생각도 않고 의욕만으로 덤비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몸으로 깨달았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몇 군데 업체에서 콜라보 제안도 받았다. 참가업체끼리 엮여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일, 그게 박람회의 핵심이다. 흩어진 구슬을 꿰어 새로운 보석을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의 계획도 구체화됐다. 모아심기 화분과 바구니, 액자플랜터, 행잉바스켓 4종 세트를 상시 운영 체제로 갖춰 다양한 박람회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에 나설 생각이다. 박람회에서 주목을 받았던 두 가지 모델을 주제로 '모아심기 입문 클래스'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서울 강남에서 소규모 그룹 강의 의뢰도 벌써 들어와 준비 중이다.

일본에서 배운 행잉바스켓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아름다움에는 국경이 없다. 그 아름다움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한국 행잉바스켓 연구소를 명실공히 세워나가는 길, 이제 막 시작이다.

>>시리즈 보기 일본 행잉바스켓 마스터 도전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본인블로그 일본정원이야기 (https://blog.naver.com/lazybee1)에도 실립니다.
#전주정원산업박람회 #행잉바스켓 #베란다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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