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편 속 앤디. 낯선 조직 안에서 어긋나던 그녀의 모습은 20년 전 내 신입 시절과 겹쳐 보였다.
출처: Life Between Weekends
1편 첫 등장에서 앤디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대에 살짝 들떠 있던 눈빛은 점점 작아졌고, 누군가 빠르게 지시를 던지면 일단 고개부터 끄덕였다. 정작 무슨 말인지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누구에게 먼저 인사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물어봐도 되는지, 왜 커피 하나에도 규칙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곳.
앤디가 알고 있던 '멋진 회사'는 잡지 표지 속에 있었고, 지금 그녀가 서 있는 곳은 그 표지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숨이 계속 가빠지는 현장이었다. 모두가 부러워 하는 회사에 들어갔지만, 정작 그 안에서 그녀는 매 순간 자신이 틀린 곳에 서 있는 사람처럼 비춰졌다. 앤디가 그렇게 어긋나는 장면마다 나는 묘하게 당황스러워졌다.
'아니, 내가 왜 저기서 나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편 앤디와 나
20년 전, 나도 앤디였다. 승무원이 꿈이었던 나는 장래희망을 이뤘다는 기쁨에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게다가 당시 승무원은 지금보다도 더 선망의 직업으로 꼽히던 때라, 주변의 부러움도 꽤 받았다. 하지만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알아버렸지. 빛 좋은 개살구의 참 맛을.
내가 떠올렸던 우아한 승무원의 모습은 광고 속에 있었고, 내가 서 있는 그곳은 안전과 서비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장이었다. 정시 이륙 준비를 위해 스판기 하나 없는 유니폼을 입고 거추장스러운 스카프를 풀어 헤치고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승객을 맞이할 시간이 되면 가쁜 숨을 가다듬고 열기로 달아오른 목에 스카프를 둘러야 했다.
그렇게 온 정성을 다해 띄운 비행기 안에서는 마음 깊이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승객도 있었고, 끝내 눈물을 삼키게 만드는 승객도 있었다. 그런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를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풀기도 했지만, 기수 문화가 뚜렷한 직군이다 보니 비행기 밖에도 긴장은 있었다.
매서운 미란다(같은 선배) 앞에서는 벌벌 떨었고, 얄미운 에밀리(같은 동료)에게 속절없이 당하기도 했더랬지. 그야말로 현타를 직격으로 맞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게 내가 꿈꾸던 일이 맞나 싶던 어느 순간, 영화 속 앤디를 만난 거였다. 2006년의 일이다.
'아, 너는 나고 나는 너구나. 우리, 이제 어쩌지?'
버티는 자가 이긴다 했던가. 나는 일단 살아남기로 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적응하고 조금씩 성장하던 어느 날, 인생은 나를 다른 길 위에 세웠고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면서 10여 년간 이어온 비행은 멈춰 서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나의 유니폼도, 비행 스케줄도, 공항의 긴장도 오래전 일이 되어가는 지금, 그때의 앤디가 다시 돌아왔다. 20년 만인 2026년 4월 2편이 개봉한 것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편 앤디와 나
반가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달라진 앤디의 모습이었다. 20년 전 미운 오리는 간 데 없고 화려한 백조가 되었다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시간 동안 그녀는 멋지게 성공했더라.
그럼 나는 그 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낯선 타국 땅에서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집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분명 나도 한때는 앤디처럼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그래도 같은 출발선 어딘가에 서 있다고 믿었던 사람인데 말이다. 20년이 지나 다시 만난 앤디는 저만치 앞서가 있고, 나는 아직도 낯선 땅의 부엌과 세탁실과 아이들 일정표 사이를 오가는 중이다.
한때 앤디를 좌충우돌의 동지처럼 여겼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다른 풍경 앞에 서게 된 걸까. 나는 영화 내용보다 나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도 별일 없이 내 일을 계속 이어갔다면, 저렇게 백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밥 먹고 사는 데 큰 문제 없고, 다리 뻗고 자는 데 큰 걱정 없으니 그 시간을 쓸데없이 날려버린 건 아니겠지. 게다가 나는 한때 자는 아이들의 얼굴만 보고 며칠 씩 비행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낯선 땅에 와서는 아이들이 커가는 순간들을 내 두 눈으로 지켜보고, 내 두 손으로 도울 수 있었다. 아이들과 밥을 먹고, 학교 이야기를 듣고, 별것 아닌 하루를 함께 쌓아가는 일. 돈으로 살 수도,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 아닌가. 그러니 그 세월이 아주 헛된 것 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가 그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 내게 20대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호하다. 하늘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 해도 나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비행을 멈추고 낯선 땅에서 살림과 육아로 하루하루를 건너오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삶의 또 다른 값어치를 충분히 얻었고 무엇보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얼마나 버텼는지를 내가 잘 알고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다시 같은 시간을 겪는 것이 겁나서가 아니다. 다만 그 이상 내가 더 해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때의 나는 온 힘을 다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믿고, 존경한다. 그리고 이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앤디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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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주 후 글을 쓰며 초기화 된 제 인생을 스스로 구하는 중입니다.
@ 브런치 '주재원, 부인들의 내조 전쟁터' 연재. @ 2026 문학고을 등단 - 상반기 신인 문학상 공모전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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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불러낸 20년 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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