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시기 서울 정비사업의 연도별 준공, 철거 및 순증(감)량. 2013년과 2015-18년까지는 누적 재고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멸실량의 하한선을 적용해도 그렇다. 정비사업으로 훗날 집이 늘어날지는 몰라도, 당시에는 재고가 '순감'한 것이 정비사업의 효과였던 것이다. 2015년 이후 주택가격 상승에는 금리, 인구변화, 세제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정비사업은 '안 해서'가 아니라 '너무 몰아서 해서' 끼친 영향이 더 크지 않았을까. (수치출처: 서울시 정비사업 통계를 토대로 자체 집계)
최경호
연재 1회차에서 저는 '
2031년까지 신통기획으로 인한 주택 순감량이 더 많다'라는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박원순 시기에도 이미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정비사업을 해서 훗날 집이 더 많아지리라는 기대 속에, 당장은 집이 줄어드는 일이 2010년대 중반에도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원오 후보도, 오세훈 후보도, 모두 2031년까지 총 31만 호의 정비사업을 약속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새로 지어지는 주택의 양에 맞춰서 기존 주택의 철거 시기를 조정하면서 하면 될 텐데, 왜들 그렇게 못하는 걸까요?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지진이 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사 갈 집이 부족한 것이 뻔히 보이는데 왜 모두 철거부터 하려고 하는 걸까요?
왜 다들 정비사업을 약속할 수밖에 없는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이구동성으로 주택 정비의 원활한 추진을 약속합니다. 심지어 민주당은 오세훈 시장이 계획만 발표하고 착공은 적으니 무능하다고 합니다. 지켜보는 제 마음은 조마조마합니다. 그가 무능(?)했기에 망정이지 혹은 말로만 떠들고 실제론 할 의사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 많은 정비계획을 실제로 착공해 버렸다면 또 얼마나 많은 집을 철거했을 것이며, 또 전월세 대란은 얼마나 더 심해졌겠습니까.
그런데 민주당은 '유능함'을 강조하며 정비사업의 착공까지도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합니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걸까요? 정비사업을 하려면 철거를 해야 하는데, 동시다발로 철거하면 전월세 대란이 일어날 텐데, 왜 박원순도 정원오도 오세훈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모두가 합리적으로 움직였는데 모두가 손해를 보는 상황, 흔히 '
죄수의 딜레마'라고도 합니다. 앞서 연재 3회차 기사에서
'신호등이 고장 난 사거리에서 너도나도 빨리 가려다가 교통이 뒤엉킨 상황'과도 통합니다. 서울시 전체로 보면 동시다발 착공으로 전월세 대란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각자의 합리적인 선택으로는 이를 막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저는 '소선거구제'를 주범으로 지목합니다. 소선거구제에서의 지역구 정치인의 애환(?)과 그들이 모인 정당과 캠프의 작동 구조를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죄수의 딜레마: 소선거구제가 범인인가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에게 자기 지역구의 정비사업 조합은 가장 크고 가장 잘 조직된 유권자 집단입니다. 지역구 크기가 작아질수록 정비조합의 위력은 커집니다. 그 앞에서
"동시다발로 진행하면 전월세 대란이 일어나잖아요, 우리 동네는 그래도 건물이 성한 편이니, 집이 더 낡은 다른 동네부터 하라고 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후보는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당선자 명단에서 찾기 힘들겠지요. 이는 어느 정치인이나 정당이 탐욕을 부추기느냐 혹은 위선적이냐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가 피해 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유권자들로서도 정비사업을 "우리 동네 먼저, 유리하게" 해달라는 목소리는 '집중된 공간에 기반하여' 잘 조직되어 있고 또렷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꺼번에 부수면 갈 곳을 잃는 사람이 생긴다"라고 말하는 세입자들이나 미래의 이주민들의 목소리는 '넓게' 퍼져있습니다.
더군다나 정비사업의 멸실 효과보다는 공급 효과만을 내세우는 주장이나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이라는, 사실은 '현재 좋은 입지에 집을 가지고 있는 정비 조합원들의 이해에 충실한 논리'만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동시다발 정비의 여러 문제점들, 원자재 가격 폭등이나 전월세 대란 등을 더 넓은 광역의 시야에서 걱정해야 하는 시장 선거라고 한들, 지역구 정치인들로 채워진 선거 캠프라면 마찬가지가 됩니다.
"전월세 대란이 생기지 않도록, 정비사업은 순서를 잘 정해서 합시다"라는 공약을 내세울 수 없게 됩니다. 각자 지역구에 돌아가면 정비사업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추진하겠다고 약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닙니다.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대의 민주주의가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에 의문을 던지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조가 모든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치인들을 탓하거나 구조를 탓할 수 있지만, 후손들은 우리를 탓하게 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선거 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해 저는 '
남태령 대첩의 영웅들이 동네로 흩어지면 세입자라는 소수자가 된다'는 점을 짚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세입자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자기 집을 가진 사람도 '동시다발 정비사업'에서는 전월세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소선거구제에서는 '일단 우리 지역 먼저'라는 죄수 신세를 벗어나기가 힘들게 됩니다.
그렇다고 언제 될지 모르는 '중대선거구제' 개편과 같은 선거제도 개혁의 날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회에서는 정치개혁 이전에라도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할 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과거의 비극을 반복할 것인가

▲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이 4일 오전 서울시청 로비에서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연재 4회차를 정리합니다. 박원순은 오세훈보다 정비사업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문제였습니다. 동시다발 철거로 인해서 주택이 멸실되는 효과가 준공되는 효과보다 더 컸던 것입니다. 정비사업을 안 해서가 아니라, 너무 동시에 많이 해서 서울에서 집이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또 벌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장이 장밋빛 약속을 하며 마구잡이로 사업을 벌여 놓은 것이 2011년과 같은 상황입니다. 2011년 4월 14일의 오세훈 시장은
'신 주거정비 5대 방향' 발표를 하면서 '정비사업 시기조정'이라는 말이라도 했습니다. 이번엔 그런 말조차 없습니다.
통계를 정리하는 사이에 선거는 끝이 났습니다. 5선에 성공한 오세훈 시장이 이번엔 중도사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엔 본인이 벌인 일을 책임지고 수습하기 바랍니다. 전월세 대란을 막으려면 신통기획의 일부 조정은 불가피합니다. 과다지정된 정비사업을 수습하다가 말고 중도사퇴해 버린 것이 2011년의 오 시장입니다. '어게인 2011'은 안 됩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정비사업은 집을 철거부터 한다', '신통기획대로 하면 2031년까지 12.6만호의 재고가 줄어든다'는 현실을 직시하리라는 보장은 여전히 없습니다(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억측이겠지요). 우리는 우리대로 소선거구제 아래에서의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정비사업의 판타지나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이라는 허울을 넘을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길이 아니라, 명분도 얻고 실리도 얻는 길로 가야 합니다.
- 연재 5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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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사회연대경제 방식으로 전세피해를 회복한 탄탄주택협동조합 감사.
"좋은 세상이 좋은 집을, 좋은 집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우리는 여기서 집을 설계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삶을 설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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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이 오세훈보다 정비사업 더 많이 했다, 그래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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