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에 탄 사람들이 지구를 음미하는 법

[서평] <궤도>를 읽고

등록 2026.05.22 17:26수정 2026.05.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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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흔히 어떻게 생각할까. 입자로 가득 찬 공간이자 무(無)의 공간, 청정한 곳이자 먼지로 뒤덮인 곳, 끊임없이 팽창하고 축소되는 세상. 우주는 서로 모순되는 이미지들을 동시에 품은 공간으로 여겨진다. 미지(未知)에 대해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지는 본능에 의해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를 경외하면서도 도전의 대상으로 보았다.

최근 아르테미스 2호의 발사와 귀환은 인류의 우주 탐사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렸다. 이번 발사체의 의미는 인간의 영역 확장 욕구와 맞닿아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었고, 오늘날 그 욕망은 우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우주에 관심을 가진 많은 기업가는 인류가 누릴 달, 화성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국 인류는 알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우린 지구라는 이 행성을 놓을 수 없다. <궤도>는 우주를 인류가 정복해야 할 다음 영토로 그리지 않고 관찰하는 장소로 설정한다. 지구의 바깥의 시선으로 우리가 떠나온 행성,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삶을 다시 보게 만든다.


우주선에 탄 사람들


<궤도> 표지 저자, 서맨사 하비
▲<궤도> 표지 저자, 서맨사 하비 교보문고

<궤도>의 저자, 서맨사 하비(Samantha Harvey)는 <황야>로 '베티 트라스크상'을 받은 영국 작가다. 그는 <궤도>로 2024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부커상', '호손덴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책에서 지구 외부 궤도를 도는 우주선에 탄 6인의 우주 비행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톤', '로만', '숀', '넬', '피에트로', '치에', 이 여섯 명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함께 지구 주위를 돌면서 열여섯 번의 일출과 일몰을 겪으며 주어진 임무를 하며 생활한다.

향후 우주 비행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우주 정거장에 머무는 이들은 각자 다른 감상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저자는 이를 그 특유의 서정적인 묘사로 24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16번마다 다른 궤도에 진입할 때마다 세심하게 풀어놓는다. 독자는 이를 따라가면서 우주와 지구, 그 사이 속 삶에 대한 고찰을 저절로 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단 명상록에 가깝다.

이 책의 여섯 명의 우주 비행사들은 흔한 SF나 우주 과학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될만한 존재는 아니다. 주연이 겪는 극적인 사건은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찾아보기 힘들다. 규모가 큰 태풍의 위력으로 초토화되는 지구의 전경 묘사가 책에서 그나마 가장 격렬한 순간이지만 그마저도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서술된다. 기승전결 구조의 서사와 거리가 먼 내용은 얼핏 지루하게 만들 수 있으나 긴 시를 읽는 듯한 아름다운 표현이 우주, 자연, 인간 감정 그 자체를 감상의 대상으로 만들어준다. 이런 사색을 즐기는 독자라면 이 책의 서술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 여행의 새 시대에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써 내려가고 있는 걸까요?

숀이 받은 엽서에 담긴 질문은 인간이 가진 미지에 대한 기대를 함축한다. 그러나 정작 우주를 체험한 숀은 미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주라는 혹독한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순간의 상황에 집중해야 하는 우주 비행사에게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해보는 건 사실 사치였다. 각국이 치열하게 로켓을 하늘로 쏘아 올려보내며 기술 경쟁력을 과시할 때마다 사람들은 우주를 올려다보며 이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지만, 정작 현재 가장 우주와 맞닿아있는 6인은 자신들이 돌고 있는 지구를 내려다본다. 그들이 두고 온 가족, 지난 삶, 상상을 회상하며 그 모든 것들이 남겨진 땅은 작중 내내 강조된다.


가끔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지우고, 저 행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앞선 인류가 발견한, 지구는 그저 무(無)의 중심에 놓인 하찮은 반점에 불과하다는 진실도 죄다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장은 인간이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상기시켜줌과 동시에,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다시 중심으로 불러낸다는 점에서 작품이 이 행성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해준다. 인류가 달과 화성으로 떠나려고 하는 동안에도 지구는 묵묵히 그들을 지탱한다. 그 위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장관, 제각각의 삶, 시간의 흐름은 고요한 우주 속에서 자연스럽게 목격된다. 그렇게 지구와 우주 사이를 도는 우주선의 비행사들은 궤도 안에서 새삼 자신이 잠시 떠나온 행성의 신비를 깨닫는다. 어떻게 저 별이 이 은하계에서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닐 수 있는지, 의문마저 품을 정도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실로 놀라운 힘이 지구를 형상한다. 그 힘이 모든 걸 바꿨다. 숲, 극지방, 저수지, 빙하, 강, 바다, 산, 해안선, 하늘을. 욕망에 따라 윤곽이 그려지고 조경된 행성을.

우주에서 본 지구


결국 이 책은 '지구'를 주요 소재로 삼는다. 우주라는 한 발짝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여섯 우주 비행사들의 시선을 빌려 독자는 관조적인 자세로 인류의 삶과 자연의 흐름을 지켜볼 수 있다. 이를 내려다보며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각양각색의 사고방식이 지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목격하고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주와 지구 간의 거리감이 다른 때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성찰할 준비를 시켜준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읽기보단 천천히 사색하며 탐독해야 의미가 다가온다.

저 우아하고 찬란한 구체에 넬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말을 잃는다. 마치 그들이 왕이나 왕비가 거처하는 궁전에 살고 있었음을 막 깨달은 사람처럼.

일반적인 SF 장르 소설을 기대하고 읽는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서사 있는 이야기보단 우주의 시선으로 지구와 인간 삶을 조명하는 시선을 풀어놓은 서술은 흥분이나 오락적인 재미 보단 마음을 가라앉히는 사색에 가깝다.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보단 이미 모두가 익숙했던 주위의 것들을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이런 내용에 익숙하지 않다면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것이 의미 없고 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면, 적막한 우주에서 항성과 행성이 이루는 화음을 감상하며 잠시 이 행성과 그 위의 삶을 관찰하는 하루를, 16번의 궤도를 돌며 체험해보길 추천한다. 공허하게만 느껴졌던 지구 위의 삶이 우주가 만든 평범하지만 놀라운 경우의 수였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궤도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은이), 송예슬 (옮긴이),
서해문집, 2025


#우주 #지구 #서맨사하비 #부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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